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평가를
마치 내가 그런 사람인 것처럼
받아들이지 마세요
난 키가 작다. 성장 개월 수와 나이에 따라 자라야 하는 사회의 평균 신장이 있는데 나는 평균 이하다. 유전적으로는 엄마 키가 작으시고 아빠도 크신 편이 아니다. 게다가 성장기에 자주 아프고 워낙 약골이었어서 더 못 큰 게 아닐까..라는 웃픈 생각도 든다.
중학교 때다. 1학년 같은 반에는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좋아하던 녀석이 있었다. 그 친구는 초등학생 때도 평균 이상으로 컸다. 큰 키 덕분에 농구선수로도 활동을 했고 당시 농구로 유명했던 서울 휘문고에서 스카우트 제의도 받았다. 큰 키가 부러워서였을까? 그 친구를 꽤 오래 좋아했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면단위에 소재한 아주 작은 시골에 하나뿐인 곳이었다. 좋아하는 친구와 같은 반이 된 것으로 아주 설레던 어느 날. 무슨 이야기 끝에 그 친구 입에서 나온 말이 "난쟁이 똥자루 같이 작은 게"..
그 뒤로 한참의 시간 동안 날 계속 난쟁이 똥자루라고 부르며 놀려댔다. 그 말을 들은 주변 친구들은 키득키득 거리며 같이 읍소했고 종종 나를 난쟁이 똥자루~라고 부르기도 했다.
중학교 졸업한 지 30년 가까이 된다.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나를 놀려대던 "난쟁이 똥자루"는 여전히 14세 어린 사춘기 시절의 내 자리에 남아있다.
무례함에 맞서지 못한 분노일까?
수치심과 부끄러움의 상처일까?
불쾌한 별명을 듣고도 아무 저항을 하지 않았던 이유.. 어쩌면 나 자신이 난쟁이 똥자루처럼 작은 내 모습을 나의 전부라고 받아들였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키 작은 내가, 나라는 사람. 그 전부는 아닌데.. 스스로도 그렇게 나를 어느 지점에서 버려두고 있었던 것 같다. 장난을 핑계 삼은 더 심한 모욕을 피하고 싶었던 최선의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기억의 시간을 거슬러 가도 몹시 소란하던 교실 구석에서 나는 마음이 구겨진 속상함에 덩그러니 혼자 있다.
그래도 괜찮았다. 그리고 괜찮다. 자존감이 높았나? 워낙 좋아하는 친구여서 짓궂은 말도 관심으로 받아들였었나? 어떤 감정으로 통과했는지 잘 모른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난쟁이 똥자루"를 이야기하며 재밌는 에피소드를 읽듯 웃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그 녀석 참 기발하다. 어떻게 그런 단어를 생각했지?' 하며 웃는다.
최근 가을학기에 열린 평생교육원에서 강건한 가정 만들기 프로젝트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상담 소장님께서 그러셨다.
"타인의 평가를 내가 마치 그런 사람인 것처럼 받아들이지 마세요"
맞다. 그러면 된다. 그런 모습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 모습이 내 전부는 아니니까 말이다.
세상이 온통 평가 제도에 익숙해졌다. 심지어 가정이란 첫 번째 가장 작은 사회에서도 말이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원가정의 문화가 다르니 가치관에 차이가 있는 건 너무 당연할 수 있는데 서로가 틀리다고 한다. 그리고 내 생각과 방법대로 상대를 바꾸려고 한다. 그렇게 상대의 평가를 내 것으로 받아들이며 상처를 받다 울타리가 무너지는 일들이 많다.
사회는 더한 것 같다. 평가하는 사람은 상대방에 대한 자신의 평가가 아주 정확하고 어떤 오차도 없는 것처럼 쏟아붓는다. 평가의 대상이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듣지 않으려 한다.
반대로 평가받는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때 "응, 나 그런 사람 아니야" 혹은 "응, 그런 모습도 있어. 하지만 그게 내 전부는 아니야"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도 누군가는 크게 격분할 테고 또 다른 누군가는 난쟁이 똥자루의 나처럼 아무 말 못 하고 지나갈 것이다.
나 자신에게 그리고 누군가의 평가에 힘겨워하는 사람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다.
"나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의 평가에 갇히지 마세요.."
평가에 사로잡혀 숙여진 고개를 들고 "반사!!" 하며 어깨를 펴라고...
이제 나는 어린 시절 별명이 수치스럽지 않다. 왜? 그 별명이 붙을 만큼 대한민국 여성 신장의 평균 이하인 나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담 소장님 말씀처럼 난쟁이 똥자루처럼 작은 내가 나의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비록 친구는 내 작은 키를 비하하며 놀려대는 재미로 불렀겠지만 나는 그 친구의 놀림에 갇혀 있지 않았다.
키 작아도 할 거 다 한다. 와글거리는 시장, 퇴근길 비빌 틈 없는 지하철에서 파묻혀 잘 보이지 않는 불편함도 있지만^^;;
"타인의 평가를
마치 내가 그런 사람인 것처럼
받아들이지 마세요"
소장님의 조언을 되새겨본다.
그리고 양 어깨를 두드리며 오늘의 나를 격려한다.
"이만하면 충분한 나"
"오늘도 참 살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