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장. 버티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착각

‘조금만 더’가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

by 노멀휴먼

직장인들이 가장 자주 하는 말 중 하나는

“조금만 더 버텨보자”라는 말이다.

이 말은 언뜻 성실한 태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회피에 가까운 경우도 많다.

버틴다는 말 뒤에는

바꾸기 두려운 마음이 숨어 있는 것이다.


버티는 것이 능력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끝을 알 수 없는 버팀은 언젠가 소모로 변한다.

지속 가능한 버팀과

스스로를 갉아먹는 버팀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직장에서 흔히 말하는

‘근성’이라는 단어도 비슷한 맥락에 놓여 있다.

근성은 성장을 위한 끈기일 때 의미가 있지만,

자신을 망가뜨리는 집착일 때는 해롭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구분하지 못한 채

자신을 몰아세운다.


나 또한 “조금만 더 하면 괜찮아질 거야”라고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오래 버텼던 적이 있다.

하지만 조금만 더는 늘 조금 더를 낳을 뿐이었다.

그 과정에서 가장 많이 잃었던 것은 결국 나 자신이었다.


버티는 동안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지쳐 있는지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일이 쌓이면 해결하면 되고,

상처가 생기면 잠깐 참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감정은 숨긴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버티려는 마음에는

‘지금까지 버텼는데 여기서 포기하면 안 된다’는 심리가 있다.

하지만 그 심리는 이미 소진된 상태에서

더욱 깊은 소진을 만드는 위험한 사고이다.

기울어진 균형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멈춤이 필요하다.


버티는 사람들은 대체로

‘문제는 곧 해결될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있다.

하지만 아무 변화가 없는 환경에서 문제는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

시간이 해결해주지 않는 문제도 분명 존재하니까.


사람들은 버틸수록 상황이 나아질 거라 믿지만

그 믿음에는 근거가 부족하다.

종종 변화는 기다림에서 오지 않고 선택에서 찾아온다.

결정이 없는 버팀은 단지 시간을 길게 끄는 일일 뿐이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버티기 문화’가 미덕으로 포장되어 있다.

버티는 사람을 칭찬하고 떠나는 사람에게는 이유를 묻는다.

그러나 버티는 것이 언제나 옳다는 믿음은 위험한 통념이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버티는 것이 성장이 아니라

소모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매일의 피로가 누적되면서 삶의 온도가 점점 낮아지고 있었다.

그때서야 버틴다는 것이

결코 능력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버틴 시간이 길어지면 자기 자신을 설득하는 기술만 늘어난다.

“괜찮아, 조금만 더”라고 말하며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다.

그러나 감정을 무시하는 습관은 결국 마음의 균열을 만든다.


사람들은 어느 순간 자신의 감정이 무뎌진 것을 느낀다.

무뎌짐은 편해진 게 아니라 지친 것이다.

지친 마음은 버티는 데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


버티는 것이 미덕이라는 착각은

자신을 돌보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

스스로를 챙기지 않는 사람은

조직에서도 결국 소모품처럼 취급된다.

자기 보호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버티는 과정에서 잃는 것은 단순히 시간만이 아니다.

자존감, 활력, 자기 효능감 같은 중요한 자원들이 함께 소진된다.

이 자원들은 한 번 무너지면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많은 사람들이 ‘조금만 더’라는 말을 반복하는 이유는

변화가 두렵기 때문이다.

변화에는 선택이 필요하고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사람들은 그 책임을 감당하기 싫어 버티기를 선택한다.


버티는 것이 항상 잘못된 건 아니다.

하지만 버티는 이유가 분명해야 한다.

의미 없는 버팀은 결국 삶을 지치게 만든다.


우리가 해야 하는 질문은 “얼마나 버틸 수 있는가”가 아니다.

“왜 버티고 있는가”이다.

질문의 중심이 바뀌면 선택의 방향도 달라진다.


버티다 보면 어느 순간 결정을 미루는 것이 습관이 된다.

결정을 미루는 사람은 변화의 타이밍을 놓친다.

삶에서 중요한 선택은 결국 타이밍의 문제이기도 하다.


버티는 것이 미덕이라는 착각을 벗어나는 순간

삶은 새롭게 열린다.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용기가 바로 변화의 첫 걸음이다.

버티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분명하게 보이는 순간이 온다.


버티기와 소모는 다르다.

자기를 해치는 버팀은 더 이상 용기가 아니다.

떠날 용기를 준비하는 것이 결국 자신을 지키는 길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1장. 퇴사라는 단어의 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