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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 할 수 없는 질문에 대하여

영화 환상의 빛을 보고...

by 다윈이야기

2018.08.24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도통 감정을 드러내질 않는 나는 그의 영화를 보면 종종 눈물을 흘린다. 시대와 연기와 소재에 상관없이 그는 나를 울리는 몇 안 되는 감독이다.


이 말 할 수 없는 특별한 느낌을 '좋은 연출'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할지는 모르겠다.


<환상의 빛>은 한국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의 영화다. 한국에서 극장 개봉을 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지만, 익히 알려진 대로 이 영화는 (이미 유명해진) 감독 본인의 데뷔작이다. 이런 연유로 개봉 전에도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감독의 팬인 나는 자연스레 작은 화면으로 감상을 끝낸 뒤였다.


직접 각본 쓰기를 즐겨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데뷔작의 경우 원작을 차용했는데 '미야모토 테루'라는 작가가 쓴 동명의 소설이다. 투박하게 말하면 소설의 울림이 더 크다. 무엇이 더 좋고/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을 연출하는 방식이 소설이 더 극적이며 또렷하다.


그는 통상 '새로움'과 '과잉'으로 기억되는 보통의 데뷔작과 달리 이미 첫 영화부터 '관조'와 '절제'로 본인의 색깔을 확고히 한다. 이 영화가 '영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데뷔작'중 하나로 평가받는다는 사실은 무척 자연스럽다.


'유미코'는 동네에서 함께 자란 소년 '이쿠오'와 결혼해 아이를 낳는다. 둘의 삶도 결혼도 특별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을 확실하게 묘사할 수 있는 단어는 '가난'뿐이다.


행복과 불행의 경계를 서성이며 그들은 흔한 절망도 희망도 굳이 입에 담지 않는다. 그러던 중 남편 이쿠오가 이유를 알 수 없는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그녀의 마음속에는 지울 수 없는 질문이 남는다. 남편의 그림자는 수년을 잠자다가도 문득 고개를 돌려보면 옆에 서있는, 결코 떨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그녀 곁을 맴돈다.


그녀는 새로운 남자와 가정을 이루고 무리 없이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고, 그들의 섹스는 퍽 열정적이다. 문득 하나의 질문이 저 가슴 밑에서 번개처럼 끓어오를 뿐이다.


"당신은 저와 갓난아이를 두고 왜 말 한마디 없이 떠나셨나요?"


이 질문의 답을 가진 유일한 남자는 이미 세상에 없다. 그가 살아 돌아온다 해도 나는 이 질문에 답할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녀는 그가 세상에 없다는 사실은 받아들이면서도 이 풀리지 않는 질문은 견디기 힘들어 보인다. 유미코는 마치 삶이 아니라 죽음의 의미를 찾기 위해 생을 이어가는 사람처럼 보인다. 상실은 그녀를 무너뜨리지 않았지만 결코 편안하게 놓아줄 생각도 없다.


<환상의 빛>은 베니스 영화제에서 촬영상을 받았다.

결과가 말해주듯, 아름답고 사려 깊은 프레임은 영화를 백분 빛나게 해 준다. 특히 종반부 클라이맥스의 부감과 와이드샷은 음악과 어우러지며 마치 영화 속 공간이 다른 세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극장에서 다시 보며 늦게나마 스크린에서도 만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안도했다.


아마 이 영화를 스크린에서 보는 기회는 이번이 마지막일 것이다. 다만 그 길고 어두운 길을 따라 흐르던 장례행렬과 바다의 석양은 유미코의 질문처럼 살면서 문득문득 마음속에 떠오르지 않을까.


잃어버린 것을 되찾지 못할 때 나는 <환상의 빛>을 떠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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