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azy Song>_Bruno Mars
대학생의 방학은 길고 길다. 6월 말부터 이어진 방학은 9월 1일이 되어서야 끝을 맺는다. 우리 과가 종강이 늦었음을 고려하면 거의 80일에 가까운 방학이다.
그런데 그렇게 길었던 방학은 어디로 갔는가.
나의 방학이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이번 여름방학에는 학술동아리, 과외, 학원 알바, 글쓰기 등 뭔가 많이 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내가 무얼 했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마도 내 기억 속에는 누워 있는 내 모습만 잔뜩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Today I don't feel like doing anything
방학동안 두번째로 많이 한 것을 꼽으라고 한다면, 잠이다. 세상에는 두가지의 사람이 있다고 한다. '롱슬리퍼'와 '숏슬리퍼'. 고등학교 시절부터 느낀 것이지만 나는 전형적인 롱슬리퍼이다. 주위 친구들은 4시간만 자거나 며칠을 자지 않아도 멀쩡한 경우도 있는데, 나는 그렇게 하면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
그 덕분에 재수학원에 다닐 때 꽤나 고생했다. 그때는 5시간 정도밖에 못 잤는데, 그렇게 하면 하루하루가 가시밭 길이었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꾸벅 졸고 있는 나를 볼 수 있었다.
롱슬리퍼인 나는 대학교에 와서도 수면시간을 고수했다. 나는 학기중에 잠에 들면 정확히 8시간이 지나 잠에서 깼다. 내 몸은 기이할만큼 신기한 생체 시계였다. 시험기간에도 밤을 새는 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그렇게 하면 다음날 시험을 못 보는 수가 있었다.
하지만 방학 기간이 시작되자 생체 시계가 파업을 선언했다.
그럼 나는 숏슬리퍼가 될 수 있었을까?
난 오늘 12시간을 잤다.
하루의 절반을 자고 일어나다니. 시계가 파업 선언을 한 이후로 나는 '슈퍼롱슬리퍼'가 되었다.
방학은 내 게으름을 극한으로 시험할 수 있는 시간이다.
잠에서 깨고도 할 일이 없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두가지이다. 계속 자거나 일어나서 몸을 움직이거나. 학기가 시작되면 나에게 선택지란 없다. 수업을 가든, 과제를 하든 일단 일어나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선택지가 있잖아? 그럼 전자를 버릴 이유가 없다.
나의 게으름은 억눌린 욕망의 방출일지도 모른다. 3개월동안 억눌렸던 마음이 두번째 선택지를 무력화한다.
사람의 뇌에는 합리화를 담당하는 부서가 존재한다. 오늘도 그렇다. "다음주면 이것도 못하는데 뭐 어때" 하는 마음의 소리가 울려퍼진다. 나는 그 말에 홀라당 넘어가 이불 속을 파고든다. 일어날 마음이 도저히 생기지 않았다. '조금만 더'라는 말은 무제한 반복 재생됐다.
왜 자고 일어난 직후의 이불은 구름 위처럼 포근한가. 깨어나면 죄 없는 이불만 원망한다.
어릴 때는 시간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정작 시간이 생기고 보니 어디에 쓸지 몰라 누워만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보면 차라리 누군가 무엇을 하라고 강제하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아직도 고등학교 수준의 계획력에 머물고 있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잠과 나의 악연은 꽤나 유서깊은 전쟁이다. 내일은 이것과의 전쟁에서 이겨보리라 다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일 당장 해야할 일을 만들어보려 한다. 그것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인식을 내 머리에 각인시켜야 한다.
그렇게 조금씩, 스스로 이겨낼 힘을 키우다 보면 언젠간 100전 100승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