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사는 지혜

[위클리도서관] 한내지혜의숲도서관

by 제리


[위클리도서관]은 국문과가 전하는 도서관 가이드입니다.
방방곡곡 도서관을 다니며 공간, 인간, 큐레이션(책)에 대한 인사이트를 나눕니다.
더 많은 이들이 도서관을, 책을 사랑하게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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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내지혜의숲도서관

주소 서울특별시 노원구 마들로 86

운영시간

09:00 – 18:00 (월~금)
09:00 – 17:00 (토)
*일요일 휴관



About, 공간

함께 사는 지혜


이곳에 처음 갔을 때가 기억난다. 나보다 훨씬 책을 좋아하는 블로그 이웃이 월계에 있는 도서관이 다녀왔다고 글을 올렸다. 외관 사진을 찍어 올렸는데,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나도 방문했다. 한창 창업을 준비하던 때라 노트북을 챙겨가서 책은 안 읽고 키보드만 타닥타닥 쳐대며 일을 했다. 충전기가 없어서 무척 불편했던 기억도 난다. 도서관 입구 한 구석탱이에, 결코 방문객이 쓰라고 설치해둔 것 같지는 않은 위치에 콘센트를 발견해서 겨우 핸드폰 충전기를 꽂았다. 독특하게 도서관 내부에 지역 아동 센터를 함께 운영했는데, 마침 점심시간이라 바닥에는 아이들이 밥을 받아가다 국을 흘린 자국도 있었다.


언제부턴가 ‘편한 곳’은 ‘사람과의 접점이 적은 곳‘이 된 것 같다. 지하철의 편한 곳은 한쪽 면만 사람과 닿는 맨 끝자리, 카페의 편한 곳은 벽과 가까운 구석 자리, 식당에서는 귀에 에어팟을 끼고 청각적 연결까지 차단해버리는 이들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심지어 집에서도 소파 구석. 코로나19를 거치며 우리 사회가 느끼는 편안함의 감각은 고립에 가까워졌다.

세포 시절부터 모체 안에 있다가 10개월이 지나면 모체로부터 분리되어 나오고, 어릴 때는 보통 보호자에게서 5m 이상 떨어지지 않다가 커가며 보호자로부터, 친구로부터, 점점 멀어진다는 걸 생각하면 인간의 본질은 분리가 아닌 연합이다.


그런 점에서 이곳을 두 번째로 방문했을 때, 그 떠들썩함이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를 빼놓고는 이곳을 충분히 느낄 수 없었다. 서서 서가를 구경하다보면 아이들이 뛰어다니다 툭 치기도 한다. 귤 모양의 삔을 꽂고, “이 언니 혼자 뭐 먹는다”라며 꼰지르고, 너 얘 좋아하냐며 소리지르고는 쫓아오는 ’얘‘를 피해 우다다다 달려가는 아이들을 볼 수 있다.

이런 청각, 촉각, 시각적 감각을 느낄 수 있는 도서관은 없다. 그곳에서 뛰노는 모습을 보면,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어른들이 큰 테이블에 앉아 손가락을 말발굽치듯 타닥거리던 키보드가 그토록 좁아보일 수 없다.




소통을 설계하다


이제 좀 더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제공 서울시.jpg 제공 서울시

한내도서관은 ’지혜의 숲‘이라는 이름처럼 숲과 나무가 겹쳐진 모습을 형상화해 자연과 소통하는 공간을 표현했다. 2017년 서울시 건축상에서 영예의 대상을 안았다. 수년 간 방치됐던 공원 내 분수대를 철거한 후 조성한 건축물로, 그 시작점부터 죽은 공간을 살리는 재생의 의미가 담겨있다.


부지만 살린 게 아니다. 여러 사람이 모이고 어우러지며 성장해가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주민들은 공청회에서 “아동을 위한 돌봄시설이 도서관과 함께 있으면 어떨까”라는 제안을 내놓았다. 또, 지역 자원봉사자들이 직접 운영할 수 있는 작은 카페가 있으면 이웃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는 사랑방이 될 것 같다고도 했다. 카페의 수익은 다시 도서관 운영에 보탤 수 있으니 일석이조였다. 그렇게 탄생한 한내지혜의 숲은 도서관, 아동 돌봄공간, 그리고 마을카페가 유기적으로 어우러진 복합 문화공간이 되었다.


아이들을 중점에 둔 건축물인데, 회색의 주된 컬러다. 왜일까? 설계를 주도한 운생동건축사사무소 장윤규 대표의 말이 인상적이다.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건물보다는 지붕 사이사이에 걸려 있는 하늘이었습니다. 오히려 ‘빨노파’ 원색이 공해가 될 수 있지요. 심플한 외벽을 넘어 연결된 자연의 모습에 아이들이 집중하도록 하고 싶어 이 같은 외장을 택했습니다.


그만큼 사람을 중심에 두고 설계했다는 것이 느껴진다.

진정한 '함께'의 의미를 알고 건축한 듯 싶다.




한내에서 만난 책

IMG_3067.jpeg <방귀학개론>, 스테판 게이츠


자신을 ‘열렬한 방귀 애호가’라고 소개하는 영국의 한 음식 탐험가가 쓴 책이다. 웬만하면 교양 있는 이미지를 유지하고 싶었지만, 한내도서관을 방문할 때마다 도저히 이 책을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우리의 몸을 제대로 아는 것이야말로 교양 중의 교양 아닌가. 지식 뿐만 아니라 몸으로 ‘체화’하는 교양을 쌓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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