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여행기
‘짐 다 쌌어?’
‘아니 아직… ’
‘오늘 출발 아니야?’
‘어 지금부터 싸야지.’
30대 초반부터 시작해서 거의 20년이 넘게 일 년에 한 번 내지는 두 번 정도 해외를 다녔기 때문에
나는 짐을 싸는 나름의 원칙이 있다.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은 현지에서 조달한다.
예를 들면 샴푸, 바디샤워 같은 것을 굳이 무겁게 챙겨가지 않는다.
그리고 옷도 여행 가서 패션 쇼하지 않을 것이기에 간단히 챙겨간다.
여기서 꿀팁은 버리기엔 아깝고 입기엔 뭐 했던 옷들을 챙겨간다.
그래서 돌아올 때 현지에서 다 버리고 온다.
이것은 나만의 노하우이다.
무거운 것이 질색인 나는 여행 다니면서 특히 공항에서 무거운 캐리어 때문에 절절매는 것이 싫어서 최대한 가볍게 간다.
옷이나 화장품, 신발을 챙기는 대신 먹을 것을 챙겨간다.
컵라면, 새우깡, 초코파이 등등
현지에서 선물로도 꽤 괜찮은 아이템들이다.
참 잘난 듯이 적어 내려갔다.
나름 뿌듯하기까지 했었다.
여행을 가기 전에 호기롭게 짐 싸는 것에 대해 이렇게 적어놓고 갔었다.
하지만, 현실은 늘 변수가 있다.
막상 이번에 이집트 여행에선 너무 짐을 챙겨가지 않아서 마음속에 아쉬움들이 자주 올라왔다.
젊었을 때는 여행 가기 전에 설레어서 며칠씩 짐을 싸기도 했었다.
필요한 것들을 구입하고 여름에는 스포츠 샌들을 사고 겨울에는 두툼한 오리털을 장만하기도 했었다.
이번에 이집트를 갈 때는 새로 사서 가는 것이 거의 없었다.
친한 선교사의 집으로 방문하는 것이기도 했고, 거기 가면 다 있다고 해서 음식도 그다지 챙기지 않았다.
작년에 하와이를 갈 때는 햇반과 김, 그리고 즉석 국까지 야무지게 챙겨갔었는데 이번에는 햇반도 챙기지 않았다.
이집트 비행기를 타야 하는 그날 오후에야 짐을 싸기 시작했다.
이것저것 가방에 짐을 싸기 시작했다.
여권, 칫솔, 치약, 그리고.. 화장품(이것도 샘플로 챙겨가자), 온도를 보니 여름이니 여름옷 몇 개, 속옷 몇 개, 그리고 여름 샌들 하나, 그리고 약(꼭 먹어야 하는 면역억제제를 조금 통에 부어서 비행기 안에서 먹을 수 있게 따로 챙기고... 음 유효기간이 다 되어 가는 이 영양제들은 가서 먹고 와야겠군.. 챙기고... 비타민C 꼭 챙겨야지)을 챙겼다.
이런 생각의 흐름으로 이것저것을 챙겨 넣었다.
그리고, 가지고 오라고 한 스케치북, 나의 초보그림도구들, 그리고 아이패드(노트북은 무거워), 충전기 이렇게 챙기고 나니... 어라! 가방이 많이 남네?!
너무 안 가져가나? 그럼 라면이라도 몇 개 가져가야지! 하면서 편의점에서 과자 몇 개와 라면을 샀다. 즉석국도 많이 사놓아서 그것을 다 챙겨 넣었다.
그래도 남는다. 23kg 가방 반이 남는다. 기내용 캐리어에 옷들을 넣고 나니 별로 넣을 것이 없다.
같이 출발하는 선교사에게 전화를 했다.
'짐을 다 쌌는데도 가방이 남는데 어떡하지?'
'아 그럼 공항에서 우리 짐좀 더 넣을게요~'
이집트는 23KG 가방 두 개를 수화물로 가져갈 수 있고, 한 개의 기내수화물과 작은 노트북 가방까지 가능하다. 이미 23KG 가방 하나는 선교사에게 짐을 싸라고 준 상태였는데도 내 짐은 24인치 여행용 가방의 반도 안되었다.
