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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 down vs Bottom up

바람직한 리더의 역할

by 고니파더

"제가 리더로서 할 수 있는, 그러니까 여러분한테 드릴 수 있는 가장 큰 도움은 딜을 위에서 찍어 누르는 환경을 만들지 않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


최근 인터뷰 자리에서 들은 모 CEO 분의 이야기가 무엇보다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큰 방향을 정해주는 그림을 짜주고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주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라고 믿던 저에게 큰 울림을 주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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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최근에 투자 검토를 한 사례가 오버랩되었죠.


간단히 말해 이건은 '투자를 하기도, 그렇다고 안 하기도 뭐 한', 말 그대로 애매모호한 것이었습니다.


세부 조건을 보니 투자에 실패해도 원금은 보장되고 상대방에서 제시하는 목표 수익률은 어마 무시하고.


프런트 주장을 그대로 인정하자니 세상에 이보다 더 좋은 투자 상품은 없더군요.


'이렇게 좋은 상품을 왜 다른 기관투자가들은 투자하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해서 다시 페이퍼를 써보도록 했습니다.


하나의 포인트는 찾았는데 능력 부족으로 논리가 조금 빈약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경쟁사 심사역들과 소통하면서 확인에 확인을 거듭.


결국 답을 찾았습니다.


결론적으로 본건은 겉으로 보이는 수익률은 다소 커 보이지만 불확실성이 상당히 내포되어 있고,


해당 상품에 투입되는 리스크 대비 리턴을 계산해 보니 전통적인 유가증권 대비 낮은 성과를 보이더군요.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해서 투자를 집행할 때의 장점,


그리고 리스크 관점에서 우려되는 단점에 대해 리더에게 설명했습니다.


사실 이 건은 금액이 소액이라 리더 결정까지 필요한 건은 아니었습니다만, 새로운 상품이고 타사에서 취급하지 않는 이슈들이 있어서 보고를 했죠.


결론은?


심사의견과 반대로 진행하자! 였습니다.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타사에서 진행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안 하는 거? 논리가 맞지 않는다.


(단순히 타사에서 안 하니 우리가 안 한다는 것이 아니라, 타사가 안 하는 이유와 우리가 찾은 이유가 매칭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 그렇다면 수많은 경쟁사 리포트는 과연 무엇을 위해 만든 것입니까?)


2. 목표 수익률을 보수적으로 추정한 것은 이해하나, 그 의도는 딜을 안 하겠다는 것에서 온 것이 아니냐?


(IM 자료의 수익률 추정을 그대로 믿고 따른다면 미들과 백오피스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3. 내가 이 업체 잘 안다. 나름 괜찮은 업체니 해도 무리 없다. (내가 잘 안다?)


참고로 각 항목에 덧붙여진 괄호 안의 내용은 제 마음속 외침이었습니다.


당연히 절대 밖으로 내뱉지 않았습니다.


직장 생활은 이어가야 하니까요.


다만 아쉬웠습니다.


심사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아쉬웠던 것은 한 30% 정도?


나머지 70%의 아쉬움은 의사결정이 Top-down 방식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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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상 심사역이 최대한 많은 것을 검토했는데 찾아내지 못한 이유나 근거로 심사 의견이 뒤집어지는 경우는 패배감이 들지만 그래도 납득이 갑니다.


이런 경우는 반성하게 되고 '다음번에는 더 열심히 해야지'라는 각오라고 다지게 되죠.


그런데 '이 건은 내가 잘 알아'라는 식으로 위에서 미리 정한 결론에 맞춰서 일이 진행되면, 자신이 하는 일이 무의미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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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상 진짜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되는데, '어차피 내가 고민해 봐야 의견 반영이 안될 텐데 뭘...'이라는 생각이 조직 전체로 퍼지게 되면, 그야말로 끝입니다.


일에 대한 고민이 사라지면 인사이트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죠.


알다시피 인사이트가 없는 조직은 발전할 수 없습니다.


서서히 도태되는 길을 걷게 됩니다.


결국 이렇게 찍어 누르는 Top-down 방식을 경계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일으키는 나비효과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직원들의 의견 수렴을 적극적으로 하겠다는 말, 립 서비스는 누가 못하나'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것을 리더의 제일 첫 번째 임무라고 이야기했던 것을 들으면서 가슴이 뛴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는 하루였던 것 같네요.


이상을 좇고 있는 건가?


기본에 충실하고자 하는 건가?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한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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