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 심문
나는 짐을 가방에 쑤셔 넣고 택시를 불렀다.
목덜미엔 땀이 흐르고 손바닥은 축축했다.
한시라도 빨리 서울을 벗어나야 했다.
“인천공항이죠?”
기사의 물음에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택시는 곧장 어두운 도로 위로 미끄러졌다.
창밖을 바라보며 마음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라디오 속보가 날카로운 칼날처럼 내 귀를 파고들었다.
“지난달 발생한 자살 사건 중 일부에 대해 재수사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피해자 중 한 명은 직장 내 성희롱 가해자로 알려졌으나, 최근 허위 고소를 당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억울함을 호소하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라디오 음성이 뇌 속에서 울렸다.
‘허위 고소... 피해자... 억울함...’
나는 창밖으로 얼굴을 돌렸지만, 눈동자가 흔들렸다.
내가 죽인 사람.
그는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였다.
피 속으로 얼음 조각이 파고드는 듯했다.
손이 떨려 가방 지퍼를 제대로 잡을 수조차 없었다.
“아냐... 그럴 리 없어. 내가 잘못 본 거야.”
하지만 기억은 선명했다. 그 날, 나는 확신했다고.
그리고... 죽였다.
택시는 곧 고속도로로 진입했다.
나는 도망치듯 창밖 어둠 속으로 시선을 박았다.
그런데, 거울에 비친 뒤 차창 너머
낯익은 검은색 승용차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따라붙고 있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설마…”
눈을 비비고 다시 봤다. 여전히 같은 거리, 같은 속도.
분명 누군가 나를 미행하고 있었다.
그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손이 덜컥 떨려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모르는 번호.
“김민준 씨 맞으시죠?”
낯선 남자의 굳은 목소리.
“옆집에서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최근 수상한 행동을 했다고... 경찰서로 참고인 조사를 위해 모셔야겠습니다.”
숨이 턱 막혔다.
옆집 할머니.
몇 번이나 나를 걱정스럽게 보던 그 눈빛.
결국... 경찰에 넘겨버린 거다.
택시가 잠시 갓길에 멈춰 섰다.
그 순간, 내 옆으로 검은색 승용차가 와서 멈춰 섰다.
차 문이 열리자 이준동 순경이 나타났다.
편의점 유리창에 비쳤던 바로 그 얼굴.
“김민준 씨.”
그의 눈빛은 차갑게 빛났다.
“경찰서로 함께 가셔야겠습니다. 협조해 주시죠.”
도망칠까? 아니면 발버둥칠까?
그런데 온몸이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내 발목에 이미 쇠사슬이 채워진 듯했다.
경찰서 조사실.
차가운 형광등 불빛이 내 눈을 찔렀다.
좁은 책상 맞은편에는 방민호 경사, 옆에는 이준동 순경이 앉아 있었다.
나는 손을 무릎 위에 올린 채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김민준 씨.”
방민호가 수첩을 뒤적이며 입을 열었다.
“위층에 살던 최진우 씨 기억하시죠?”
나는 억지 웃음을 지었다.
“네... 알긴 합니다. 소음 문제로 좀...”
“맞습니다. 주민들 진술도 확인했습니다. 갈등이 있었다고요.”
그의 눈빛이 잠시 날카롭게 번뜩였다.
“혹시 그와 더 깊이 얽힌 건 없습니까?”
“없습니다. 그냥... 위층에 살던 이웃일 뿐이죠.”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잠시 정적이 흐르다, 방민호가 손가락으로 탁자를 ‘툭툭’ 두드렸다.
“사실은요, 김민준 씨. 우리가 오늘 모신 이유는 단순히 참고인 조사 때문만은 아닙니다.”
등골이 싸늘해졌다.
“무슨… 말씀이시죠?”
그는 수첩을 닫고 몸을 앞으로 숙였다.
“최근 발생한 자살 사건들, 모두 확인했습니다. 공통점은 기부, 그건 언론도 떠들고 있죠. 그런데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더군요.”
숨이 막혔다.
“피해자들이 죽기 하루 전, 모두 김민준 씨와 근거리에서 목격됐습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손끝이 떨려 책상 밑에서 주먹을 쥐었다.
“저... 저랑요? 전 잘 모르는 사람들인데요...”
방민호가 이어서 말했다.
“10명 동시 자살 사건. CCTV에 잡힌 당신, 사람들을 일정 거리를 두고 따라다니고 있었죠.”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또 있습니다. 펫샵 사장 이정훈. 편의점 근처 CCTV에도 당신 모습이 찍혔습니다. 아동학대범 김태식 사건 당시에도 근처 카페 영수증이 있더군요.”
나는 숨이 가빠져 억지로 변명을 뱉었다.
“그건... 우연입니다. 그냥... 지나가다 찍힌 걸 겁니다.”
“우연이라.”
방민호는 피식 웃으며 손가락으로 수첩을 탁 닫았다.
“수상할 만큼 자주 우연이 겹치네요. 김민준 씨, 이쯤 되면 우린 묻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의 시선이 내 눈을 파고들었다.
“당신, 이 죽음들과 무슨 연관이 있습니까?”
숨이 목구멍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내 귀엔 벽시계 초침 소리만 들렸다.
틱...틱...틱...
마치 내 안에서 숫자가 하나씩 줄어드는 것 같았다.
‘들켰다… 이제 끝이다.’
나는 의자 위에서 미세하게 몸을 떨며 고개를 숙였다.
말 한 마디가 목구멍 끝에 걸려 나올 듯 말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