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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이니까...

중1 나의 아들과는 매일 실랑이가 벌어진다. 스마트폰을 부모인 내가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용시간 관리 앱을 뚫고 유튜브 보고 있는 것은 일상이 되어 허락하에 스마트폰을 준다. 자신의 할당량을 다 쓰고 난 뒤 더 하면 안 된다고 묻는다. 게다가 허용적인 엄마가 오면 엄마를 반가워하기 보다 엄마의 스마트폰을 만지기 시작한다. 엄마의 폰에도 자신이 하는 게임 앱을 깔아 놓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하려는 아들과 말리고 조절시키려는 부모의 줄다리기 싸움이 꽤 팽팽하다. 많은 집에서 볼 수 있는 광경이지 않을까 싶다.


자유학기가 끝나고 이제 제대로 된 지필고사를 난생 처음 본다. 학원을 보내지 않기에 집에서 시험공부라는 것을 시켜보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여전히 아들은 아빠가 자기가 게임을 하지 않는 것을 원한다고 오해하고 있지만 나는 항상 얘기한다. 네가 해야 할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게임을 하는 것은 뭐라 하지 않는다고. 현재 아들의 삶은 게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게임을 하는 것 만큼 인생을 살면 지금과 같을 수는 없다고 본다.


어제는 나의 한계를 느꼈던 날이었다. 정해놓은 하루 학습량을 꾸역꾸역하고 채점을 해서 틀린 문제를 다시 풀게 했다. 이 때부터였다.

'틀린 거는 나중에 풀겠다'

'틀린 거는 왜 풀어야 하나'

'그냥 틀린 거 두면 안 돼나'

같은 온갖 말들을 던지더니 급기야는

'그냥 공부 안 하겠다' 까지 갔다.

그러더니 TV를 보겠다고...당연히 안 된다고 했다. 긴 말하지 않았다. 내가 과외 선생님도 아니고 막내딸도 봐주어야 하고 애들 밥 차려주고 마무리 해야 할 일들이 있었다. 아들의 말과 행동이 탐탁지 않았던 나는 여기서 긴 말을 하면 하나마나 하는 잔소리가 될 것 같고 화풀이가 될 것 같아 꾹 참았다.


아들은 자기 방에 들어가더니 침대에 주먹을 치면서 울부 짖었다. 한 참 있다가 나와 내일 하면 안 되냐면서 TV를 보겠단다. 늦었으니 30분만 보라 했더니 두번째 난리. 다시 울부 짖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내일 학교 다녀와서 오자마자 하겠다며 TV를 보겠다고 한다. 저 포기하지 않는 집념은 뭐라도 할 놈은 분명한데...더 늦긴 했지만 내일 등교시간이 조금 늦어져서 30분을 허락해주었다.


아들이 안방에서 TV를 보는 동안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나 왜이리 힘들지? 뭐가 불편한걸까?

우리 아들이어서 그런 것 같다. 남의 집 자식이었으면 내가 똑같이 했을까? 아니. 협상했겠지. 살살 구슬렀겠지..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것은 아들이 한다고 약속 한 것은 해내는 연습에 성공하길 원했고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길 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처럼 쉬운일은 아니다. 최선을 다하는 것, 그리고 약속을 지키는 것 말이다. 어쩌면 나 스스로에게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렇게 사는게 맞으니까 너도 그렇게 살아라고 말한것이다. 나도 그렇게 못 살면서 아들에게 너무 강요하지 않았나라는 미안함이 이제와서 올라왔다.


아..이래서 다들 부모들이 학원보내나? 이 꼴 못보니까 보내나보다. 보내버릴까? 아니다.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아들과 해결해야 할 숙제를 학원에 떠 넘기는 것일 뿐. 아들이 문제를 앞에두고 풀기 어려워할 때, 틀렸을 때 짜증낼 때 아빠인 나는 다시 풀기 귀찮고 또 틀릴 것 같은 불안감을 공감하고 친절하게 용기와 동기를 북돋아주어야 했다. 그런데 나는 그의 모습에 더 짜증내고 화나는 표정으로 일관했다. 어쩌면 나의 반응이 아들을 자극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들이 저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통제와 혹독함으로 표현되는 일이 빈번하다.


아직 자랄려면 한참을 기다려줘야 할 아들을 조금은 멀찍이 떨어져서 바라보아야겠다. 나와 너는 다르기에 내 신념을 너에게 강요하지 않기를. 조금 더 따뜻하게 가르쳐 줄 수 있기를.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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