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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윈이야기 May 21. 2021

네, 아직 없습니다.

어른은 누가 키워주나요.

"아기 생각 없니? 아예 안 낳을 거면 몰라도 낳을 거면 빨리 낳아야지. 적지 않은 나인데..." 


어려서부터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시끌벅적 북적이는 가정을 꿈꿨었다. 

적어도 셋은 낳아서, 다사다난하대도 그만큼 왁자지껄 웃고 서로 의지하며 살면 좋겠다 싶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였는지 아이와의 일상에 대한 로망도, 엄마로서의 생에 대한 열망도 사그라들었다. 

한 때 내가 그렸던 가족 그림 속, 내 아이들이 차지할 자리는 여백이 되었다. 허전하고 쓸쓸한 한편에 홀가분하고 심플해서 좋다는 생각이 교차한다. 



"애를 낳아서 키워야 될 나이에 무슨 개야."

"한가하게 개나 키우면서 뭐가 힘들어!"   

"인생에서 개 이야기밖에 할 게 없어? 딱하다..."       


가깝게는 가족, 친구들에게서부터 듣게 되는 말. 

'아기'라는 말에 개 육아 이야기가 나오면 느껴지는 냉랭한 한기. 근황 이야기에 빠지면 섭할 '우리 집 강아지' 소리에 점점 분위기는 숙연해지니_ 아차, 또 실수했다 싶다. 뭐 그런 대수롭지도 않은 대상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내고, 하찮은 이야기 꽃을 피우냐는 거다. 친구의 결혼 생활이나 혹은 부모로서 인생 다음 챕터를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미혼인 사람이 느낄 '아직 나는 공감하기 어렵다'는 반응, 이건 확실히 그 이상의 무엇이다. 아무리 가족이라 말해도 이해하는 자와 아닌 자들의 공감을 이어 줄 중매자는 없다. '반려견/반려묘도 가족입니다.'라는 말이 만연하다는 건, 아직도 진정한 가족으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반증이겠지. 행복의 모습은 백만 천만가지로 다른 모습일 텐데, 기준은 아파트 모델하우스에 다름없다. 몇 평형이냐, A타입이냐 B타입이냐 뿐이다.   


남편과 나는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입장도, 꼭 있어야 한다는 입장도 아니었다. 꽤나 오랜 세월을 함께해왔지만, 딱히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다. 그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대로-'쯤으로 생각했는데, 어느덧 아이를 낳는 일은 하나도 자연스럽지 않은, 결정과 준비를 해야만 하는 사항이 되었고_ 선택의 시점이 왔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유보 중이다. 삶에 아이가 없다는 것을 상상해본 적은 없지만, 반대로 내가 아기와 함께 있는 모습은 점점 더 낯설다. '아이'라고 하면 바로 '부담'이라는 단어가 스치고, '희생'이라는 단어가 머리에 박히며, '돈'이라는 주제가 펼쳐져 이내 마음이 가라앉는다. '이번 생은 어쩌면 아닌가 봐' 싶기도 하다. 


"다윈이보다 예쁘고 사랑스러울 수 있겠어? 사람 애가 다윈이만큼 착하겠냐고!" 


농담 반 논리 반 섞어 남편은 이런 말을 하곤 한다. 


우리 애가 예쁘고 잘생겼겠어? 

아니. 

애가 다윈만큼 말을 잘 들어주겠어? 

그럴 리가! 

게다가 다윈만큼 한결같이 우리를 사랑해주고 평생 우리 곁에 있어줘? 

절대. 사실, 그래서도 안될 일이고.  

 

