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위로는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by 사랑의 빛

진정한 위로는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 고도원의 아침 편지 중에서 -


쓰담쓰담....

퉁퉁 부은 얼굴로 터벅터벅 힘 없이 들어와 앉은 친구 엄마의 등을 문질러주었다. 말을 할 수 없었다. 아니. 친구 엄마의 얼굴이 부은 이유를 들은 순간, 적어도 그 순간의 나는 알고 있었다. 백 마디 말보다 달궈진 마음으로 내민 손길이 위로가 된다는 걸.





2024년 3월.

드디어 둘째가 어린이집에 등원하기 시작했다. 그건 곧 나에게 육아 해방 일지 쓸 기회가 왔다는 의미다. 출산ㆍ육아로 꼼짝없이 1년 반, 무른 나를 단단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나의 선택은? 마더와이즈 강의였다. 자존감이 바닥이었다. 나름 잘 살아내고 있었지만 산후우울증에 호흡이 가쁜 날들이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자리가 부담스러웠기에 신청기간 마지막까지 망설였다.

고민 끝에 접수를 완료하고 총 6주의 중 두 번째 모임이 있던 날. 강의가 시작되고 한참이 지나서야 같은 그룹의 친구 엄마가 들어왔다. 입구에서부터 그녀의 얼굴이 눈에 띄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많이 울고 들어오는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옆자리 앉은 그녀의 등에는 아직도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맞닿은 다리를 토닥.. 토닥.. 살며시 두드렸다. 한 손으로 입을 막으며 속삭인다. "제가.. 사실.. 중기에.. 유산을 했거든요.."





4년 전이다.

"이제 안정기 접어들었으니 안심하시고 잘 있다가 4주 뒤에 오시면 돼요" 담당 주치의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고 돌아왔다.

4주 뒤. 정기검진 받던 초음파실. 심장이 터져버릴 듯한 싸늘한 적막만이 맴돌던 몇 초가 지났다. 뒤덮은 두려움을 깬 건 주치의 선생님이었다. "어머, 000님. 우리 아기가 잘못된 것 같아요. 어머..." 그 순간, 복중에서 빛나던 나의 별이 깊은 하늘의 천사가 되었다.


당시 나는, 첫째가 여섯 살이었다. 자연 임신으로 쌍둥이 임신을 했지만 너무 무리했던 탓에 9주 차 선둥이를 유산했다. 남은 한 생명을 지켜야 했기에 집에서 눕눕 생활만 하다가 20주 다되어 정기 검진을 갔는데.. 중기유산... 청천벽력...이었다.


이미 여러 차례 초기 유산을 했다. 그런데 중기 유산은 상상도 못 했고 주변 어디에서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일이었다..


산모들이 출산을 위해 들어가는 분만실.

분만실 곳곳, 갓 태어난 아기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울려오는 사이~ 나는 유도 분만으로 사산아를 낳았다. 눈을 뜨고도 눈이 멀어버린 듯한 일상.. 신랑도 곁에 없었다. 중기 유산 이틀 뒤, 신랑은 2주 해외출장을 나갔다. 날벼락같은 중기 유산에 그 속은 오죽했을까... 세상은 내게 참으로 냉혹했고 잔인했다.






그녀의 속삭임이 내 상처의 웅덩이에 던져졌고 순식간에 내 마음은 아픔의 광풍으로 흔들렸다. 잊고 있었다. 애써 잊으려 했다. 지금 품에 안은 둘째 덕분에 다 아문 줄 알았다. 그런데 묻어둔 아픔을 내 마음은 그대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도 4년 전 나처럼 비슷한 주수에 아기 천사를 보냈다. 몇 개월 쉬고 난 후 시술받으며 계속 시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체휼의 눈물이 나보다 먼저 그녀를 위로하고 있었다. 조심스레 용기를 내었다. 그리고 말없이 그녀의 무릎에 손을 올렸다. '토닥.... 토닥...' 그러니 그녀가 얼굴을 두 손에 파묻고 소리 없는 울음을 토해냈다. 내 가슴 어딘가에서 차오르는 뜨거운 눈물이 뿜어져 나왔다. 그렇게 수 분을 그냥 같이 울었다. 그리고 잠시 뒤 마음을 추스른 나는 그녀의 등을 쓰다듬었다. 그렇게 그날 나는 온몸과 마음으로 그녀를 위로했다.

어쩌면 그녀를 위로하며 4년 전 나를 위로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중기 유산 이튿날 신랑이 해외 출장을 가게 되어 급히 올라오신 친정 엄마는 마치 중한 범죄를 저지르고 할 말 없는 죄인처럼.. 나와의 대면을 애써 피하고 계셨다. 신랑은 부재중. 안 그래도 죄인인 양 눈물을 삼키고 계신 엄마 앞에서 난 울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내 아픔을 위로받을 틈도 없이 마음의 빗장이 잠겨버렸다.

그 때문이었을까.. 누구에게도 위로받지 못하고 어떻게든 상처를 덮으려 더 애쓰는 그녀가 마음에 못처럼 박혔다.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보고 싶을까... 얼마나 힘들까... 내가 내 아이를 잃은 것처럼 정신 놓고 울었다. 내 아기를 가슴에 묻은 그날보다 더..





진정한 위로는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공감의 깊은 한숨, 혼이 담긴 따스한 시선,
귀 기울여 온몸으로 들어줌, 이런 것들입니다.
그것이 상대의 존엄성을 살려내고,
나의 존재 가치를 높이는 일도 됩니다.


그녀와 나는 강의에서 같은 그룹으로 처음 본 사람이었다. 같은 조라는 것 외에는 특별한 교집합이 없었다. 그런데 나의 아픔에 그녀의 아픔을 포개어 얹으니 위로가 되었고, 그날 이후 우리는 편하게 집밥을 먹을 수 있는 언니ㆍ동생이 되었다.

그녀의 아픔을 위로하는 데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따듯한 시선으로 토닥이고 쓰다듬으며 함께 울었다.
상실의 아픔에 삶의 의미 자체가 흔들려 떠내려가던 어느 날, 존재 자체로 충분한 그녀의 존엄성을 살려냈다. 위로하고 위로받고 나의 존재 가치를 높이는 일도 되었다.

위로가 필요한가?

그럼 나처럼 힘든 사람, 등 뒤에 흐르는 눈물을 보자. 그리고 살며시 토닥여주자. 그리고 같이 울어주자.

내 곁에 한 사람을 위로하는 마음이 혼자 울고 있는 내 상처를 포개며 위로받는다.

상처가 별이 되어 살리는 위로를 전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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