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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니파더 Nov 24. 2024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1)

내가 만났던 리더

"당신처럼 윗사람 복이 없는 사람도 드물 거야!"


주말에 시간이 나면 와이프랑 등산을 하는데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나온 것이 바로 '상사 복'이었습니다.


맞습니다. 저 상사 복 없는 사람.

그런데 여기에는 단점만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항상 '누가 나를 키워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스스로 더 노력하게 되었기 때문이죠.


그나마 여기까지 온 것도 '날 도와줄 사람이 없을 테니 노력이나 하자'는 생각이 도움을 준 것이라는 의미.


최근에 여러 가지 일로 '어디 괜찮은 리더 없나?'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상사 복 없는 저지만 개중에는 그래도 괜찮은 분들이 있었던 듯합니다.


오늘은 몇 안 되는 제가 만났던 괜찮은 리더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좋은 상사에게 필요한 7가지 요건


첫 번째 주자는 전 직장의 CRO.


이분은 제가 꼬맹이 시절에 만났는데 지금도 인상적인 그림이 기억 속에 있습니다.


첫 번째 장면....


첫 대면에서 '자기는 영업점 생활을 거의 안 해서 일 모른다'는 고백과 함께 시작했죠.


그러더니 '모르는 걸 물어볼 테니 잘 알려달라'라고 이야기하더군요.


처음에는 단순한 립서비스 일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습니다. 정말 쉴 새 없이 일에 대해 묻기 시작하더군요.


예를 들면,


'수출 신용장에서 Nego라는 말이 우리가 흔히 아는 Negotiation의 약자이냐?'부터 시작해서,


'대기업 직원들에게는 어떤 식으로 영업을 하냐?'까지,


세부적인 것까지 하나하나 따져가면서 물어봤습니다.


무엇보다 놀랐던 것은 관찰력이었는데, 질문 자체가 직원의 업무를 세심하게 살펴봤다는 걸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은 진짜 일을 알고 싶고 배우고 싶어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죠.

또한 위압적이지 않고 매우 '친절하게' 다가왔다는 것이 킥이었습니다.


한참 어린 직원인데도 '업무 전문성으로 치면 당신이 상사다'라고 이야기하면서 묻고 묻고 또 묻기를 반복.


신기한 것은 한 1년 정도 그 시간이 반복되니 제가 하는 실무 업무도 많이 파악하시더군요.


이후에는 영업점장을 거쳐 지역본부장으로 승진도 하셨습니다.


이때 경험은 저에게 긍정적인 자극이 되어주었고 그 뒤로 저도 후배들에게 질문하는 습관을 갖게 된 것 같아요.


두 번째 장면...


지역본부장으로 승진해서는 저와 본부장 VS 심사역으로 만나 실사 자리에서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서로의 위치 (?)가 조금 바뀌었지만 그분의 '배우고자 하는 마음'과 '친절함+배려심'은 여전하더군요.


여수에 있는 선박 여객업체 건이었는데 내려가서 대표이사와 면담하고 운영상황도 직접 체크해 봐야겠다고 하자,


"심사역이 내려가는데 영업본부장이 안 가는 게 말이 안 되지"하시면서 일정을 다 제치고 혼자 내려오셨습니다.


같이 내려오면 심사역이 불편할까 봐 기차도 따로 타고 오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 배려심이란!!!)


실사 자리에서는 다른 질문 없이 제가 이야기하는 걸 가만히 듣고만 계시다가 끝에 한마디 하더군요.


"우리 회사에서 제일 잘하는 심사역입니다. 이 친구가 안된다고 하면 저도 어쩔 수 없어요."

대부분 고객 앞에서 '이 심사역이 내가 잘 안다'라고 으스대는 사람들은 많이 봤지만 이분은 정말 달랐습니다.


결국 고객으로부터 유리한 조건 다 받아내면서 자금 지원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결과도 좋았습니다.


'프런트와 심사가 한편이 되면 이런 거래도 성사되는구나'라는 걸 확실하게 인식시켜 준 계기가 되어준 건입니다.


괜찮은 직장 상사 알아보는 법 5 | 지큐 코리아 (GQ Korea)


세 번째 장면...


훌륭한 인품덕에 높은 자리인 CRO로 승진하고 나서는 다시 '임원 VS 심사역'으로 만났습니다.


어느 날 투심 위에서 난해한 심사건을 브리핑할 때였습니다.


거의 모든 분들이 '왜 이런 자극적인 걸 들고 왔냐'라고 핀잔을 주던 그때, 임원들 앞에서 이런 식으로 말씀하시더군요


"쉽지 않네. 그런데 이 심사역은 이걸 어떻게 이렇게 자세히 준비한 거예요? 대단하네."


남 모르게 응원하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아쉽게도 그건은 부결되었지만 그분의 응원은 큰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몸이 조금 안 좋아지셨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제가 자처해서 한번 찾아갔습니다.


원래 그런 성격이 아닌 저인데, 왠지 모르게 그날은 꼭 뵙고 싶었습니다.


결재 문서에 사인하시라고 내밀자 갑자기 저를 앉혀 두고는 인사 담당 팀장에게 전화하더군요.


"잠깐만요. 인사팀장님. 혹시 OO심사역 아세요? 이 녀석 심사역만 오래 해서 고리타분해요. 자기주장이 강해서 CRO 의견도 종종 무시하는 싹수없는 친구죠. 그런데 싸가지 없이 일을 객관적으로 처리하니까 부실이 없어요. 그렇다고 승인을 적게 내주는 것도 아니고. 이런 친구는 조금 더 큰 롤을 받아야 하지 않나 싶어요."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일부러 승진 분위기를 만들어 주시려는 시도였다고 합니다.


저에게는 정말 고맙고 좋은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훌륭한 분을 상사로 두었는데 왜 상사복이 없다고 이야기하는지 궁금하죠?


이유는 말없이 챙겨주시던 그 CRO분께서 작년에 갑자기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좋은 사람들과 같이 근무하다 발령이 나서 길게 근무하지 못하고 헤어져보기는 했지만, 이렇게 세상을 떠난 경우는 저에게 처음이라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자신을 인정해 주고 아껴주는 상사와 오랜 기간 근무할 수 있는 것도 직장생활에 있어 큰 복이 아닌가 싶습니다.


마치 오 차장님을 상사로 둔 미생의 장그래처럼 말입니다.


...


CRO의 웃음소리가 그리운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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