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살아냅시다

by 사랑의 빛



그럼에도 살아냅시다
- 판교 IC, 어느 교회 현수막에 걸린 문구 -



아빠가 하늘집으로 가셨다. 2004년 1월 설 연휴 끝날. 그해 우리 엄마 나이 마흔둘이었다. 홀시어머니 모시며 두 남매 키워내기에 젊은 미망인의 삶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결혼 전 우리 본가는 시골에서도 보기 드물게 남아 있는 아주 옛날 흙집이었다. (연애시절 시골집에 한번 다녀간 적 있는 우리 신랑은 그 집을 초가집이라고 했다^^;;;)

흙 벽에 나무 대문이 있고 문을 열고 들어서면 오른쪽에 앵두나무가 심겨 있었고 그 아래 작은 장독대가 있었다. 가운데 마당 한쪽에는 우물 있는 샘이 있었고 마당을 사이에 두고 안방, 사랑방이 있었다. 연탄난로, 장작창고, 부뚜막, 아궁이, 솥단지. 요즘에는 사회 교과서에나 전통 가옥 사진으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아빠가 돌아가시니 돌보는 이 없는 집 곳곳에 빈틈이 보였다. 기왓장 대신 올린 낡은 석가래가 군데군데 삭아 부서져 내렸다. 밖에서 보면 우리 집 대문이 50도즘 기울어져 있었다. 곧 쓰러질 것처럼. 기댈 곳 잃고 무너져 내린 엄마의 마음처럼.






아빠가 하늘집에 이사 가신 지 한, 두해즘 지났을 때다. 나는 지방에 있는 대학을 다니며 주말에는 엄마가 계신 집으로 다녀가곤 했다. 여름을 향하던 어느 날이다. 엄마가 샘둑에 올려놓은 농약병을 멍하니 바라보셨다. 그리고 나를 부르며 말씀하셨다. "아가, 저거 먹고 엄마도 죽을까?" '삐----------------' 내 머릿속에서 아빠의 마지막 기계음이 동시에 울린 순간이었다.

힘든 시집살이에 평생 아픈 남편 병시중까지.. 효자 남편, 늘 시어머니 편이어도 존재만으로 가림막이 되었었다. 몸 불편한 장애인 남편, 경제적 가장 역할 한번 제대로 못했다. 그래도 가장이 있어서 지켜온 가정, 버텨온 삶이다. 전부 내 탓 같은 숨 막히는 자책. 시어머니 봉양에 아들, 딸 키워낼 막막함. 극심한 외로움과 깊은 우울. 마음 나눌 친구 하나 없었다. 무슨 소망이 있었겠나. 왜 죽고 싶지 않았을까...

올해 내 나이 마흔둘이다. 엄마가 미망인이 된 나이. 상상도 안된다. 아니 나는 미망인으로 살아내야 했던 엄마의 무게를 가늠 조차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살아냅시다"


판교 IC 부근을 지나는 어느 교회 건물 외벽에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버틸 힘없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참 많은가 보다.


OECD 38개 국가 중 자살률 1위, 대한민국. 39분마다 1명씩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오늘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이 비단 우리 엄마뿐이겠나.. 힘든 일은 너무 많다. 힘든 일 때문에 죽는 게 아니다. 힘든데 말할 곳 없는 외로움 때문에 버티지 못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살아야 한다. 살아내야 한다. 살아있으면 또 살아진다.





엄마라서 살 수 있었겠지?
엄마니까 살아야 했겠지?

그럼에도 엄마는 살아냈다. 죽고 싶다던 우리 엄마는 어느덧 환갑을 지나 60대 중반을 향하고 계신다. 아들까지 결혼시키고 요즘은 손주바라기로 사신다. 그럼에도 살아냈더니, 그래도 살아지는 오늘을 살고 계신다.

'엄마'
엄마라는 남은 사명이 그럼에도 엄마를 살아내게 했다.
엄마라는 인생의 사명이 그럼에도 엄마를 살게 한다.






"그럼에도 살아냅시다"
당신의 남은 사명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오늘을 살게 하는 인생의 사명이 있습니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