‘아프리카를 가는데 이렇게 먹을 것을 적게 가져가도 될까? ’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뭔가 사려고 해도 시간이 늦어버렸다.
공항에서 만난 우리는 짐을 분배해서 알차게 실어 보냈다.
오버차지도 물지 않고 잘못 부친 짐도 없이 잘 통과했다.
기내용 수화물에는 물이나 100ml 이상의 용기는 제외해야 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나이가 드니 총명이 떨어지는지 액상영양제를 기내용에 넣었다가 친구들이 알려줘서 위탁수화물에 넣었다.
장시간 비행(도하까지 9시간+ 카이로까지 3시간)을 해야 하기에 단감도 잘라서 비닐팩에 넣었다. 비행기 안에서는 내가 가져온 음식은 먹을 수 있다. 예전에는 김밥도 싸서 비행기 안에서 먹었었다.
만약에 기내식이 마음에 안 든다면 내가 먹고 싶은 것을 잘 챙겨서 가면 된다.
짐이 많으면 거기에 지쳐서 이런 것은 생각도 못하게 된다.
막상 현지에 도착하니, 햇반을 안 챙겨간 것이 참 아쉬웠다. 역시 음식은 한국음식이지~
왠지 외국에 나가면 그렇게 한국 음식이 그립니다. 특히 춥고 배고팠던 시절에 먹던 콩나물, 두부, 어묵 이런 것들이 더 그리워진다.
여행을 가는 목적은 그냥 쉼이었다.
익숙한 환경을 떠나 먼 곳에서 다른 느낌으로 릴랙스를 하고 싶었다.
그림도 그려보고, 따뜻한 날씨인 이집트에 가면 그냥 많은 돈을 내지 않아도 여유롭게 지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남쪽의 도시인 룩소르를 가보고 싶었다. 이것이 다였다.
친구가 짠 일정은 미리 듣지도 않았고, 딱히 궁금하지도 않았다.
오랫동안 신뢰가 쌓여 있어 그 커플의 성격상 알차게 준비했을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여행 말미에 리조트를 가는 일정을 현지에서 알게 되었다.
정말 어울리지 않게 트레이닝복으로 아름다운 리조트를 걸어 다니려니 조금 부끄러웠다.
해외여행 시 짐은 이런 것들을 고려하고 싸야 한다.
1. 현지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대충 조사해서 TPO(Time, Place, Occasion)에 맞게 챙겨가는 것이 좋을 듯하다.
2. 여행을 가는 목적에 따라 짐들을 다르게 챙겨가야 한다.
그곳이 휴양지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자원봉사자로 뭔가를 더 챙겨주고 오고 싶은 곳이 될 수 있다.
3. 여행의 목적지에 따라 수화물의 개수와 무게가 다르다. 반드시 확인해 보아야 한다.
4. 본인의 비상약품은 반드시 챙겨라. 아무리 짐을 줄여도 현지에서 절대 구할 수 없는 것이나 자신의 생명에 직결된 것들은 1순위로 챙겨야 한다.
5. 여행 갈 때와 다시 돌아올 때의 짐은 완전히 다르다. 반드시 여유공간이 있어야 한다. 기념품들이나 면세물품들이 들어갈 자리가 있어야 한다.(돈이 많으면 그냥 오버차지 물고, 가방 하나 더 사면 된다.)
6. 현지에서 함께 하는 친구들이나, 현지인들을 위해 작은 선물을 미리 준비해서 가면 좋다. (예를 들면 초코파이라도 하나씩...)
오랜 여행에 지친 내 친구들은 이번에는 나이도 들고 몸도 힘드니 바리바리 싸서 가지 않을 거라고 나한테 미리부터 이야기했었다. 그래서, 나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었다.
한국에서 생각했던 것들은 현지에 가면 생각이 많이 바뀐다.
조금이라도 뭔가 더 가져갔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것들이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샤워기필터, 컵라면, 햇반, 그리고 친구들을 위한 선물들을 가져갔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은 참 좋은 것이 많고 풍성하다. 여행을 가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