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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거 아닌 것은 별거인 것

신한투자증권 사고

by 고니파더

'별것도 아닌 일에 너무 힘쓰지 마!'


과거, 이 말을 늘 입에 달고 다니던 선배가 하나 있었습니다.


작은 오타, 심사서에 기재된 단위 금액 오류, 그리고 업체로부터 받는 골프와 술 접대까지.


'이래도 되나요?' 혹은 '괜찮을까요?'라는 질문에 한결같이 '별것도 아닌데 뭘'이라고 치부해 버리던 선배.


시중은행 ‘홍콩ELS’ 담당 직원, 증권사 골프접대 받아|동아일보 (donga.com)


부서에 전입한지 얼마안된 주니어 심사역인 저는 한동안 그 선배가 하는 말만 잘 듣고 따랐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마 어느 지방 출장 자리였을 겁니다.


술 한두잔이 오고가는 자리에서 선배의 안 주머니에 백화점 상품권과 비슷한 것들이 들어가던 그 날 이후.


'별것 아닌 것이 별거다'는 생각이 들어 다음부터는 같이 가는 출장 자리도 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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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흘렀고 저는 어느순간 선배가 말하던 '별거 아닌 일에 매달리는'심사역이 되었습니다.


작은 오타 하나, 단위 금액의 오류 등은 제 기준에서 '간단한 실수'라고 이야기 하고 넘어갈 수 없었죠.


100백만원과 100억원은 너무 큰 차이니까.


한번의 실수는 이해해 줄 수 있지만 실수가 반복되면 다음부터는 그 사람의 리포트는 보지도 않았습니다.


신뢰가 깨져 버렸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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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심사역이 자신의 의견은 없이 기존의 페이퍼, 혹은 외부 보고서만 그대로 차용하는 것도 지적했습니다.


일을 진심으로 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저 선배는 너무 깐깐해' 혹은 '혼자만 잘난줄 안다'라는 이야기들이 들려오더군요.


당시 제 자신을 성인군자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이 작은, 별거 아닌 것에 신경도 제대로 못쓰는 사람이 큰 일에 신경을 쓸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에 Micro-managing에 더 집착했던 것 같아요.


후배들이 하나둘 생기며 저의 이런 모습을 버거워 한다는 노이즈가 들리던 순간, 재밌는 일이 생깁니다.


심사역들을 로테이션 하는데 제가 속한 파트에 가장 많은 지원자가 몰렸다고 하더군요.


...


신한투자증권의 파생상품손실 기사를 접한 오늘입니다.


누군가는 또 말할 겁니다.


'별거 아닌 일에 무슨 한도 조정까지 검토하냐?'


'자본 규모를 감안하면 충분한데 반응들이 너무 오버한다?'


신한투자증권 운용손실·스팩 철회, 투자자 신뢰 와르르? < 금융 < 경제 < 기사본문 - 업다운뉴스 (updownnews.co.kr)


핵심은 이겁니다. 작은 것을 놓친 큰 금융기관이라는 것.


정확한 내막은 잘 모르겠지만 작은 것부터 신경쓰지 않은 업무 방식이 화를 키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물론 크게 크게 큰 그림을 그리는 일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작은 일을 꼼꼼히 정성들여 하는 사람에게나 가능한 말이 아닌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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