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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Yeo Dec 23. 2024

살면서 천사의 존재를 느껴본 적이 있는가?

혈소판 지정 헌혈이 뭔가요?

** 본 글은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과 관점을 바탕으로 작성된 것으로, 의학적 소견이나 전문적인 의료 정보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건강과 관련된 구체적인 증상이나 의학적 조언이 필요할 경우, 반드시 의료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시퍼렇게 들어버린 내 무릎의 멍을 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던 것이 생각이 난다. 혈액암에 걸린 아빠를 돌보는 일 다음으로 힘든 것이 바로 옆에서 간병하는 나 자신을 돌보는 일이었다. 담당 의사 선생님은 아빠 몸속의 암세포가 간뿐만이 아니라, 골수, 콩팥, 그리고 뇌 주변에도 이미 침투된 상태라고 했다. 밤새 통증에 시달리는 아빠를 지켜보느라 밤을 새우는 일이 잦아지자, 나의 체력 또한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첫 번째로 나의 왼쪽 어깨가 고장이 났다. 힘없이 축 늘어진 아빠를 일으키고, 끌어안고, 여기저기 누이기 위해 나는 늘 나의 왼쪽 어깨를 혹사시켰기 때문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아빠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복통에 가만히 침대에 누워 있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몸에 붙은 혈압 측정기, 링거 줄을 떼어 버리려 하기 일쑤였기 때문에, 난 온몸에 힘을 주어 그런 아빠를 막아 내고 진정시켜야 했다.



아빠 곁을 떠나기 싫어 미리 썰어둔 복숭아로 식사를 때우곤 했다.


당연히 식사도 거르기 일쑤였다. 계속되는 각종 검사, 아빠의 투석 스케줄까지 모두 따라다녀야 내 마음이 놓였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2주도 안 되어 5킬로가 그냥 쑥 빠져 버렸다.  넘어져서 무릎이나 팔꿈치에 피멍이 들기 일쑤였다. 잠시도 아빠를 홀로 두기 싫어 화장실에 다녀올 때도 늘 서두른 탓이었다. 그럼에도 난 전혀 상관없었다. 아빠만 살릴 수 있다면, 망가진 어깨? 피멍?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살면서 천사의 존재를 느껴본 적이 있는가?

나는 아픈 아빠 곁에서 얼굴도 모르는 천사들의 손길을 느꼈었다.


“아버님께서는 매일 혈소판 수혈을 많게는 세 번을 받으셔야 하는 상황이에요. 안 그래도 기증되는 양이 많지 않은데, 희귀한 AB형이셔서 수혈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요?”
“지정 헌혈에 대해 알아보시고, 가까운 지인분들에게 오늘부터라도 당장 부탁해 주세요.”
“혈소판 지정 헌혈이요?”


내게는 매우 생소한 말이었다. 부끄럽게도, 난 서른이 넘을 때까지 지정 헌혈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조차 몰랐다. 지정 헌혈이란 쉽게 말해 특정한 사람을 돕기 위해 헌혈하는 것을 말한다. 일반 헌혈은 혈액은행에 피를 기부하여 필요할 때 누구에게나 제공되지만, 지정 헌혈은 배정된 수혈 번호를 통해 특정한 사람에게 쓰이도록 지정된다는 점이 다른 것이다. 하지만, 아빠 앞으로 혈소판 지정 헌혈을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 또한 머지않아 알 수 있었다.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 제약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첫째, 당연히 아빠와 같은 AB형이어야만 가능하다.

둘째, 임신 경력이 있거나 몸무게가 50킬로 이하인 여성분은 건강 문제로 혈소판 기증을 할 수 없다.
셋째, 일반 혈액 기부와 달리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게다가, 혈소판 채취 기계가 있는 혈액 센터에서만 혈소판 기증이 가능하기 때문에, 사전 조사와 예약이 불가피하다.

이토록 넘어야 할 허들이 이미 많은데, 정작 가장 편한 직계 가족은 혈소판 기증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이는 가족 간 항체나 유전적 요인으로 인해 수혈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남에게 무려 두 시간이 소요될 수 있는 혈소판 기증을 미리 예약까지 해가며 해 달라 부탁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어마어마한 부탁인 것을 알면서도, 우리 가족은 친구, 지인, 직장 동료 할 것 없이 도움을 요청하기 시작했다. 하루라도 아빠가 혈소판 수혈을 받지 않으면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지정헌혈을 요청하기 위해 작성&공유한 글


몸과 마음이 지치는 순간에도 힘이 되었던 건, 남을 위해 서슴없이 도움의 손길을 뻗어 주신 얼굴 모르는 천사 분들 덕분이었다. 도움을 요청하고 며칠 뒤, 아빠 몫으로 들어온 혈소판이 매일같이 넘쳐났기 때문이었다. 담당 의사 선생님은 회진 때 직접 이런 말씀을 주시기도 했다.


“평소 아버님이, 또 아버님 가족분들께서 정말 잘 사셨나 봅니다. 덕분에 매일 아버님이 필요로 하는 만큼의 혈소판 수혈이 가능해졌습니다. 혹시, 남는 혈소판은 필요한 다른 환자들에게 기부해도 괜찮을지요? 가족분들이 원치 않으신다면 유통기한이 지난 후 폐기합니다.”
“그럼요! 기증된 귀한 혈소판이 낭비되지 않도록, 꼭 기부 부탁드립니다.”


천사들의 선한 영향력이 힘을 발휘한 것이라 나는 믿는다. 예를 들어 나의 지인이 또 다른 지인에게, 그리고 또 다른 지인에게 알려 가능성을 높인 것이다. 한 분, 한 분 연락해 사례를 하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기증 번호를 찾아내 따로 역 추적을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대신, 힘을 내어 보답하며 사는 것으로 그 감사함을 갚기로 나는 마음을 먹었다. 비록 나는 영국에 너무 오래 거주한 이력이 있어 헌혈은 할 수 없지만, 글을 쓰는 현재 작은 활동으로 그 은혜에 보답하며 살고자 노력하고 있다.


“아빠를 위해 이렇게 많은 분들이 노력해 주고 계셔. 감사해서라도 얼른 기운을 차려야겠다, 그렇지?”


정말 아빠에게 그리 말할 때까지만 해도 나는 기적이 일어나 줄 것이라 믿었다.
생판 남을 위해 도움을 주신 천사들을 봐서라도.

그리고 열심히 산 죄밖에 없는 우리 아빠를 봐서라도.
나는 곧 기적이 일어나 건강해진 아빠와 우리 가족이 다시 행복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내겐 아빠의 병상을 지키는 작은 일상조차 허락되지 않는 순간이 다가왔다.


“이대로는 투석조차 불가능합니다. 지금 당장, 중환자실로 옮기겠습니다.”


왜 기적은 천사들을 외면했을까.


다음 화에 계속.



이 글을 통해, 단 한 번이라도 타인을 위해 헌혈을 한 경험이 있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그 선행이 어떤 이에게는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이 되는지, 저의 당시 기억을 떠올려 그 감동을 전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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