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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윈이야기 Mar 31. 2021

코로나와 미세먼지 세상에서 개와 함께 사는 법

서글픈 시대에 해맑게 웃어주는 너

2020년 2월. 이다윈씨가 우리와 함께 지낸 지 3개월도 채 되지 않았을 때_ 세계적 대재앙이 발발했다. 

 처음에는 그저 여느 때처럼 금세 사라질 유행성 독감이려니 하고 뉴스를 돌렸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이번엔 달라도 제대로 다르다는 걸. 


하루하루 감염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갔고, 사망자는 비현실적으로 많이 생겨났다. '에이, 저게 말이 돼? 너무 비현실적인데' 하고 웃어버렸던 영화 속 한 장면이, 이제 우리의 일상에 전염되었다. 

 영화를 보며 더 이상 웃을 수가 없었다. 삶은 언제나 영화보다 강렬하다.    


마치 모든 것들과의 연결이 끊어진 듯했다. 

미래의 몇 세대 이후의 삶일지도 모르는 일상의 모습들이_ 코로나 때문에 급작스레 당겨진 것도 같았다. 

산책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마주치는 견주들과도 편히 인사를 나눌 수 없고, 저녁 9시만 되어도 온 세상이 깜깜하고 고요했다. 

   

우리는 그렇다고 치자.  

이제 한 살 된 아기 강아지에게 이 위험천만한 시국을 어떻게 설명하랴. 밖에 나가자고 생떼를 쓰는 아이들에게도 쉬이 설득을 못할 판에. 이 넘치는 에너지를 어떻게 빼줘야 하나. 산책 못하면 당장 네 신발과 소파, 매트를 씹고 흔들어댈 텐데. 아무런 희망도 없이 밝아올 내일의 아침이 두려웠다.   



다른 강아지 친구를 초대할 수도 없고, 강아지 카페도 갈 수 없으니_ 고립된 섬에 외롭고 심심한 우리 가족.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다윈이 더 다채로운 개인기를 구사하게 된 것이! 

길고 기나긴 집콕 생활에서 우리의 놀이는_ 다윈에게도 나에게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개들은 신체활동을 하는 것보다 두뇌활동을 하는 것이 에너지를 훨씬 빨리 쓴단다. 

새로운 목표를 달성하는 기쁨과 뿌듯함, 자신감도 느끼고_ 보호자에게 집중하고 함께 교감하는 능력을 길러준다니! 사역견인 다윈에게는 최고의 교육인 셈이다.       


"자, 오늘은 '냉장고 문 닫기'를 배워 보자!"

"오늘은 산책 줄 가져오는 법을 배울 거야."

"이번엔 스스로 발 닦는 걸 해볼까?" 


다윈의 의견은 중요치 않다. 개인기 종류는 순전히 '내 취향'대로다. 주로 나의 잔업무를 도와주는 쪽으로.   

훈련 시간은 5~10분씩, 하루 세 번. 당연히 천재견은 아니기에, 배운 것을 제대로 각인하기까지 며칠이 걸릴 때가 대부분이다. 다행히 식탐이 강한 녀석이라 간식 덕분에 어떻게든 해내려고 눈을 반짝이며 따라와 준다.

다윈과 치열하고도 즐거운 한 때. '더 하자!' 하는 듯한 눈망울


처음에는 어찌나 답답하고 짜증까지 나던지! 

유튜브에 나오는 강아지들은 바로바로 뚝딱 해내는데, 얘는 왜 기본적인 것도 못할까라는 생각만 가득했다. 하지만 깊이 알면 알수록 내가 더 많이 배웠다. 

'눈높이 교육'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님을, 그리고 정말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것을_ 

 개들은 특정한 행동이나 언어의 습득을 '특정한 맥락'과 '반복'으로 배운다. 

내가 더 단순하게 행동을 쪼개서 반복적으로 '각인'시켜야, 마치 근육이 서서히 발달하는 것처럼_ 

머릿속에서 단련이 된다. 그리고 성공했을 때 엄청난 칭찬과 보상을 해야_ 강렬한 기억으로 더 강화가 된다.  

 

놀이 훈련에 지친 다윈. 천하의 악마, 잭 러셀도 '두뇌 풀가동'은 힘들다.


이 원리를 내가 체득했을 때부터_ 사실 더 이상 우리가 '개인기'를 해냈다는 것 자체는 중요치 않았다. 

시도해보고, 다시 해보고, 어떻게든 알아들으려고 최선을 다해 온전히 내게 집중하는- 다윈과 교감하는 과정이 제일 재밌었다. 

내가 포기하지 않고 차근차근 가르치며 인내했던 시간이 길었던만큼, 

다윈이 헤매고 답답함에 낑낑댔던 순간이 많았던만큼_  

첫 성공 때의 그 환희와 기쁨은!! 우리 둘만이 아는 최고의 순간이다.   

 


"이러다 다윈이한테 살림 맡기겠는데?"     


재택근무 중인 남편은 세 끼를 다 먹으면서 설거지 한 번 안 하는데_

서랍 문도 닫아주고, 손 씻으면 수건도 물어다 주고, 양말 한 짝도 찾아다 갖다 주니_ 

남편. 너보다 낫다. 


다윈을 가르치며 나는 나대로 너무 즐거웠다. '더 해! 더 시켜 봐!' 하고 똘똘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녀석을 볼 때마다 묵직한 감동과 깊은 행복을 느꼈다. 

 내가 '놀아주는' 게 아니라, '함께 놀며'_ 나는 다윈에게 나의 언어를 가르치고, 다윈은 나에게 성취감을 가르쳤다. 우리는 같이 환호하고 웃고 떠들었다.   




그렇게 2020년의 어둠을 보내고, 새 해를 맞았다.  

일 년을 꼬박, 전세계를 절망에 내몰았던 코로나는 '변이'까지 해가며 아직도 우리를 따라다니고, 

올 해 봄은 지독한 미세먼지와 황사로 '겸사겸사'_ 마스크를 계속 쓰고 있으라 협박을 하는 듯 하다. 

  

야식으로 치킨을 시키고, 냉장고를 열어 맥주를 고르려는 남편에게_ 

갑자기 다윈이 후다다닥, 달려가 냉장고 문을 쾅! 하고 닫는다. 


"와!! 다윈 좀 봐! 알았어, 알았어. 빨리 고를게..."  


봐, 남편아. 너보다 낫다니까?

 

맥주를 들이키며 남편이 툭. 이런 말을 한다. 


"우리가 다윈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훨씬 더 힘들고 우울한 시간들이었을 거야." 


맞다. 다윈 덕분에 시대적 비극을 조금 덜 아프게 지나왔다. 

다윈과 함께 '코로나 블루'도 '코로나 레드'도 잊고, 감사히 버텼다. 

다윈과 움직이느라 '확 찐 자'까지는 가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다윈이 우리의 일상을 잘 이끌어주며, 잘 진화시켜 주었다.   



요 며칠 미세먼지와 황사로 온 세상이 뿌옇다. 

이토록 심한 날은 산책 대신_ 다시 집에서 놀이와 훈련이다.   


차갑고 뿌연 미래 도시의 수컷 강아지, 다윈. 

도시견으로서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 게 미안할 때도 있지만_ 

약속할게, 다시 건강하고 안전하게_ 깨끗한 곳에서 뛸 수 있는 세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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