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t La Vie>_Stella Jang
Ne t’inquiète pas
걱정하지 마.
인생사는 새옹지마라고 한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일을 걱정하며 살다가는 오히려 아까운 시간들만 흘려보낼 판이다. 나는 미래를 걱정하는 것만큼 비효율적인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요즘 들어 학생들을 만나면 다들 걱정을 한 아름 안고 나를 찾아온다. 아마 9월 평가원 모의고사가 다음 주이기 때문일 것이다. 저마다 고민을 안고 찾아오지만 대부분 “9평 잘 봐야 하는데 못 보면 어떡하죠”라는 한탄으로 정리된다. 물론 답을 바라고 묻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 질문을 받는 나로서는 난감하기 짝이 없다. 그럴 때 나는 답을 주기보다 친구들이 원하는 말을 들려준다.
“잘 보겠죠. 본인 열심히 해오는 걸 제가 봤으니까. 걱정 마세요.”
그렇게 말하면 다들 울상을 짓고 와도 조금은 밝아져서 말을 이어간다. 대체로 “잘할 것이다”라는 말을 들은 뒤 솔직하게 신세 한탄을 한다. 하지만 나는 평생 빈말이라는 걸 모르고 살아온 사람이다. 당근을 줬으면 현실을 알려주는 것도 내 일이다. 싶어 한마디를 덧붙인다.
“얼른 올라가서 공부하세요. 걱정한다고 실력 안 늘어요.”
물론 매몰차다고 느껴질 수 있으나,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수험생일 때는 그랬다. ‘망하면 어떡하지’보다 ‘모르는 게 더 있을까’를 고민했고, ‘배탈 나면 어떡하지‘보다 ’뭘 먹어야 속이 편할까‘를 고민했다. 지독하게 현실적이지만 그런 고민들은 걱정을 막아주었다. 같은 것을 생각하더라도 무엇을 할지 고민하는 것과 막연하게 하는 걱정은 엄연히 다르다고 믿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늘 해주는 이야기가 있는데, ‘걱정하는 일의 99%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친구들이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냐고 묻는다면 ‘노력하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알게 모르게 우리의 걱정은 ‘지금’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걱정은 시간만 뺐지만 고민은 대책을 준다.
만약 최선을 다했음에도 기대했던 미래가 찾아오지 않으면, 그때는 ‘후회’하자. 지나간 것에 대한 걱정은 후회라 부른다. 그리고 한껏 슬퍼한 후 다시 ‘고민’하자. 어떻게 하면 미래를 내 기대에 맞게 만들 수 있을까.
만약 내가 원했던 미래가 오면 한껏 기뻐하자. 그리고 다시 고민하자. 앞으로 다가올 미래도 어떻게 하면 내가 원한대로 끌어갈 수 있을까.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인생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