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내게 기대기만 하면 돼
** 본 글은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과 관점을 바탕으로 작성된 것으로, 의학적 소견이나 전문적인 의료 정보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건강과 관련된 구체적인 증상이나 의학적 조언이 필요할 경우, 반드시 의료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긍정적인 편이다. 모든 것이 바닥을 치는 상황에서도 난 늘 ‘된다’에 마지막 에너지를 쏟는다.
기적은 희망을 잃은 자에겐 찾아오지 않는데,
나는 분명 기적을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암세포들이 여기저기 퍼질 대로 퍼져버린 아빠가 살아나는 것.
그게 나의 기적의 끝이었다.
“큰딸, 네 정성 때문에 한 입 먹는다.”
“그래? 고맙소, 고마워~ 그런 김에 동치미도 한 숟갈만 더 먹자!”
아빠가 식사를 거부하기 시작한 지는 이미 며칠 되었다. 밥때가 되면 나는 아빠 앞으로 배정된 식사를 들이밀며 제발 조금만 먹자고 사정사정을 해야 했다. 그래야 약도 먹을 수 있고, 아빠가 조금 더 오래 버텨줄 것 같았다. 암 환자는 식욕부진 때문에 체중이 급격히 줄어들고, 기력이 빠르게 약해진다는 사실은 진작에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렇지, 밥 한 그릇 뚝딱 비우는 것이 일도 아니었던 우리 아빠가 하루아침에 이토록 입맛이 없다니. 늘 너무 과하게 드셔서 탈이었던 우리 아빠는 이미 온데간데없었다. 나는 아직 아빠랑 먹고 싶은 게 많은데, 아빠는 입을 꾹 다문 채 자꾸만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아빠 그래도 오늘은 어제보단 조금 더 먹었다?”
나는 아빠가 혈액암 판정을 받자마자 시간별로 아빠의 증상과 변화를 파악할 수 있는 일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식사는 얼마나 했는지, 소변량은 늘었는지, 어떤 약을 먹었고 어떤 증상이 새롭게 나타나기 시작했는지까지 상세하게 기록하기 시작했다. 일지는 담당 의사 선생님이 회진을 돌며 방문하는 짧은 상담 시간에 큰 도움이 됐다. 아빠에 대한 질문이라면 뭐든 1초 만에 정확하게 답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아빠의 아픔을 적어 내려가면서도, 난 단 한순간도 아빠가 떠날 것이란 생각 따윈 하지 않았다. 내가 지치지 않고 아빨 간호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끝까지 아빠 곁에 떡하니 버티고 서서 희망을 놓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아빠가 느꼈으면 했다.
“아빠는 내게 기대기만 하면 돼, 다른 건 내가 다 해줄게. 큰딸 믿지?”
이토록 긍정적인 나였지만, 매일 병원을 찾아오는 어둠은 몹시 두려웠다. 해가 지고 밤이 되면, 낮과는 또 다른 세상이 펼쳐졌기 때문이었다. 아빠의 복통은 어둠 속에서 그 강도가 더 심해졌다. 아빠의 울부짖음은 캄캄한 암흑 속에서 더 크게 울렸다. 나는 자연스럽게 밤을 꼬박 새우다시피 하는 날이 늘어갔다. 하지만 아빠가 첫 항암치료를 받은 날과 같이, 내가 아빠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더 이상 아무런 효과조차 없는 진통제를 놔 달라 간호사 선생님을 부르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빠를 갓난아이처럼 안았다.
환갑인 아빠를 어르고 달래며 소중히 끌어안았다.
이 기나긴 밤, 아빠가 절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꼭 알려주고 싶어서였다. 내가 아주 어린 시절, 캄캄한 귀신의 집을 체험할 때 난 두렵지 않았었다. 아빠가 꼭 맞잡은 손을 또 한 번 꽉 움켜쥐어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되새겨 주었기 때문이다. 나 또한 겁에 질린 아빠에게 힘이 되고 싶었기에, 아빠에게 말하곤 했었다. 지금 아빠가 걷는 길이 칠흑 같은 어둠 속이라면, 이 딸이 바로 여기 있노라고.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함께 이 매서운 밤을 이겨내 보시자고.
그렇게 아빠를 토닥이다 보면, 어느새 어둠이 걷히고 희미한 빛과 함께 해가 뜨곤 했다. 주위가 밝아지고 아직 내 얼굴을 알아보는 아빠를 마주할 때면, 나는 그것을 기적이라 칭했다.
그렇게 매일 작은 기적을 바라는 것이
내게 아빠를 지킬 수 있는 힘을 주었기 때문에.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