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불출 아빠의 자식 자랑
고등학생이 된 큰 아이가 학교 과제로 제출한 글에 대한 피드백을 요청했습니다.
이 녀석과는 어린 시절부터 이런 식으로 발표 연습이나, 면접 연습을 많이 해왔죠.
너무 가혹하다 싶을 정도로 피드백을 제대로 (?) 주곤 했는데 예전에는 눈물도 쏟고 그랬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저보다 더 한 것 같아요.

아래는 학교 과제의 일부로 큰 아이가 쓴 글입니다.
제 기준 '저보다 더 잘 쓴 글'을 제 아이가 썼다고 생각하니, 기특하기도 하고 해서 기록 차원에서 글을 남겨 봅니다.
팔불출 아빠의 철없는 자식 자랑으로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인간은 환경을 보전할 의무가 있는가?'
지구 온난화, 해수면 상승 등의 환경문제들이 심각해진 요즘 ‘환경’ 이라는 키워드는 모든곳에서 보인다.
그러나 인간이 꼭 환경을 보전해야할까? 따지고보면 인간도 하나의 동물이기에 여태까지 다른 종이 그래왔던 것처럼 생존을 넘어서도 편리를 위해 이기적일 수 있지 않은가?
아니면 환경을 파괴한만큼 다시 지구를 되돌려놓아야 하는가.
데카르트는 자연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의식이 없는 기계적 존재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인간과 자연에는 무슨 차이가 있는가?
우선 인간은 이성과 자율성을 지니고 있기에 도덕적 지위를 지닌다. 여기서의 도덕적 지위란 윤리적으로 고려할 대상이라는 뜻을 내포한다.
반면 자연은 이성, 자율성이 결여되어 있어 도덕적 지위를 지닌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도덕적 지위가 없는 자연은 도덕적 지위를 가지고있는 인간의 편의와 발전을 위해 이바지하는것이 가치있게 사용되는 것이다.
따라서 데카르트는 자연을 인간의 욕구 충족을 위한 도구로 인식하는 도구적 자연관을 지니고 있다.
나는 인간은 환경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의견은 절대 자연을 위한 것이 아닌, 우리 인간을 위해서이다.
환경, 즉 자연을 보전하면서 발생하는 불편함이 존재할 수 있다고 하지만 나는 이점에 동의할 수 없다.
요즘 환경단체, 환경 캠페인들에 꼭 보이는 문구들이 있다.
바로 ‘지구가 아파요’ 라는 식의 표어인데, 이건 너무 모순된 표현이다.
지구는 하나도 아프지 않다.
인간이 살기 힘들어진 환경이 되는것 뿐, 인간이 존재하기 전에도 지구는 존재했고, 인간이 멸종되더라도 지구는 여전히 존재할것이다.
환경 보전이라는 키워드 자체도 인간중심적이다.
우리는 너무 자주 우리가 지구의 주인이고 대단한 의무와 책임으로 환경을 보호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지구에 계속 살기 위해서 환경 보호는 생존을 위해 밥을 먹고 햇빛이 필요한 것 만큼 당연한 일이다.
공룡이 멸종해도 지구가 유지되었듯이 우리 인간이 없어진다고 지구의 끝이 아니다.
우리만 멸종할뿐이다.
따라서 지구를 지켜주는것이 절대 아니라 우리의 생존을 위해 적합한 환경을 조성하는 이기적인 행위임을 기억해야한다.
인류에게는 환경 보전의 의무가 없다. 위에서 언급한 인간을 위한 이기적인 환경 보호란 말 자체가 모순된다.
우리가 지구의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연을 효과적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지구의 역사에서 문명을 이룩한 종족은 46억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우리 인간밖에 없었다.
인간이 생존할 수 있었고 여기까지 발전하는데에 필수적이었던 자연이라는 요소를 보호라는 명목으로 포기한다는것은 모순적이다.
자연을 활용하는 다른 방법이 필요한 것이지 자연의 활용을 포기하는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인간은 자연을 무분별하게 활용해오면서 지금 우리의 위치까지 오게되었다.
나는 위에서도 말했듯이 인류의 종말이 지구라는 행성에는 영향을 조금도 미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이 상태로는 우리가 당연하게 누려왔던 자연의 혜택을 더이상 누릴 수 없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점을 들어 환경을 보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환경을, 자연을 지켜야하는 이유는 지구를, 자연을, 다른 생명을 위해서가 아닌 이제는 우리를 위해서 환경을 보전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