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의 분리불안은 어떻게 고치나요?
갑자기 일이 생겼다. 내일 다윈을 집에 종일 혼자 두어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남편도 하필 야근을 할 것 같다고 하니, 큰일이다.
남편 녀석은 속도 편하다. 신경 쓰지 말라며 괜찮을 거란다. 외출할 때마다 걱정하지만 결국 다윈은 의젓하고 씩씩하게 잘 있어주지 않았었냐며. 하지만 나는 아침 일찍부터 나가봐야 하니 12시간 이상 집을 비울 것이고, 남편은 조금 더 있다가 출근하지만 역시 저녁때 돌아온다. 다윈은 10~11시간이나 혼자 집에 있어야 한다!
주변 강아지 유치원부터 검색해본다. 하지만 이미 정원이 꽉 차있고, 맡긴다 해도 아침 9시부터라 안된다.
갑자기 눈앞이 캄캄하다...
모든 아버지들이 그러시듯_ 강아지 절대로 키우지 말라시더니, 맨날 전화해서는 '그놈은 뭐하노?' 하며 다윈을 끔찍이도 예뻐하시는 아빠에게 무작정 전화를 건다.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아빠는 시간이 안되신다며 이상한 소리를 덧붙이신다.
"가만히 있으라고 묶어놓고 나가, 그럼. 그래야 그놈도 좀 쉬지. 아빠 친구네 개는 집 비우면, 신경 안 써도 알아서 밥도 먹고 가만히 잠만 잔다는데."
무슨 소리예요, 아부지... 혼자 놔두면 놔두지 왜 묶어 놓냐고요! 아직 어려서 여기저기 다니며 사고치다가 혹여 다치기라도 할까봐 그러신단다. 그렇게도 다윈을 좋아하면서도 이런 해결책을 제시하시는 걸 보면_ 부모님 세대에게 있어 개란, '가족'과 '애완동물' 사이 그 어딘가쯤에 자리하고 있나 보다.
시댁에 맡길까?
"어머니, 죄송한데 급하게 일이 생겨서_ 얘 하루만 좀 봐주세요."
아니, 아니다. 아마 나의 시어머니께서는 흔쾌히 봐주겠다고 하실 테고, 시아버지도, 또 시동생도 다윈을 너무 사랑해주신다. 하지만 17년 동안 강아지를 키우셨으면서도 목줄 한 번 잡아본 적 없는 어머니께 다윈을 맡길 수는 없다. 시아버지도 개육아 방식에 있어서는 너무나 불신스럽기에_ 시댁도 답이 아니다.
"아버지가 산책은 시키실 수 있어. 그리고 그냥 옆에 있어주기만 해도 되는 건데 뭘 걱정해?"
남편 말도 맞기는 하다. 하지만 나의 깊은 마음속에서 '아니야!'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다윈을 만나기만 하면,
"다윈, 다윈~! 다윈아~ 뭐해? 다윈이 쉬어, 응 그래 쉬어~ 아니, 그렇게 있지 말고, 이렇게 해봐, 이렇게~ 다윈, 어디 봐, 얘 어디 본대니?! 다윈! 이리 와 봐, 이리 와, 다윈, 다윈! 다윈아~~~!!"
쉼 없이 부르고 말을 거는 시어머니. 다윈은 만날 때마다 산만해서 안절부절 정신없어했다. 아버님은 또 어떤가. 조건 없는 내리사랑으로_ 맛있고 몸에 좋다는 건 모두 식탁 밑으로 내려 주실 텐데...
"진짜 웃긴다. 뭘 그렇게 유난스러워? 너 나중에 아기 키울 때도 절대 안 맡긴다고 하겠다?!"
문득, 내가 봐도 우습긴 하다는 생각이 든다. 손주 맘마가 뜨겁다고 입에 넣어 식혀 주는 할머니 모습에 경악하는 며느리 클리쉐 같잖아?! 이윽고, '나중에 아기를 시어머니께 맡길 수 있을까?' 하는 고민마저 이어진다. 물론이지! 어머님은 아들들을 훌륭하게 잘 키워내셨는데! 가끔씩 맡아주신다면야 감사한 일이지!
하지만... 우리 강아지는 안된다.
