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했던 만큼 마음이 무너질 때
실망은,
기대가 있었기 때문에 찾아오는 감정이다.
나는 그 사람을 믿었다.
이 관계는 조금은 다를 줄 알았다.
이번 일은 잘 풀릴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그 믿음이 부서지고 난 뒤
남은 건 조용한 실망감이었다.
말을 아끼게 되고,
마음을 덜 내밀게 되고,
다음부터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습관처럼 따라붙는다.
실망이라는 감정은
화처럼 격렬하지도 않고,
슬픔처럼 눈물로 흘러나오지도 않는다.
그저 무너진 기대 위에
조용히 주저앉은 마음 하나.
그게 실망이다.
직장생활을 하며,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배운 건
사람에 대한 기대를
어디까지 해야 하는가에 대한 감각이었다.
말로는 "괜찮아요"라고 했지만
뒤에서 딴소리를 하는 사람,
협업하자고 해놓고
막상 내 일이 되어버린 프로젝트,
마지막까지 믿고 따랐던 선배의 무책임한 행동.
그런 장면들을 겪을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너무 기대했던 걸까?
아니면, 그럴 만한 사람이 아니었던 걸까?’
하지만 실망은
늘 남 탓만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어느 날은,
나 자신에게 실망할 때가 있다.
말을 아껴야 할 자리에서
괜한 감정으로 상처 주는 말을 뱉고,
나도 모르게 무심했던 하루들,
해야 할 일을 미루다
스스로를 탓하게 되는 저녁.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나를 믿지 말걸."
그런 생각이 스치면,
마음 한켠이 쑥 꺼지는 것 같다.
실망은 참 묘하다.
상대에게 느낄 때는 화가 되기도 하고,
나에게 느낄 때는 자책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중심엔 ‘기대’라는 감정이 있다는 것.
내가 그만큼 바라고, 믿고, 애썼기 때문에
실망이라는 결과가 더 아프게 다가오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나는
실망할 때마다 감정을 무시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 기대했으니까 아픈 거야.”
“그만큼 마음을 썼다는 뜻이니까
괜찮아, 다 지나갈 거야.”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여본다.
누구도 내 감정을 완전히 이해할 순 없지만
적어도 내가 나를 이해해줘야
이 마음이 너무 외롭지 않으니까.
실망은
사람을 조심스럽게 만든다.
더 이상 기대하지 않으려 하고,
더 이상 마음을 쓰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그건,
결국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기도 한다.
다음엔 더 잘 분별하게 되고,
더 따뜻한 관계에 집중하게 되고,
내 마음을 너무 쉽게 내어주지 않게 되니까.
우리는 실망하면서 성장한다.
무너지기도 하고, 다시 일어서기도 하면서
조금씩 관계의 온도, 거리, 깊이를
배워가는 것이다.
지금도 가끔은,
말없이 연락이 끊긴 사람을 떠올리며
내가 뭘 잘못했는지 혼자 곱씹는다.
애써 웃고 넘긴 상황 뒤에
묘하게 남은 씁쓸함도 있다.
그 모든 게,
내가 사람에게 기대했다는 증거다.
그래서 실망은,
결국 사람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 감정이다.
그걸 너무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실망할 줄 아는 사람은
그만큼 깊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