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소설] 당신이 누군지 알고 있습니다#2

2화 - 실험

by 카도

박성민의 죽음 이후, 나는 며칠간 악몽에 시달렸다.

꿈속에서 한강 다리 난간에 매달린 그가, 축축한 입술로 웃으며 말했다.


“너잖아. 네가 했잖아.”


깨어나면 등은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고, 새벽녘엔 심장이 뛰는 소리에 귀가 먹먹해졌다.

퇴근 후 집에 와도 집중이 안 됐다. TV를 켜도, 게임을 해도, 손끝에서 떨어지지 않는 건 노트북이었다.

결국 나는 검색창에 다시 그의 이름을 쳤다.


'한 번만... 확인해보자.'


나는 포털 사이트에 '박성민 사망'이라고 검색했다. 관련 기사들이 주르륵 나왔다. 대부분 비슷한 내용이었다. 한강에서 발견, 자살 추정, 유서 없음.

그런데 댓글들이 가관이었다.


[이런 놈이 죽어서 세상이 깨끗해졌네]

[몰카 피해자들은 속이 시원할 듯]

[애초에 실형 받아야 했는데 집행유예 준 판사가 문제]


모두들 그의 죽음을 아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기는 분위기였다.

나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죄책감보다는... 뿌듯함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만약에... 정말 내가 한 일이라면?'


그렇다면 나는 세상을 조금 더 좋은 곳으로 만든 게 아닐까? 박성민 같은 놈이 더 이상 여성들을 괴롭히지 못하게 된 것이니까.

하지만 여전히 확신할 수는 없었다. 단 한 번의 우연으로는 증명이 안 된다.

나는 다른 검색어를 쳤다.


'성범죄자 솜방망이 처벌' '집행유예 받은 범죄자들' '전자발찌 착용자 재범'


수많은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읽으면 읽을수록 분노가 치솟았다.

아동 성추행범이 벌금 300만 원으로 끝. 상습 절도범이 집행유예 2년으로 석방. 폭행범이 피해자와 합의했다며 기소유예.


"이런 놈들이 이렇게 많다고?"


나는 중얼거렸다. 피해자들은 평생 트라우마에 시달리는데, 가해자들은 멀쩡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중에서 한 기사가 눈에 띄었다.


<아동학대 어린이집 원장 A씨, 집행유예로 석방... 전자발찌 착용>


클릭해봤다.


[만 4세 아동의 머리를 벽에 박고, 화장실에 가두는 등의 학대를 한 어린이집 원장 김태식(45)씨가 1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반성하고 있고, 초범인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김태식. 45세. XX구 거주.

나는 더 자세한 정보를 찾아봤다. 전자발찌 착용자 거주지 조회 사이트에 들어갔다. 김태식의 주소가 나와 있었다. XX구 OO동.

맘카페들을 뒤져봤다. 역시나 관련 글들이 있었다.


[OO동 아파트 단지에 아동학대범 거주 중]

[우리 아이 학교 근처에서 자주 목격된다는데...]

[전자발찌 찬 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또 아이들한테 해를 끼칠 수도 있는데]


읽다 보니 손이 떨렸다. 4살짜리 아이의 머리를 벽에 박다니. 그것도 본인이 돌봐야 할 아이를.

나는 김태식에 대해 더 조사했다. 어린이집은 폐원됐지만, 본인은 여전히 그 동네에서 살고 있었다. 최근에는 PC방에서 목격되거나, 편의점을 들락날락하는 모습이 포착됐다는 제보들이 올라와 있었다.

특히 한 글이 눈에 띄었다.


[OO동 맘들 조심하세요. 김태식 어제도 초등학교 앞 편의점에서 봤어요. 아이들 쳐다보면서 혼자 중얼거리고... 정말 무서워요.]


나는 지도앱으로 그 지역을 찾아봤다. 지하철로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내가 평소에 절대 가지 않는 동네였다.


'한 번... 확인해볼까?'


금요일 오후, 나는 칼퇴 후 XX구로 향했다. 지하철에서 내려 그 편의점을 찾아갔다.

오후 7시경, 편의점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정말로 그 남자가 나타났다. 맘카페에서 본 사진과 일치했다. 김태식이 맞았다.

그는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서 나왔다. 그리고 근처 벤치에 앉아 마시기 시작했다. 바로 초등학교 정문이 보이는 자리였다.

아이들이 학원에서 나오는 시간이었다. 김태식은 그 아이들을 계속 쳐다봤다. 표정이... 정상이 아니었다.

나는 소름이 끼쳤다. 저 놈이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벤치에서 10미터 정도 떨어진 카페에 앉았다. 에어드랍을 확인해보니 '김태식의 SmartPhone'이 검색됐다.

이번에도 대충 지난번에 보냈던 그 이미지 위에 메시지를 추가했다.


[부모들이 모두 당신이 누군지 알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서 멀어지세요.]


전송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화면이 번쩍하더니 기기가 ‘연결 실패’를 띄웠다.

심장이 철렁했다. 김태식이 자리를 뜨면 오늘은 기회가 없다.

다시 시도.

이번엔 성공음 대신 ‘틱…’ 하는 금속 부딪히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뭔 개소리야..."


그는 주변을 둘러봤지만, 누가 보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카페 안에서 책을 읽는 척하고 있었다.

김태식은 맥주캔을 구겨서 쓰레기통에 던지고 자리를 떠났다. 화가 난 것 같았다.

나는 시계를 봤다. 오후 7시 20분.


'만약 내 추정이 맞다면... 내일 이 시간에 저 놈은...'



토요일 저녁 7시 20분.

나는 집에서 뉴스를 보고 있었다.


"XX구에서 전자발찌 착용 중이던 아동학대범 김태식씨가 아파트에서 추락사한 채 발견됐습니다. 경찰은 자살로 추정된다고..."


리모컨이 손에서 떨어졌다.

정확히 24시간 후였다.

이번엔 우연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손끝이 저릿하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두려움과 흥분, 죄책감과 쾌감이 한데 뒤섞였다.


'나는... 정말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살인이다.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하지만, 법이 못 하는 일을 내가 할 수 있다면?

이 세상을 조금 더 깨끗하게 만들 수 있다면?


데스노트의 주인공, 야가미 라이토는 너무 성급했다. 너무 많은 사람을 죽여서 패턴이 드러났고, 결국 들켰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더 신중하고, 더 계획적으로 할 것이다.

한 달에 한두 명 정도. 완전히 다른 지역에서, 완전히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서.

그렇게 하면 절대 들키지 않을 것이다.

나는 다시 노트북을 켰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소설] 당신이 누군지 알고 있습니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