차라리 집에 혼자 두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펫시터 서비스를 써볼까도 했지만, 차근차근 알아보지 않고 이렇게 급하게 정하는 건 왠지 모르게 불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낯선 사람이 우리 집에 와서, 다윈과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 알 수가 없으니_ 카메라를 설치해 놨어야 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다들 잘만 쓰는 것 같던데_ 나만 너무 피곤하게 따지며 걱정하며 사는 것 같기도 하고... 이렇게 육아하는 엄마들의 마음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고 있다.
결국 최후의 보루는 주변에 사는 개육아 선배들이다. 집에 다윈을 맡길 수 있는 몇 분께 SOS를 할 수는 있지만, 너무 갑작스러운 부탁에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 최후의 보루로 미뤄두었었다. 어쩔 수 없지, 염치 불구하고 전화를 건다. 다행히 바로 맡기라고 하시며 편히 일 보고 오라는 이웃집 개엄마. 안도와 감사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일하는 내내 잡생각이 든다. 틈틈이 사진을 보내주시기는 하지만, 혹시 다윈이 사고는 안 쳤을까, 낯선 곳이라 배변 실수는 안 했을까 하는 마음에_ 몸도 마음도 산만하다. 나중에 내 아이가 친구 집에 놀러 가거나, 누구에게 잠시 맡기게라도 되면 바로 이런 마음일까. 아니, 이것보다는 좀 더 마음이 놓일까? 오만가지 생각에 휩싸여 나사가 빠져버린 나. 새삼 세상의 모든 워킹맘들에게 존경의 절을 올리고 싶다.
다행히 남편보다 내가 더 일찍 일을 마쳤다. 다윈을 데리러 가는 마음과 발걸음이 얼마나 급했던지! 끝나자마자 냅다 달린다.
종일 다윈까지 돌보느라 고생하셨을 개엄마 친구에게 감사의 의미로 간식을 조금 샀다. 다윈이 너무 순하고 착하게 잘 있어주었다며, 급하고 정신없었을 그 마음 이해하니 언제든 환영이란다. 헐레벌떡 뛰어온 나를 보고서도, 너무 즐거운 하루를 보냈는지 다윈은 심드렁히 인사한다. 맛있는 간식도 많이 얻어 먹고, 종일 놀기만 했으니- 친구네 집이 훨씬 더 좋다며 쉽게 발을 떼지 못하는 녀석. 너, 내가 얼마나 마음 졸이면서 고생했는 줄 알아?! 마냥 웃는 녀석을 보니 그제서야 긴장이 풀린다.
갑자기 피로가 쏟아져 걸을 힘도, 기운도 없다. 그래도 마음만은 편안하다. 함께 걸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_ 너무 감사하다는 생각을 한다.
내 강아지 하루 돌봐달라는 부탁을 하기까지 애타고 초조해 마음 졸였던 나. 미안함과 감사함의 두 마음으로 일하는 내내 편치 않았던 나. 잘 있는 걸 알면서도 불안에 떨고, 끝나자마자 전속력을 다해 달렸던 나...
정말 어쩌다 이렇게까지 '개엄마'가 되어버린 걸까. 이게 다 정말 나라니- 또 이 다음부터는 조금씩 조금씩, 훨씬 더 여유롭고 수월해져 가겠지. 너무 유난스럽다는 남편 녀석의 말이 오버랩되며- 또 다시 웃음이 난다.
이렇게 엄마의 마음을 조금씩 알아가게 되는 건가 싶다. 다윈 덕분에 미리 '엄마 되보기' 체험을 한다. 사실 아직까지도 아기에 대해서 자신 없고 남의 일인 듯 멀게 느껴지는데_ 다윈이 한 번씩 제대로 가르쳐주는 것 같다. '개'랑 '애'랑 같냐고? 물론 다르다! 하지만 말 못하는 생명이라 더 조심스럽기에_ 나에게는 아기같다. 그저 예행연습을 하는 것 같아서 순간순간 낯선 나의 모습에 놀라고 움찔하면서도_ 내 자신이 조금씩 더 성장함을 느끼고 있다. 내가 나 아닌 누군가를 이렇게나 정성스럽게, 애틋하게 사랑하고, 내 희생과 배려가 기껍고 행복하기까지 했던 적이 있었던가?! 나에 대한 낯섬을 너머 기묘함마저 느낀다.
이렇게, 다윈은 나를 바꿔 놓았다.
이렇게_ 내 세상은 '사랑'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