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아직 마음이 뛰는 사람이구나, 싶을 때
설렘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숨어 있다.
꼭 누군가를 좋아할 때만 찾아오는 것도 아니고,
거창한 일이 벌어질 때만 느껴지는 감정도 아니다.
때로는
새로 산 셔츠를 꺼내 입고 출근길에 나설 때,
메일함에 도착한 좋은 소식 앞에서,
혹은 오랜만에 연락 온 사람의 메시지 한 줄에서
설렘은 조용히 고개를 든다.
예전엔 설렘이
젊음의 전유물인 줄 알았다.
스무 살 무렵, 누군가를 처음 좋아했을 때처럼
숨길 수 없고, 통제되지 않고,
그냥 가슴이 마구 뛰는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깨달았다.
설렘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다만, 그 모양이 조금씩 달라졌을 뿐이라는 걸.
회사 일에 치이고
루틴 한 하루에 익숙해진 어느 날,
새로운 업무를 맡게 되었고
그 안에서 느껴지는 긴장감과 호기심이
의외로 설렘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다.
“이거 잘할 수 있을까?”
“이번에는 뭔가 좀 다르게 해보고 싶다.”
그 생각만으로도
출근길 발걸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나도 아직, 무언가에 기대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그 마음 하나가 하루를 바꾸었다.
또 어떤 날은
오래 잊고 있던 책을 다시 꺼내 들었다.
예전에 밑줄 그어뒀던 문장을 다시 읽는데,
그때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 짧은 문장 하나에 심장이 뛰었다.
퇴근 후에도
설렘은 여전히 내 곁에 머물고 있었다.
냉장고 문을 열고
저녁 메뉴를 고민하는 순간,
오늘 하루 나를 위해 어떤 음식을 먹을까 하는
그 사소한 고민조차도 작은 설렘이었다.
가끔은
회사에서 스치는 인연이
뜻밖의 대화로 이어지고,
함께 웃게 된 그 짧은 시간에
알 수 없는 두근거림이 피어오르기도 한다.
누구를 좋아하게 된 것도 아니고,
무슨 의미가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 순간만큼은
“나, 지금 설레고 있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설렘은 우리를
다시 살아 있게 만든다.
지치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무언가를 기다리게 하고,
조금 더 나은 내가 되고 싶게 만든다.
나도 언젠가
"이 나이에 무슨 설렘이야"라는 생각을 한 적 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게 생각한다.
나이에 상관없이,
환경에 상관없이,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이 있다면
그게 바로 설렘이다.
우리는 너무 자주
설렘을 과소평가한다.
‘괜히 기대하면 실망할지도 몰라’,
‘괜히 설렜다가 아무 일도 없으면 어쩌지.’
하지만 설렘은
꼭 결과를 바라고 느끼는 감정이 아니다.
그저 '지금'이 좋기 때문에,
이 순간이 특별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마음이 먼저 반응하는 것이다.
나는 이제
설렘을 모아두려 한다.
작은 기대,
조금 빠른 걸음,
알 수 없는 웃음.
그 모든 것들이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감정이라는 걸
너무 늦지 않게 깨달았으니까.
설렘은 멀리 있지 않다.
그건 우리가 아직
무언가를 기다릴 줄 알고,
스스로에게 기대를 거는 사람이라는 증거다.
그러니 오늘도,
그 작은 떨림 앞에서
나는 조용히 말한다.
“그래, 나 아직 살아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