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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윈이야기 Mar 29. 2021

무지개 다리를 건너는 작고 귀여운 영혼에게

바이 바이, 우리의 선샤인!

시댁에서 키우던 17세 고운 할머니, '써니'가 떠났다. 


남편이 고등학생 때 만났다는 병약하고 가녀린 새끼 강아지. 

써니라는 이름은 남편이 지어줬다고 했다. 

그 이름처럼_ 써니는 온 가족의 사랑을 한 평생 넘치게 받은, 가족들에게 작지만 가장 '큰 존재'였다. 


연애 시절, 시댁에 처음 놀러 갔던 날.

앙증맞은 꼬리를 살랑대며 반갑다고 앙앙 짖는 하얀 강아지가 나도 참 좋았다. 

남자 친구네 집에 인사하러 가서 '부모님이 나를 어떻게 보실까, 잘 보여야 하는데...' 하는 긴장감은,  

내 품에 포옥 안기는 이 쪼꼬미의 체온 덕분에 사르르 녹아내렸다. 지금도 써니에게 너무나 고맙다. 


써니. 내가 아는 강아지들 중에_ 사랑받는 방법과 주는 방법을 제일 잘 아는 강아지였다.    

써니는 꽤 바람직하지 못한(?) 견생을 살았다. 

동배들 중 가장 약하게 태어난 게 안쓰러워, 시아버지는 심심산속에서 나는 약초며 나물이며_ 산삼 뿌리까지 캐다 먹였다고 한다. 그렇게 불면 날아갈 듯 쥐면 꺼질 듯 귀하게 모시고(?) 살았던 탓에_ 산책은 언제나 집안 한 바퀴였고, '써니야~'하고 부르면 '흥'하고 외면하는 도도한 아가씨가 되었다. 가족들이 식사하면 항상 시아버지의 발 밑에서 앙앙 짖으며 간식 앙탈을 부렸고_날이 추워 옷을 입히려던 시어머니의 손을 앙칼지게 문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소파나 침대 한 번 올라간 적 없고, 물어뜯고 부수는 사고 한 번 친 적 없다며_ 예뻐 죽겠다고 하시곤 했다. 

 애착 장난감 하나 없이, 특히 좋아하는 놀이 하나 없이_ 써니는 엄마 아빠, 오빠 둘을 졸졸 따라다니다 잠을 청하는 일상이 전부였다. 지금이라면 절대로 용납할 수 없을 방식의 개육아이지만, 가족들은 써니에게, 써니도 가족들에게_ 그저 있는 그대로 사랑할 뿐, 그 어떤 것도 바라지 않았기에 서로 더 행복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_ '그런 견생 용납 못해!'라고 외치는 평화 훼방꾼이 나였다. 아마 내가 17년 써니의 견생을 통틀어 유일한 시련이었을 것이다.   

 해외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 후, 남편과 함께 시댁에서 몇 달간 지낸 적이 있었다. 

식사 시간 내내 짖는 걸 고쳐보자는 마음에서 시작된 내 문제 제기와 훈육에 온 가족은 시큰둥했다. 특히 시아버지는 10년도 넘게 그렇게 살았는데, 어떻게 고치냐며_ 살던 대로 살게 내버려 두라고 극구 반대하셨다. 


"써니도 할 수 있어요." 


무덤덤히 말하고는_ '앉아'와 '손'부터 시켰다. 

그다음 날엔 '안 돼'도 알려주고, 어떤 날엔 써니가 싫어하는 발 만지기 둔감화도 시켰다. 

 태어나 처음으로 무언가를 해야만 하고, 노력해야 하고... 절대 안 된다고 차가운 거절도 당해보고, 싫어하는 것도 해야 하니_ 써니는 내가 얼마나 미웠을까. 하기 싫다고 몇 번이나 절대 아군인 시아버지에게 쪼르르 달려가 편들어 달라는 '여우짓'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써니에게도 나에게도_ 재미가 붙었던 것 같다. 어느샌가부터 훈련은 교감이 되었고, 무언가를 가르치는 것이 놀이 시간이 되었다. 열 살도 넘은 할머니가 간식을 먹겠다고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내 말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몸짓을 보이자, 시아버지는 갑자기 내가 마치 강형욱 훈련사라도 된 듯_ 전폭적인 지지와 신뢰를 보이셨다.  

써니와 나. 털 정리를 위해 내게 발을 내맡겨 준 기특한 할머니


축 처져 별일 없이 무료했던 써니는 활기와 생기를 되찾았다.   