지옥 같다는 육아 스트레스보다, 방향 없는 세상에서 내 유년기의 되풀이일 아이의 삶이 무섭다. 순간순간 끝도 없이 새로 고침을 해야 하는 세상사로 벌써부터 일에서도 관계에서도 뒷북치며 밀려나고 있는데, 부모랍시고 옛스런 사고방식으로 다음 세대에게 건넬 위로의 무게는 얼마일까. 사춘기 시절, 깨나 부모님 원망도 해봤던 경험자로서_ 나를 낳아 주셨다는 사실만으로 부모님께 감사하기엔 삶이 너무나 고되고 피곤하며_ 어릴 적 배운 것처럼 공정하고 정의롭지 않다는 것을 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했지만, 사실 그것보다도 탄탄한 빽과 든든한 양육비가 절실하다. 하다못해 부모가 어떤 일을 하든, 적어도 인플루언서로서 몇 만 팔로워의 유튜브나 인스타 계정이라도 물려주지 못하면 "엄마 아빠는 무슨 배짱으로 날 낳은 거야?" 한다는 요즘이다. 부모가 된다는 건 인생에서 가장 숭고하고 아름다운 일이라지만, 이제는 그저 '부모'라는 계급, 혹은 영역이 생긴 것 같다. 학생인데 공부가 적성에 안 맞으면 산뜻하게 인정하고 다른 적성을 개발시키는 편이 낫듯, 괜찮은 부모가 될 여력과 자신이 없다면_ 다른 길을 걷는 게 현명한 일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낳는 게 문제가 아니라, 잘 자라도록 잘 길러내야 한다. 내가 태어나게 한 생명에게 무엇을 전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 좁은 사회 틈바구니 속에서 아등바등하면서- 양극화의 허탈함 속에서도, 너를 잃지 말고 살아라는 말이나마 해줄 수 있을까. 나도 어려운데.       


아이가 부족한 사회는 미래가 없다지만, 어른이 방황하는 사회는 당장에 피폐해진다. 떡상을 하든 떡락을 하든 어쨌든 나는 못 사서 못 살겠는 집과, 밤 사이 미치광이 기업가의 졸렬한 엄지 손가락 선동에 증발해버린 대출금. 무조건 '너 아니어도 돈 적게 줘도 일 잘할 사람은 많다'는 회사와, 퇴근 후엔 쉬지 말고 영상을 올리든 물건을 팔든 포토샵을 배우든- 부에 차선에 올라타기 위해 열정을 불태우라는 2030 트렌드가 어른을 울린다. 코딩도 배우고 그림도 그리고, 바디 프로필도 찍어야 하고 책 읽고 독후감까지 쓰라니... '파이어족'처럼 일단 하얗게 불태워 보란다. 놀면서 일하라고? 4시간만 일하라고? 그러려면 일단 죽어라 일해야 하는데도? 석가모니가 '인생은 고(苦)'라고 했는데, 인생은 '노(努)'에 가깝다. 일하고 힘들이고 애쓰느라 피로하고 고달프다. 노인뿐 아니라 청년들도 고독사를 한다는 건_ 아이가 태어나도 사랑을 가르쳐 줄 어른이 죽어간다는 말이다.      

어른을 잘 키워줘야 아이도 잘 자랄 텐데_ '어른 육아법'은 오은영 선생님도 강형욱 훈련사도 전문이 아니다. 누가 어른을 길러주나. 



"나는 아기 안 낳았으면 좋겠더라고요. 내 자식이 또 나처럼 희생하는 건 안 했으면 좋겠어."  


깊은 마음속 가벼이 건네시는 어르신의 말씀에 순간 먹먹해진다. 부모가 되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도리이자 순리였던 시절의 어른이_ 다음 세대 어른 아이를 인정하며 보듬는다. 나는 어떤 어른일까, 나는 저런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우리는 딩펫족(Double Income, No Kids + Pet)일까. 

왜 우리는 딩펫족이 되었을까. 

자연스러움을 거슬러 쉽고 비겁한 선택을 계속하고 있는 걸까, 그리 단순하지 않다.    

다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을 살며, 주변인들에 맞추어 적당한 선택을 하고 싶지는 않다. 훗날 뒤돌아보며 어정쩡한 생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_ 지금의 나를 혼내기도 하고 타이르기도 하며- 잘 길러 보겠다.   


나라는 어른 아이에게는 나의 반려견, 다윈이 어른 육아법 고수다. 순간순간 마음을 알아채고 사랑과 인내를 훈련시킨다. 정신 차리고 몸 좀 움직이라며 큰 소리로 호통칠 때도 있지만, 언제나 날 믿는다며 손 내밀면 그저 고스란히 따른다. 다윈이 자라며 나를 길러낸다. 키운 건 나인데, 다윈이 나를 성장시킨다. 다윈에게 사랑의 기적을 배우고 있는 만큼,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어른이 된다면 그걸로 됐다. 

역시 나의 이야기는 항상 기-승-전-우리 집 개 아들! 아차, 나 또 실수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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