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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당신이 누군지 알고 있습니다#1

1화 - 첫 번째 스마트드랍

by 카도

내 이름은 김민준.

올해 29살, 중견 IT기업에 다니는 평범한 회사원이다. 평범하다는 건 좋게 말한 거고, 솔직히 말하면 그냥 찌질하다. 키는 172cm로 애매하고, 몸무게는... 글쎄, 말하고 싶지 않다.

회사에서도 튀지 않게, 조용히, 눈에 띄지 않게 살아가는 게 내 처세술이었다. 상사가 야근을 시키면 "네"라고 대답하고, 동료가 내 일을 떠넘겨도 "괜찮습니다"라고 웃으며 받아들인다. 그게 편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날도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하루였다. 야근을 마치고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집으로 향하던 금요일 밤 10시. 차내는 그리 붐비지 않았고, 나는 구석 자리에 앉아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야, 이 씨발놈아! 전화 왜 안 받아!"


갑작스러운 고함소리에 차내 승객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입구 쪽에 서 있는 덩치 큰 남자가 핸드폰을 들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취한 것 같았다.


"아니야, 미안해. 형이 화낸 거 아냐. 그냥... 형이 보고 싶어서 그런 거지."


목소리가 갑자기 애교 넘치게 바뀌었다. 역겹다는 표정들이 승객들 얼굴에 스쳐 갔지만, 모두들 시선을 돌렸다. 나 역시 다시 스마트폰 화면에 집중하려 했다.

그런데 그 남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틀비틀 걸어가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가씨, 미안해. 나 때문에 시끄러웠지?"


여성은 몸을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거부 의사가 명확했지만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 차가워라. 내가 뭐 잘못했나? 어?"


그러더니 여성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여성이 몸을 움츠렸다.

나는 그제야 그 남자의 얼굴을 제대로 봤다.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이었다. 뉴스에서... 아, 맞다.


'박성민'


작년에 클럽에서 여성들에게 몰카를 찍고, 음료에 수면제를 탄 혐의로 기소됐던 그 놈이었다. 집행유예를 받고 나온 지 얼마 안 됐을 텐데.


"아가씨, 나랑 술 한잔 어때? 내가 좋은 데 알아."


박성민이 여성의 허벅지에 손을 올렸다. 여성은 깜짝 놀라며 일어나려 했지만, 그가 팔을 잡았다.


"어디 가려고? 오빠랑 얘기 술 한잔 하자니까."


차내가 썰렁하게 조용해졌다. 모두들 보고 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누가 좀... 아니면 내가...?'


하지만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박성민의 덩치는 나보다 훨씬 컸고, 범죄자라는 걸 아는 이상 더욱 무서웠다. 게다가 취해있으니 뭘 할지 모른다.

나는 112에 전화를 걸려다가 멈췄다. 경찰이 올 때까지 시간이 걸릴 텐데, 그 사이에 저 여성이 더 큰 피해를 당할 수도 있다. 그리고 경찰이 와봤자 '술 취해서 실수했다'며 빠져나갈 게 뻔했다.

여성은 이미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아저씨, 제발..."


"아저씨? 야, 오빠 아직 젊어. 너랑 한 일곱 살 차이날까?"


박성민이 낄낄거렸다. 그리고는 여성의 어깨를 자신의 어깨에 기대게 했다.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가 펼쳤다. 내 무력감이 너무 한심했다. 저런 놈이 버젓이 돌아다니는 세상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상황도, 그리고 나서지 못하는 내 자신도.


그때, 내 스마트폰 화면 한 귀퉁이에 이상한 팝업이 떴다.


[주변 기기 발견됨: 박성민의 SmartPhone]


순간, 어젯밤 다운로드했던 이상한 이미지가 떠올랐다. 장난삼아 받은 건데, 화면을 열었을 때 느꼈던 그 섬뜩한 감촉이 아직도 생생했다.

해골과도, 기괴한 얼굴과도 다른 형체. 확대하면 할수록 모래처럼 부서져 다시 재구성되는 듯한 불안한 무늬. 이상하게도, 그 이미지를 볼 때마다 심장이 두 번 박동하는 듯한 기묘한 이명과, 손끝이 얼음처럼 식는 느낌이 따라왔다.


나는 박성민을 똑바로 봤다. 그의 손에 쥐어진 휴대전화와 내 화면에 뜨는 기기의 아이콘이 일치했다.

머리가 하얘졌다가, 곧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저런 놈이 여기서 이런 짓을 하고 있는데, 아무도 막지 못한다는 현실이. 그리고 내가 이렇게 비겁하게 앉아있다는 사실이.

사진첩에서 그 이미지를 불러와, 위에 글씨를 덧입혔다.


[모든 사람이 당신이 누군지 알고 있습니다. 그만 하세요.]


손가락이 전송 버튼을 누르는 순간, 화면이 찰나 동안 일그러졌다. 스피커에서 ‘찌익’ 하는 잡음이 새어 나왔다.

박성민의 핸드폰에서 알림음이 울렸다. 그가 화면을 봤다.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씨발, 뭐야 이거?"


그는 주변을 둘러봤다. 하지만 모든 승객들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박성민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 이상한 새끼가 있네."


그러고는 다음 역에서 그는 씩씩대며 내렸다. 여성은 자리에서 물러나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3일 후, 월요일 아침.


"어? 이거 봐봐."


옆자리 동료가 스마트폰을 들이밀었다.


[몰카범 박성민, 한강에서 시신으로 발견... 자살 추정]


내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아, 이 새끼 맞네. 작년에 클럽에서 몰카 찍었던 놈. 집행유예 받았다가 또 사고 쳤나 보네."

"자살이래요?"

"음, 유서는 없었다는데 한강 다리에서 떨어진 거 같다고. 뭐 어차피 저런 놈은 언젠가 이렇게 될 놈이지."


동료는 무심하게 말하고는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그 기사를 다시 읽고 또 읽었다.


'우연의 일치겠지. 설마...'


하지만 이상했다. 내가 스마트드랍을 보낸 게 금요일 밤이었고, 박성민의 사망 추정시각은 토요일 밤 10시 경.

내가 스마트드랍을 보낸 지 딱 24시간이 지난 후다.

나는 가슴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는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두려움과... 그리고 묘한 희열이 뒤섞인.


'내가... 설마 내가?'


아니다. 말이 안 된다. 스마트드랍 메시지 하나로 사람이 죽을 리 없다. 그냥 우연일 뿐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세상이 조금 더 깨끗해진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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