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이렇게 가면 내가 너무 미안하잖아"

by 사랑의 빛

말은 마음을 싣는다.

혹시 상대방이 들을 수 없는 상황일지라도 말은 할 수 있다. 듣지 못해도 내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을 가진 수단이다.


2004년 겨울의 한복판에 있던 1월. 엄마는 20년 동안 아빠에게 건네었던 그 어떤 날보다 따듯한 마음을 싣고 말하셨다. 눈물과 함께 집어삼키듯 읊조린 한마디..


"여보, 이렇게 가면 내가 너무 미안하잖아"


수술 후 깨어나지 못한 채 누워 있던 아빠를 향해 엄마가 한 말이다. 짧은 한 문장에 다 전하지 못한 엄마의 숱한 마음이 들어 있었다.




그 시절 우리 집은 아주 오래된 흙집이었다. 시골집에 가본 우리 신랑 말을 빌리면 '초가집'이었단다. 2000년대 주택으로는 보기 드문 옛날 집이었다. 시골이어도 가구당 한 대의 차 소유는 기본이었다. 하다못해 작은 트럭일지라도. 그런데 우리 집은 차가 없었다. 아빠의 발이 되어주는 오토바이 한 대와 경운기. 그게 우리 집의 교통수단이었다. 그만큼 가난했다.


그렇게 가난한 형편에 수천만 원이 들어가는 수술은 그야말로 언감생심이었다. 그래도 해야 했다. 과부 땡빚을 내서라도 수술을 받아야 했다. 돈 없어서 남편을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으니까.


"다른 장기 다 너무 건강한데 왜 수술을 안 받으세요" , "비장만 수술하면 사는데 아무 이상 없어요" 아빠의 담당 주치의 말이다.


엄마는 선택해야 했다. 아니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돈이 얼마가 들어가든, 혹여나 빚더미에 앉게 될지라도. 남편을 살릴 수 있다는데 다른 선택이 어디 있었을까..


아빠의 생각은 달랐다. 아빠는 수술을 거부했다. 이유는 하나다. 돈이 없어서다.


"나는 어차피 죽는다. 죽을 사람 살리겠다고 빚 얻으면 나 죽고 애들 데리고 어떻게 사냐. 병원 안 간다"


아빠의 결심은 완강했다. 아내 앞에서 초연한 듯 큰소리친 아빠. 아빠라고 죽고 싶었을까. 그해 우리 아빠 나이는 서른아홉이었다. 그 젊은 날에 죽고 싶은 인생이 어디 있을까.


아빠는 살고 싶었다. 아니 살아야 했다. 자기 만나 평생 고생한 아내를 위해 남편의 자리를 지키고 싶었다. 눈에 넣어도 아픈 줄 모를 두 자녀에게 아빠로 살아줘야 하니까.


희망적인 의사의 소견, 엄마의 끊임없는 설득, 가장 좋아하는 큰 이모의 부탁까지. 삶에 대한 꺼지지 않은 불씨가 타올랐다. 그렇게 아빠는 수술을 결심하고 서울 병원에 들어갔다. 살아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마지막 서울행이었다.




아홉 시간 넘게 긴 수술이 끝난 지 일주일이 지나는 주말이었다. 예배를 마치고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자꾸 운다. 평생 아픈 남편 챙기며 살아온 엄마다. 아빠의 숨소리만 들어도 상태를 알 수 있었다.


"아가, 아빠가 이상해.. 눈을 안 떠. 불러도 대답을 안 해. 눈을 못 뜨면 꼬집을 때라도 움찔거리는데 전혀 반응이 없어"


수화기 너머 엄마의 불안이 전해왔다. 괜찮을 거다. 수술 잘 됐다 했으니 걱정 마셔라 했지만 불안했다.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심박수가 빨라졌다.


그다음 날, 스물두 번째 내 생일이었다. 친구가 생일 미역국이라도 먹고 가라며 생일상을 차려줬다. 먹지 않았다. 먹을 수 없었다. 내 생일보다 아빠 상태를 눈으로 먼저 봐야 했다.


생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지하철을 탔다. 스물두 번째 생일, 내게는 세상에 태어나 가장 지옥 같은 날이 되었다.


"패혈증으로 인한 합병증 때문에 이대로 못 일어나실 수 있으십니다"


생일날 아침 중환자실 면회시간.

담당 주치의가 엄마와 내게 전했던 아빠의 상태였다.


불과 하루 전이다.

"환자를 잘 치료하고 있고 환자 상태도 호전되고 있는데 보호자가 의사를 못 믿고 이러시면 어떻게 진료를 합니까??"


회복 중인 거라고 호언장담하던 의사의 입에서 나온 말.. 이대로 아빠가 죽을 수 있다는 말.


다리에 힘이 풀렸다. 주저앉았다. 그날이다. 의사 회진이 끝나고 엄마는 온몸에 호수를 꽂고 있는 아빠를 하염없이 쓰다듬었다. 그리고 말했다.


"여보... 이렇게 가면 내가 너무 미안하잖아....

나는 당신을 살리려고 그랬어.....

00 아빠, 일어나 봐....."


남편을 살리고 싶었던 간절함만큼이나 깊고 무거웠던 엄마의 미안함이.. 눈물의 무게로 뚝뚝 떨어지던 그 아침..


울음과 함께 삼켜지며 바들바들 떨리던 목소리가 20년이 지난 오늘까지 내 가슴에 메아리로 들리고 있다.




죽을힘을 다해 사랑했다.

돈 없어서 수술 못해 남편 보낸 매정한 아내가 되고 싶지 않았다.


살릴 수만 있다면..

살아있을 수만 있다면..

내 남편, 내 새끼들 위해 못할 게 무엇인가..

수술만 하면 살 수 있다는데 무조건 해야지..


이제는 내가 엄마에게 소망의 메아리가 되고 싶다.


"엄마, 이제 그만 미안함의 무게를 내려놓아요.

사랑.. 그것으로 이미 충분해요.

엄마로 살아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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