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통 감정을 드러내질 않는 나는 그의 영화를 보면 종종 눈물을 흘린다. 시대와 연기와 소재에 상관없이 그는 나를 울리는 몇 안 되는 감독이다.
이 말 할 수 없는 특별한 느낌을 '좋은 연출'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할지는 모르겠다.
<환상의 빛>은 한국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의 영화다. 한국에서 극장 개봉을 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지만, 익히 알려진 대로 이 영화는 (이미 유명해진) 감독 본인의 데뷔작이다. 이런 연유로 개봉 전에도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감독의 팬인 나는 자연스레 작은 화면으로 감상을 끝낸 뒤였다.
직접 각본 쓰기를 즐겨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데뷔작의 경우 원작을 차용했는데 '미야모토 테루'라는 작가가 쓴 동명의 소설이다. 투박하게 말하면 소설의 울림이 더 크다. 무엇이 더 좋고/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을 연출하는 방식이 소설이 더 극적이며 또렷하다.
그는 통상 '새로움'과 '과잉'으로 기억되는 보통의 데뷔작과 달리 이미 첫 영화부터 '관조'와 '절제'로 본인의 색깔을 확고히 한다. 이 영화가 '영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데뷔작'중 하나로 평가받는다는 사실은 무척 자연스럽다.
'유미코'는 동네에서 함께 자란 소년 '이쿠오'와 결혼해 아이를 낳는다. 둘의 삶도 결혼도 특별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을 확실하게 묘사할 수 있는 단어는 '가난'뿐이다.
행복과 불행의 경계를 서성이며 그들은 흔한 절망도 희망도 굳이 입에 담지 않는다. 그러던 중 남편 이쿠오가 이유를 알 수 없는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그녀의 마음속에는 지울 수 없는 질문이 남는다. 남편의 그림자는 수년을 잠자다가도 문득 고개를 돌려보면 옆에 서있는, 결코 떨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그녀 곁을 맴돈다.
그녀는 새로운 남자와 가정을 이루고 무리 없이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고, 그들의 섹스는 퍽 열정적이다. 문득 하나의 질문이 저 가슴 밑에서 번개처럼 끓어오를 뿐이다.
"당신은 저와 갓난아이를 두고 왜 말 한마디 없이 떠나셨나요?"
이 질문의 답을 가진 유일한 남자는 이미 세상에 없다. 그가 살아 돌아온다 해도 나는 이 질문에 답할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녀는 그가 세상에 없다는 사실은 받아들이면서도 이 풀리지 않는 질문은 견디기 힘들어 보인다. 유미코는 마치 삶이 아니라 죽음의 의미를 찾기 위해 생을 이어가는 사람처럼 보인다. 상실은 그녀를 무너뜨리지 않았지만 결코 편안하게 놓아줄 생각도 없다.
<환상의 빛>은 베니스 영화제에서 촬영상을 받았다.
결과가 말해주듯, 아름답고 사려 깊은 프레임은 영화를 백분 빛나게 해 준다. 특히 종반부 클라이맥스의 부감과 와이드샷은 음악과 어우러지며 마치 영화 속 공간이 다른 세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극장에서 다시 보며 늦게나마 스크린에서도 만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안도했다.
아마 이 영화를 스크린에서 보는 기회는 이번이 마지막일 것이다. 다만 그 길고 어두운 길을 따라 흐르던 장례행렬과 바다의 석양은 유미코의 질문처럼 살면서 문득문득 마음속에 떠오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