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균열
방민호 경사의 눈빛은 송곳처럼 날카로웠다.
“죽기 직전에 모두 전 재산을 기부했어요. 그것도 자신이 저지른 범죄와 관련된 단체에. 우연치고는 너무 일관된 패턴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나는 숨을 삼켰다. 목젖이 덜컥거렸다.
심장이 갈비뼈를 뚫고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이 순간 들켰다고 확신했다.
그때, 방 경사가 잠시 나를 뚫어지게 보다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근데... 혹시 최진우 씨가 기부한 단체 이름 아세요?”
“...네?”
“뭐, 위층 이웃이니까 혹시 들은 적 있나 해서요. 이번에도 동호회 후원인지, 기부단체인지, 그게 잘 안 나와서.”
순간, 온몸에 힘이 풀렸다.
나는 최대한 무심한 척, 고개를 저었다.
“아뇨... 잘은 모르겠는데요. 위층하고는 인사 정도만 했지, 그런 얘기는 해본 적 없습니다.”
“그렇죠. 뭐, 그렇겠죠.”
방 경사는 한숨을 내쉬며 수첩을 덮었다.
날카롭던 눈빛은 어느새 풀려 있었다.
“하여간 요즘 사람들은 이상해요. 기부하고 죽는 게 유행도 아니고... 우리도 머리가 아픕니다.”
옆에 있던 이준동 순경이 맞장구쳤다.
“그러게요. 민간 사이비 단체 얘기도 돌고 있고... 에휴, 별일 다 생기네요.”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불편 끼쳐 죄송합니다.”
나는 얼어붙은 얼굴로 고개만 끄덕였다.
현관문이 닫히고 발자국 소리가 멀어지는 걸 확인한 뒤에야, 나는 무너진 사람처럼 바닥에 주저앉았다.
숨을 고르며 가만히 손바닥을 보니, 아직도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
.
.
하지만 불안은 다른 방식으로 자라났다.
일주일에 한두 명씩 처단하다 보니 숫자가 문제였다.
288
핸드폰 속 악마 이미지에 찍힌 숫자가 나를 짓눌렀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336이었는데, 이제 겨우 288.
매일 24씩 빠져나가며 내 삶을 깎아먹고 있었다.
3일만 더 지나면 216.
그리고 그 다음엔 192.
곧 죽음이 다가올 거라는 공포가 가슴을 꽉 죄었다.
“민준 씨, 요즘 왜 이렇게 피곤해 보여요?”
회사 동료가 물었을 때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밤마다 숫자가 꿈에 나타났다.
꿈속에서 나는 시한폭탄을 껴안은 채 앉아 있었고,
초침처럼 틱틱틱 소리가 내 귓속을 때렸다.
살아남으려면... 시간을 연장해야 했다.
토요일 오후, 강남역.
사람들이 몰려나오고, 퇴근길과 쇼핑객들이 뒤섞여 혼잡했다.
나는 처음부터 범죄자를 찾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시간이 없었다.
조사 따위 사치였다.
“근처에만 있으면 돼.”
나는 중얼거리며 스마트드랍을 켰다.
근처 기기 목록이 빼곡히 뜨자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제 누군가를 고르기만 하면 된다.
첫 번째 타깃은 지하철 출구에서 나와 한 여학생을 밀쳐낸 중년 남자였다.
그는 “앞 좀 보고 다녀!”라며 욕을 내뱉고는 가던 길을 갔다.
나는 그를 일정 거리에서 미행했다.
백팩을 멘 척,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척,
늘 5~6미터 정도 간격을 유지했다.
스마트드랍은 가까워야만 전송된다.
몇 번이나 실패 메시지가 떴다.
간격이 조금만 벌어져도 ‘연결 실패’가 떴다.
나는 사람들 틈을 헤집고 그 남자의 바로 뒤까지 따라붙었다.
심장이 터질 듯 뛰었지만, 동시에 손끝이 떨릴 만큼 전율이 흘렀다.
그리고 전송.
[당신이 누군지 알고 있습니다. 모두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남자가 핸드폰을 꺼내 화면을 확인했다.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나는 이미 고개를 숙인 채 다른 사람인 척 걸어가고 있었다.
그 다음은 버스정류장 앞에서 침을 뱉은 젊은이,
그 다음은 카페 안에서 직원에게 소리를 지르던 여자,
그리고 횡단보도에서 줄을 무시하고 뛰어드는 사람들.
나는 계속해서 뒤를 밟고, 가까이 접근해, 스마트드랍을 날렸다.
때로는 전송이 실패해 다시 붙어야 했고,
때로는 그들이 뒤돌아볼까봐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러나 전송음이 들리는 순간, 마치 도박에서 당첨된 것 같은 쾌감이 몰려왔다.
한 시간이 지났을 때, 나는 이미 10명에게 이미지를 보냈다.
손바닥은 땀으로 젖었고,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나는 길가 카페에 앉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이켰다.
눈앞 풍경은 평범했다.
사람들은 웃고 떠들고,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뛰어다녔다.
단지 나만이 그들 중 10명이 내일 죽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틀 뒤, 뉴스 속보가 터졌다.
[서울 각지에서 10명 동시 자살... 경찰, 전례 없는 사건으로 규정]
화면에는 내가 봤던 실루엣들이 차례로 떴다.
욕을 하던 남자, 침 뱉던 젊은이, 카페에서 난동 부리던 여자...
그들이 모두 사라졌다.
사망 직전, 전 재산을 각각 이상한 단체나 기부처에 내놓은 것도 공통점이었다.
나는 텔레비전을 껐다.
방 안이 고요해졌다.
숫자는 이제 528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살아남았다.
하지만 손끝이 떨렸다.
이건 더 이상 ‘정의’가 아니었다.
나는 무고한 사람들을 죽였다.
무차별 학살자나 다름없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도, 가슴 속에서 파도처럼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래도, 나는 아직 살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