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쁜 일은 좋은 사람에게도 일어날까?
** 본 글은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과 관점을 바탕으로 작성된 것으로, 의학적 소견이나 전문적인 의료 정보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건강과 관련된 구체적인 증상이나 의학적 조언이 필요할 경우, 반드시 의료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왜 나쁜 일은 좋은 사람에게도 일어날까?
이전, 아무 생각 없이 다음과 같은 제목의 책을 무심코 지나친 적이 있다:
‘When Bad Things Happen to Good People’
이 책은 죄 없는 아들을 잃은 저자(Rabbi Kushner)가 왜 착한 사람에게 나쁜 일이 생기는 가에 대한 질문에 신학적이고 철학적인 답을 제시한다고 한다.
나는 소위 말해 집에서 좀 ‘별난 딸’이다. 어릴 적부터 남들보다 면역력이 약한 탓에 몸이 자주 아팠다. 성인이 된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어릴 때 먹었던 약의 후유증으로 지금도 신경이 예민하고 거의 매일 불면증에 시달린다. 아빠가 출근을 준비하는 새벽 시간도, 나는 당연히 깨어 있는 날이 훨씬 많았다. 독립해서 집을 떠나기 전까지, 아빠는 매일 아침 출근 직전 내 방문을 두드리곤 했었다.
“딸, 오늘은 좀 잘 잤나? 이번 원두는 향이 좀 독특해. 한 번 마셔봐.”
방문이 열리는 순간, 내가 좋아하는 커피 향이 내 방을 감쌌다. 아빠는 그리 바삐 출근하는 와중에도 거의 매일 같이 직접 원두를 갈아 나를 위한 에스프레소를 내려주었다. 지극히 평범했지만 내가 간직한 행복한 아빠와의 일상 중 하나다.
아빠는 내가 잠자리가 바뀌면 더 잠을 설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가족 여행을 타지로 가게 되면, 아빠는 날 위해 늘 새벽에 함께 일어나 일출 산책을 나가주었다. 글을 쓰는 이 시점, 우리 가족이 다 함께 부산으로 휴가를 갔던 작년 여름이 그립다. 그때도 아빠는 어김없이 홀로 덩그러니 깨어 있는 날 위해 이른 새벽부터 바닷가 산책을 권했었다.
“큰 딸, 우리 묵는 호텔 바로 앞에 스벅 있더라. 엄마 좋아하겠다.”
“오~ 들어가는 길에 아아 하나 포장 해 가면 되겠네!”
이 외에도 우리 가족은 아빠 덕분에 따뜻한 추억이 참 많다.
아빠 자랑으로만 책을 백 권은 거뜬히 써낼 수 있을 만큼 나에게 아빠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그런 아빠가 아프단다.
온몸이 바스러질 정도로.
“큰 따님 이시죠? 상황이 좋지 않아서 빨리 와 주시라 요청드렸습니다. 가까운 가족 분들을 모두 병원으로 불러주셔야 할 것 같아요.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아빠가 중환자실로 들어 간지 불과 3일밖에 되지 않은 날이었다. 나는 병원으로부터 불길한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담당 의사 선생님과의 면담을 하게 되었고,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었다. 우리 아빠가 죽는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알고 계셨다시피 특히 간에 암세포가 많이 펴져있었어요. 우리 몸에 있는 장기는 모두 중요하지요? 그중 한 장기가 돌이키기 힘들 정도로 손상되면 다른 장기들이 하나, 둘 씩 손을 놓기 시작합니다. 아버님과 같은 경우... 지금 심장이 자기 역할을 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떨리는 목소리를 잠재우며 일부러 밝은 표정으로 물었다.
“선생님.... 간 이식... 같은 것도 되지 않나요? 저 정말 건강해요! 저 지금 당장도 검사받을 수 있는데요...!”
“지금은 방법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겨우 겨우 고여 있던 눈물이 드디어 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의사 선생님. 정말... 다정한 아빠시거든요. 진짜로요, 너무너무 좋은 아빠세요.”
아무 말을 잇지 못하시는 의사 선생님을 앞에 두고 나는 마지막으로 애원하기 시작했다.
“제 간... 아니, 나의 심장을 도려내어도 좋습니다. 선생님...! 저희 아빠 살려만 주세요. 아빠, 돌려주시는 그 어떤 상태로라도 받아들일게요 선생님...! 돈은 제가 벌면 되거든요,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여도 괜찮으니까 숨만 붙어 있게 해 주세요 선생님...! 제 막내 동생이 아직 고등학생이에요!”
의사 선생님은 안쓰럽게 나를 바라보셨지만 날 향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셨다. 나는 내 배경화면에 아빠와 불과 몇 달 전에 다녀온 한라산 사진을 들이밀며 횡설수설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뭔가 잘못된 걸 거예요! 저랑 아빠는 몇 달 전에 이렇게 뚝딱 한라산도 다녀왔거든요! 한라산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데요, 선생님! 이렇게 건강하셨는데요!”
의사 선생님은 어렵게, 그리고 무겁게 입을 여셨다.
“저는... 혈액 내과 교수로서 다양한 환자들을 마주합니다. 그리고 때론, 의사로서도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건강이 악화되는 환자를 보기도 합니다. 평생 건강을 지켜온 운동선수나 대학을 갓 졸업한 청년과 같이... 저로서도 참 안타까웠던 환자들이 있었어요. 아버님 일 또한, 진심으로 유감입니다.”
의사 선생님은 눈을 잠시 감았다 내게 말하셨다.
“마음의 준비를 이제는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왜 나쁜 일은 좋은 사람에게도 일어날까?
왜 우리 아빠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야만 했을까?
나는 글을 쓰는 지금도, 아직 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