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인품덕에 높은 자리인 CRO로 승진하고 나서는 다시 '임원 VS 심사역'으로 만났습니다.
어느 날 투심 위에서 난해한 심사건을 브리핑할 때였습니다.
거의 모든 분들이 '왜 이런 자극적인 걸 들고 왔냐'라고 핀잔을 주던 그때, 임원들 앞에서 이런 식으로 말씀하시더군요
"쉽지 않네. 그런데 이 심사역은 이걸 어떻게 이렇게 자세히 준비한 거예요? 대단하네."
남 모르게 응원하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아쉽게도 그건은 부결되었지만 그분의 응원은 큰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몸이 조금 안 좋아지셨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제가 자처해서 한번 찾아갔습니다.
원래 그런 성격이 아닌 저인데, 왠지 모르게 그날은 꼭 뵙고 싶었습니다.
결재 문서에 사인하시라고 내밀자 갑자기 저를 앉혀 두고는 인사 담당 팀장에게 전화하더군요.
"잠깐만요. 인사팀장님. 혹시 OO심사역 아세요? 이 녀석 심사역만 오래 해서 고리타분해요. 자기주장이 강해서 CRO 의견도 종종 무시하는 싹수없는 친구죠. 그런데 싸가지 없이 일을 객관적으로 처리하니까 부실이 없어요. 그렇다고 승인을 적게 내주는 것도 아니고. 이런 친구는 조금 더 큰 롤을 받아야 하지 않나 싶어요."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일부러 승진 분위기를 만들어 주시려는 시도였다고 합니다.
저에게는 정말 고맙고 좋은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훌륭한 분을 상사로 두었는데 왜 상사복이 없다고 이야기하는지 궁금하죠?
이유는 말없이 챙겨주시던 그 CRO분께서 작년에 갑자기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좋은 사람들과 같이 근무하다 발령이 나서 길게 근무하지 못하고 헤어져보기는 했지만, 이렇게 세상을 떠난 경우는 저에게 처음이라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자신을 인정해 주고 아껴주는 상사와 오랜 기간 근무할 수 있는 것도 직장생활에 있어 큰 복이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