써니 덕분에 어색하고 부담스러웠던 나의 시댁 생활이 즐겁고 편안할 수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_ 써니로 인해 온 집안에 따뜻한 행복이 감돌았다.        

  

화창하게 맑은 날, 써니와 근처 공원에 산책을 나갔다. 미용을 위해 밖에 외출했던 걸 제외하고는_ 견생 첫 산책 외출이었다. 무서워한다고 펄펄 뛰시던 시어머니는_ 킁킁 냄새도 맡고, 망설이면서도 한 걸음씩 내딛으며 세상을 궁금해하는 써니를 보며 깜짝 놀라셨다. 아가 때 밖에 나가려고 하면 덜덜 떨었으니, 산책을 좋아할 거라는 생각을 어찌하셨겠는가. 갓 태어난 새끼 강아지처럼, 호기심과 두려움으로 주위를 둘러보던 써니의 눈빛은_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그때 찍었던 풀밭에서의 사진이_ 써니의 거의 유일한 외출 사진이 되었다.   


 

써니가 며칠 째 밥도 먹지 않고, 기침도 더 심해졌다는 전화를 받았다. 

 작년부터 병원에서는 약을 쓰는 것이 작고 노쇠한 몸에 더 나쁠 것이라며, 마음의 준비를 하시라고 했었다. 시아버지와 시동생이 노견에게 좋다는 영양제와 식재료를 찾아 며칠씩 몇 주씩 겨우 연명시켜왔기에_ 시어머님은 애써 담담히, '이제 정말 가려나 봐.' 하고 체념하셨다.  


왠지 퍼뜩, 오늘 써니를 보러 가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시인지 생각도 않고, 남편과 다윈을 깨워_ 서둘러 춘천으로 달려갔다. 


자정을 넘겨 써니를 만났다. 작고 굽은 몸으로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도 우리가 온다는 걸 알고 있었던 듯_ 힘겨운 한 발 한 발을 애써 걸으며 반겨주었다. 


태어나서부터 약했기에 특별히 애지중지하며_ 17년간 그 흔한 질병 없이 건강하게 살았다. 

사람으로 치자면 무병장수에, 천수를 누린 셈이다.  


"써니야, 고마웠어. 사랑해. 잘 가." 

"우리 아직 준비가 안 됐어, 조금만 버텨 줘. 제발..."


가족 모두가 어쩔 줄 몰라했던 것은 당연했다. 

그런 우리를 보며_ 써니는 희미한 호흡을 붙잡아 주었다.  


우리가 떠나고 난 다음 날, 써니는 그 가녀린 숨을 맺었다.    

어쩌면 우리에게 인사할 기회를 주려고 기다려주었던 걸까 싶기도 하다. 마지막까지_ 감사하다.  


'나 때문에 처음에는 화도 나고 서운했지? 그런데도 다 견뎌주고 같이 놀아줘서 고마워, 써니야.

 더 신나게 놀고, 새로운 것들도 많이 했어야 했는데_ 너무너무 미안해. 

 사랑해 써니야. 꼭 다시 만나자!'    

  

눈으로 전했던 내 마음이_ 써니에게 가 닿았기를 바란다. 


써니가 떠났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_ 

다윈은 '써니'라는 말에 해맑게 꼬리를 흔든다. 


"이제 할머니 없어, 다윈. 할머니 멀리 갔어."  


다윈의 눈을 바라보는 순간, 눈물이 터졌다. 

사회성이 없어 다윈을 무서워하면서도, 호기심에 살금살금 다가왔다 이내 아빠 곁에 숨곤 했던_ 

써니가 보고 싶다.       

써니 할머니가 마냥 좋은 다윈과_ 그런 다윈이 무서운 써니. 시아버지 품에 안겨 도움을 청한다.  


강아지들이 떠나면 간다는 무지개다리 너머에는 어떤 세상이 있을까. 

부디 혼자서도, 멋지고 행복한 곳에 도착해 즐겁게 지내주기를 바란다. 

그곳에서도 사랑받고 또 많은 사랑을 돌려주며_ '개'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느낄 수 있기를.  


17살 써니 할머니의 첫 산책. 우연히 찍어 둔 영상이 유일한 기록이 되었다. 무지개 다리 너머 세상에서는 마음껏 뛰고, 좋은 친구들도 많이 만나렴. 바이 바이, 우리의 선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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