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너무 슬픈 오펜하이머
오펜하이머의 고뇌를 잘 그려낸 영화
아침에 집을 나서는데, 아내가 이번 주 금요일 저녁에 시간을 함께 보내자고 말했다. 딸이 우리에게 영화를 예약하였다는 사실을 알렸는데 선물은 ‘오펜하이머’였다.
나는 과거에 영화 제작에 몰입할 때 아내의 손을 끌고 개봉 영화를 빠뜨리지 않고 주말은 물론 주중에도 열정적으로 보러 다녔다. 그러나 내 영화 제작은 중단되었고 우리 부부의 일상에서 영화를 보는 일은 점점 멀어져 갔다. ‘오펜하이머’는 오랜만에 맛보는 행복이었는데 요즘에 나는 이런 작은 기쁨으로도 눈물이 날 정도로 감사하다. 딸은 우리에게 가끔 이런 기회를 준다.
영화 배급망이 넓어진 이후부터 우리는 비교적 영화를 많이 보는 편이지만, 인간의 삶에 관하여 자세하게 묘사하고 추적한 좋은 영화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나는 영화 제작을 시도하면서 흥행에 성공할 수 있는 영화와 비록 흥행에는 실패했더라도 의미 있는 영화를 제작하는 일은, 한국에서는 물론이고 미국 할리우드 자본에서도 극히 어렵다는 현실을 영화 제작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깨달았다. 이런 관점에서 ‘오펜하이머’는 훌륭한 영화였으며, 특히 나의 삶과 오펜하이머의 인생이 닮았다는 사실에 더 감동되어 영화 보면서 눈물이 흘렀다. 이 영화의 주인공 오펜하이머는 내가 겪었던 고뇌를 똑같이 보여주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의 표정에서 읽을 수 있는 어둠과 혼돈과 괴로움에 나도 같이 힘들게 몰입하였다.
일본이 도발한 미국에 대한 공격과 2차 세계 대전, 이 상황에서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기 위하여 또한 전쟁의 혼란을 단번에 종식시키기 위하여, 오펜하이머가 원자폭탄을 비밀리에 연구 개발하는 과정은 이 영화의 한 흐름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그가 성공적으로 일본을 패망시킨 이후에 영웅으로 누렸던 시간도 매우 짧았다. 그가 누린 영광은 사소한 사건으로 치부되고, 여러 정치인과 언론 등에게 오펜하이머가 혹독하게 겪었던 힘든 여정을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은 매우 섬세하게 그리는데 집중했다. 이런 장면들 때문에 이 영화의 후반부가 지루하게 보인다는 평도 있다. 그러나 감독이 이 장면을 이토록 긴 시간 동안 자세하게 다루는 이유는 오펜하이머의 삶이 이런 치욕의 과정을 겪으면서 고통을 안고 죽어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당시 미국에서 아인슈타인의 삶도 오펜하이머가 당했던 경험과 비슷한 험난한 시간이 있었다는 사실을 이 영화는 간접적으로 전달한다.
영화에서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의 마지막 대담 장면은 오펜하이머가 겪을 앞날을 예견하고 있다. “자네가 이룬 성과의 결과에 대한 대가를 직면해야 하는 거지.”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에 “알버트, 파멸의 연쇄 반응이 이미 시작된 것 같아요.”라고 오펜하이머는 답했는데, 그의 표정을 클로즈업 한 장면은 이 영화의 슬픔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서 그들만이 아는 인간적인 고뇌가 엿보인다. 어쩌면 이 장면은 실제 상황이 아니고 감독이 연출한 장면일 수도 있다. 이 부분에서 만약 내가 감독이라면 나름대로 아인슈타인의 조언을 더 가공하여 다음과 같이 이 영화 장면 속에 이처럼 더 구체적으로 넣고 싶다. 아인슈타인은 “오펜하이머, 앞으로 여러 사람이 자네를 무수히 공격할 텐데, 분하고 억울하더라도 그냥 묵묵히 받아들이고 조용히 살아가게나. 내 경험으로는 그렇게 하는 게 현명한 것 같아.”라고 연출하고 싶다.
오펜하이머는 영화 속에서는 아인슈타인의 충고 때문인지, 그리고 영화가 아닌 실제에서는 그가 감당할 수 없었던 정치적 압박 때문인지, 온갖 오도된 내용과 괴변으로 무장한 슈트라우스와 일부 언론 그리고 계속되는 의회 청문회의 압박 등 오펜하이머에게 끝없이 이어지는 공격에 대하여, 분통 터지는 마음으로 아내가 그에게 미칠 듯이 소리쳐도 바보처럼 말없이 인내했으며, 그 고통을 가슴속에만 혼자 삭이면서 소리 없이 침묵했다. 아직도 이 영화 속에서 오펜하이머가 분노를 힘겹게 참아내는 어두운 표정이 자주 오버랩 된다. 그와 그의 아내는 이런 힘겨운 시간을 험난하게 견디는 가운데, 그들의 자식마저도 부모의 보호를 제대로 받을 수 없었다고 역사가들은 기록하고 있다. 부모 모두가 최고의 영재이고 최고의 학벌인 학력에 비하여, 그의 아들은 부모와는 달리 '목수' 직업으로 평범하게 살았다.
한편 오펜하이머가 정해진 짧은 시간에 연구와 실험을 거듭하면서 '원자 폭탄'을 만들어낸 결과는 우리나라와도 깊은 인연이 있다. 그가 만약 미국 정부에서 간곡하게 부탁했던 '역사적 비밀 프로젝트인 원자 폭탄의 개발'을 거부했거나 혹은 성공시키지 못했다면, 우리 일제 강점기의 기간은 훨씬 더 뒤로 늘어졌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빛나는 과학적 천재성, 그리고 세계 최고의 많은 과학자를 불러 모아 함께 고생했던 그의 뛰어난 안목과 리더십은 이 영화에서 크게 다루지도 못했다. 아직 파랗게 젊었던 그가, 무지하고 혼란스러웠던 인류의 한 역사를 진중하게 해결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만 한다. 그는 청년 같은 3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원자폭탄 프로젝트를 시작했지만, 열정적으로 참여했고 의연했다.
그 당시 미국에서 휩쓸던 매카시 광풍은 대통령조차 두려워하던 암흑의 시간이었기에 오펜하이머도 그 시간을 거부해서는 안 되는 암묵이 정의를 휘감고 있었다. 그는 항거할 수 없다는 사실에 괴로움들을 쌓아나가야만 했다. 이 영화에서는 악마의 저주들이 무서운 폭풍처럼 몰아치던 그때, 그가 정치적 환경과의 갈등에 직면하면서, 동시에 그의 내부에서는 스스로 과학과 도덕에 관한 갈등으로 고뇌하는 시간을 이어가야만 했는데 이런 오펜하이머의 파멸을 서글프게 보여준다. 침묵해야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오펜하이머는 마음의 문을 닫았다. 어두운 한 역사와 그 역사를 만들어낸 한 인간의 비애에 관하여 영화를 성공적으로 이끈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연출과 오펜하이머 역할을 한 '킬리언 머피' 배우의 연기는 우리에게 진지한 감동을 선사한다.
사회가 썩은 냄새로 진동하는 파도에 무너질 때 왜 우리도 같이 휩쓸려야만 하는지, 왜 우리의 삶은 철학적 신념이 의도하는 대로 안 흘러가는지, 정의는 왜 신만이 창조할 수 있는 하찮은 도구로 전락하는지 등의 이해할 수 없는 의문들을 지닌 채 한 많은 오펜하이머는 조용히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