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 없는 세상, 달리자.
"우리도 내일모레면 마흔이야."
헉.
내 마음은 스물둘인데 벌써 마흔이라니.
세상사에 흔들리고 미혹되지 않는다는, 불혹(不惑)의 마흔이라니!!
"우리나라 사람들은 뭐 하루마다 서너 살씩 먹냐? 아직 삼십 대 중반이거든?! 만날 내일모레면 서른이고, 금방 마흔에다_ 돌아서면 칠십이래!"
"그만큼 더 이상 어리지 않다는 거지."
무섭다. 나는 아직도 철없고 돈 없고 답 없는 생을 살고 있는데.
매일 속세에 혹하고 혼돈스러워 하루에도 몇 번씩 롤러코스터를 타는데.
집도 없고 애도 없고- 백 세 인생에 확실히 나를 먹여 살릴 직업도 없이, 그야말로 '무소유'인데.
숨이 턱턱 막혀오지만, KF94 마스크 때문이겠거니 해본다.
무엇보다 더 무서운 건 아직 제대로 된 실패도 못해봤다는 것이다. 모든 걸 걸고 도전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난 아직도 없다. 쓴 맛을 미리 봐야 나중이 편할 텐데. 그저 적당히, 시키는 대로 하라는 대로 사는 것에 익숙해지고, 넘기고 참고 타협하고 포기하다 보니_ 어중간하고 뜨뜻미지근한 괴물딱지가 되었다. 한탄하고 아쉬워할 새도 없다. 빨리 크고 멋지게 실패해봐야 한다!
"다윈! 나가자!"
시원한 바람이 쉼 없는 선선한 저녁. 다윈과 함께 공원을 달린다.
공원 잔디밭에서 날아오르듯, 튀어 오르듯_ 눈으로 쫓지 못할 만큼 힘차게 뜀박질을 하는 다윈을 보니 속이 뻥 뚫린다. 순식간에 스쳐가는 다윈에게서 나는 축축한 풀잎내에 시원하고 상쾌한 초록의 기운이 퍼진다. 혀가 삐뚤어지도록 달리고서야 내 앞에 앉은 다윈. 좀 쉬는가 싶더니 함께 달리자고 나를 채근한다.
그래, 준비_ 달렷!!
무거운 머리는 가벼워지다 못해 공기 중에 떠 있고, 답답한 가슴에 페퍼민트 잎이 돋힌 듯 상쾌함에 시리다. 별 것 있나, 나에게는 이게 소중하고 확실한 행복이다. 마음만 먹으면 매일 누릴 수 있는 꿈의 실현이다. 내 옆에서 나란히 뛰는 다윈을 바라보며 같이 헉헉대고, 한 얼굴로 웃는다. 뛰다 넘어져도 전혀 아프지 않을 푹신한 잔디, 비웃지 않고 지침 없이 같이 뛰어줄 친구가 있으니 걱정 없다. 크게 넘어져도 괜찮다. 다윈만 있으면, 이렇게 용감해진다.
다윈과 함께 어질리티를 시작했다. 유튜브로 본 어질리티 대회는 개와 보호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궁극의 스포츠였다. 게다가 번개같이 빠른 잭 러셀이 항상 순위 상위권을 차지하는_ '잭 러셀 테리어'를 위한 스포츠! 어질리티를 제대로 배워서 다윈과 제대로 뛰고 돌고 달리면서 제대로 놀아보는 거야! 같이 대회도 나가보면 더 좋고!
라고_ 생각했지만, 역시나 큰 도전이었다.
우리는 아직 초보이기 때문에 먼저 각각의 장애물에 대해 배웠다. 허들, 터널, 그리고 지그재그로 봉 사이를 달려야 하는 위브 폴까지- 다윈의 길 앞에 이리도 다양한 장애물이 있다. 달리다가 점프, 방향 회전도 해야 하고_ 끝이 안 보이는 터널 밖까지 홀로 달려야 한다. 더 높은 수준으로까지 가면 가파른 경사길도 오르락내리락, 타이어도 통과하고 시소도 타야 한다. 처음에는 어질리티가 아니라 방향을 잃고 장애물을 넘어뜨리기만 하는 '어질'한 폭주였다. 같이 배우는 팀들에게 웃음을 주고, 다른 팀을 보며 감탄사만 연발했다.
"다윈이는 잘하는데요? 견주님이 코스를 헤매셔서 그렇지-"
연습을 거듭할수록, 다윈은 각각의 장애물을 잘 해쳐나갔다. 문제는 나였다. 내가 부지런히 리드하며 다음 진행방향을 알려줘야 하는데_ 일단 시작하면 질주하는 다윈에 비해,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허둥지둥이다. '자, 다음! 어디야?!' 다윈은 계속 재촉하고, 나는 세상 제일 무능력한 리더처럼 엉뚱한 길로 안내한다. 우왕좌왕 대며 달리는 내 주위로 다윈이 날아다닌다. 더워 나는 땀인지 민망함에 식은땀인지- 등줄기가 축축해진다. 아, 미안해! 그쪽이 아니고... 어디지?!?
난 그저 강아지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_ 아니었다. 함께 연습하며 호흡을 맞추면, 개들은 그저 즐거워하며 장애물을 뛰어넘는다. 엄마 아빠가 앞서서 길만 잘 안내하면 되는데_ 역시 이게 더 어려운 역할이라는 이야기는 왜 아무도 안해준 걸까.
내 갈 길이 답이 없으니 다윈의 진로도 깜깜하게 만드는 건가. 그야말로 애미가 지 앞 길 막는지 모르고 그저 함께하니 즐겁다고 헤헤 웃으며 따라와 주는 다윈이 고맙다. 직진하고 싶은 본능을 가로막는 미션들을- 게임하듯 즐겁게 하나하나 해내는 다윈이 기특하다. 내 삶의 장애물도 다윈이 이렇게 웃으며 깨부숴주었으면 좋겠다. 아니, 이제는 같이 신명나게 뛰어넘어 버려야겠다.
차근차근 연습하면 되겠지?! 어질리티도, 답 없는 내 삶도-
함께 달려줘, 다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