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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윈이야기 Sep 01. 2020

강아지의 영혼은 어디로 가나요

써니가 집에 온 것은 2004년 여름의 일이다.


손바닥만 했던 그 크기로 미루어

미처 두 달이 되지 않았었을 것이다.


유독 작고 연약한 모습 때문이었을까

아버지는 무녀리에게 마음이 끌린다며

가족과 별 상의도 없이 덜컥 녀석을 데려왔다.


많은 이들이 개를 키웠지만

제대로 키우는 법은 미처 알지 못하던 때였다.


절정의 비염을 앓고 있던 나는 고3이었고

어머니의 반대는 자연스러웠다.


아마도 강아지 공장 출신이었을 녀석은

집에 오자마자 곧 바이러스성 장염을 앓았다.


이제는 그것이 당연한 이유를 안다.

슬프게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나와 동생이 학교에 간 사이

녀석의 사지는 뻣뻣하게 굳어갔고

어머니는

맨발로 강아지를 안고 뛰었다고 한다.


그 정성 때문이었을까?

기적적으로 되살아난 강아지는

어머니와 전우애를 나눈 사이가 되었다.


돌려보내자는 이야기는 이제 아무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써니'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sunny 형용사 (sun·nier, sun·ni·est)
1. 화창한, 햇살이 (눈부시게) 내리쬐는
2. 명랑한


녀석은 마치 이름처럼 집안의 햇살이 되어주었다. 당시에도 지금도 내가 아는 한 가장 멋진 영어 이름이다.



돌이켜보면

그렇게 구사일생한 생명이

17년을 온전히 살아냈고


또래의 아이들이 모두

무지개다리를 건널 동안

잔병치레 하나 없이 견뎌 주었으니

천수를 누렸다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런 써니가 지난 저녁 우리 곁을 떠났다.

사람이라면 감히 호상이란 말을 썼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마음은 그게 아니었다.


조금 더 있어 달라는 말과

이제 가도 괜찮다는 말의 사이에서

식구들은 달리 도리가 없어 발을 굴렀다.


하나 안도한 점은

녀석이 나와 아내의 마지막 인사를 기다려 주었다는 것이다.


지난 주말 저녁

서울에서 춘천까지 1시간 30분.


차분히 마음을 다독이며,

조금씩 속도는 올려가며,

차 하나 없이 뻥 뚫린 도로를 달리면서

우리는 코로나 사태가 도움을 주기도 한다며 말 없이 쓴웃음을 지었다.



마음 담은 인사를 나눈 뒤 우리는 춘천을 떠났고, 

하루가 더 지나 써니의 여행도 끝이 났다.


아버지와 어머니 동생이 모두

그 마지막 길을 함께해주었다고 한다. 다행이다.


더이상 움직이지 않는다는 어머니의 떨리는 목소리에

다윈이는 해맑게 꼬리를 흔들었다.

그 복잡한 마음에 심장이 뜨거웠다.



강아지의 영혼은 죽으면 무지개다리를 건너

나중에 올 주인을 기다린다고 한다.


아름다운 이야기다. 다만 써니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신을 똑 닮은 친구들과

강아지로의 행복만을 온전히 느끼길 기도한다.


기다림은 이제 끝내고

이번에는 우리가 먼저 찾을 때까지

그저 편안하길, 또 자유롭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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