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어 줘서 고마워

by 사랑의 빛



살아있어 줘서 고마워

- 큰 사고에서 죽음의 문턱을 넘은
동생에게 보낸 메시지 중 -


내게는 세 살 터울 남동생이 한 명 있다. 지금은 결혼해서 한 여자의 남편이고 두 돌 돼 가는 아들의 아빠가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나이 먹으면 결혼하고 애 낳고 당연한 일상일지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동생의 오늘은 결코 당연하지 않다.




대학교 때다.

2학기 개강이 얼마 지나지 않은 늦은 저녁, 핸드폰의 진동이 연이어 오기 시작했다. 집 전화번호 호출 메시지가 여러 개 왔다. 음성메시지도 연이어 찍혔다.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은 불길한 직감. 강당 근처 공중전화로 달려갔다. 음성 메시지에 꺼이꺼이 숨 넘어가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가, 00 이가 사고 났어. 수술 들어가. 엄마한테 전화해"




시골의 가을은 마을이 어둠에 잠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열매를 기다리는 농부들이 곳곳에 설치된 가로등을 끄기 때문이다. 곡식이 추수할 만큼 잘 영글어야 하니까 누구 하나 나서서 불평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남동생은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학생이었던 남동생이 늦은 저녁에 왜 사고 현장에 있었는지 모른다. 살던 동네와 방향도 정반대로 멀었던 동네에 무슨 이유로 갔었는지도 모른다.


인생의 남은 사명이 있었기 때문이겠지...


해 떨어지고 앞이 보이지 않는 시골길 건너편에서 일 마치고 귀가 중인 경운기 한대. 그 경운기 운전자가 남동생을 발견했다. 그날 그분의 시선에서 단 몇 초만 벗어났더라면 아마 동생은 돌아올 수 없는 긴 여행을 떠났을 거다.




그 당시 사고 신고자였던 경운기 운전자의 증언에 의하면, 동네로 들어오는 다리 건너편에서 불빛을 봤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불빛이 공중으로 날아가며 사라졌단다. 그래서 불빛이 사라진 위치를 찾아갔고 다리 아래로 떨어져 있는 동생을 발견하고는 신고한 거라고 했다.


동생은 다리 아래 공사현장 콘크리트 위로 떨어졌다. 팔, 다리 외상이나 장기손상은 없었다. 심지어 얼굴에도 상처 하나 없었다. 문제는 떨어지면서 부딪힌 머리였다. MRI 결과 뇌에 출혈이 있는 것을 발견했고 응급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군 소재의 닥터를 믿기 어려운 집안 어른들이 큰 병원으로 이송해서 수술하기를 권하셨다. 그때였다. "보호자가 원하시면 가셔도 됩니다. 그런데 이동 중에 환자가 죽어도 저는 책임이 없습니다."


엄마는 아들의 생명을 위해 선택해야 했다. 내 아들이 구급차 타고 가다 죽을 수도 있다는데 어떤 엄마가 죽을 길에 아들을 태울 수 있을까.. 그렇게 남동생은 시골 종합 병원에서 뇌수술을 받게 되었다. 밤을 지새운 긴 수술이 끝나고 이제 남동생 얼굴을 볼 줄 았았다. 그러나 다음날 동생은 다시 수술방에 들어가야 했다. 수술 직후 찍은 사진에서 머리에 피고임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약으로 말리는 방법도 있는데 그러면 회복이 늦다는 의사 소견이 있어 재수술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동생을 기다리는 며칠,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았다. 두 번의 수술을 마치고 일반병실로 내려왔다. 회진을 마친 주치의가 보호자를 호출했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뇌전증이 후유증으로 올 수도 있습니다" 엄마는 병원 바닥에 주저앉아 울음을 삼켰다. 안 올 수도 있다 하니.. 괜찮을 거다.. 엄마를 붙잡는 내 목소리도 꺼져 내렸다.




"살아있어 줘서 고마워 내 동생♡"

사고 후 안부 메시지에 빼놓지 않는 말이다. 사고 났을 때 동생 나이 열일곱이었다. 그 후로 20년이 지나고 있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던 뇌전증은 운 좋게 내 동생을 피해 가주지 않았다.


언제 발작을 할지 알 수 없다. 운전할 때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발작 시 머리나 다른 신체부위가 다치지 않기를 바란다. 20년 넘게 하루 두 번 시간을 지켜 약을 먹고 있다. 다행인 건 최근 뇌파 검사에서 더 심해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끝이 날까.. 끝이 있을까..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것처럼 불안과 긴장의 연속이다. 그래도 괜찮다. 살아있으니까. 20년 동안 수십 번 쓰러지고 실려가며 왼쪽 어깨뼈가 으스러졌다. 그래도 감사하다. 살아있으니까.


머리를 다친 후유증 탓일까? 사고 이후 자기 통제력도 많이 낮아졌고 작은 일에도 쉽게 흥분하고 화를 낸다. 때문에 엄마의 걱정은 줄어들지 않고,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에 노심초사하지만 살아있는 날의 감사를 놓치지 않기로 했다. 아빠가 되었어도 철부지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동생 때문에 힘든 날이 왜 없을까마는.. 그래도.. 듬직한 가장이 되고 어엿한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동생이란 존재의 기쁨을 빼앗지 못한다.




가족.

내게는 가족이 늘 아픈 손가락이다.

가족은 내게 맞는 사람으로 선택할 수 없다. 싫다고 버릴 수도 없는 게 가족이다.

뜻대로 안 되는 자녀, 사랑하는 만큼 때때로 배신감을 느끼는 배우자, 받은 사랑 돌려드릴 시간을 붙잡지 못하는 부모님.. 때문에 힘든 순간은 너무 많다.

그러나 그냥 하루, 그저 한 번 즘은 '살아있는 존재 자체'로 감사할 수 있지 않을까?


"살아있어 줘서 고마워"

사랑이 고픈 가족을 안아줄 수 있는 한 문장. 슬며시 내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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