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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Yeo Dec 16. 2024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빠의 부서진 모습과 직면했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 본 글은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과 관점을 바탕으로 작성된 것으로, 의학적 소견이나 전문적인 의료 정보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건강과 관련된 구체적인 증상이나 의학적 조언이 필요할 경우, 반드시 의료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아빠가 혈액암 말기라고요? 저희 집은 할아버지 때부터 암 내력도 없는데요?”

“변이라고 볼 수 있죠. 요즘 현대인에게 암은 꼭 유전으로만 생기는 건 아니니까요.”


황당하기 그지없었지만 담당 선생님 말을 믿고 따를 수밖에 없었다.

슬퍼할 시간? 이 기막힘을 소화할 시간도 채 주어지지 않았다. 진단을 받은 바로 그날, 아빠는 생의 첫 항암 치료를 받아야 했으므로.



아빠가 혈액암 진단을 받자마자, 나의 공부가 시작되었다




“아빠, 정신이 좀 들어? 눈 좀 떠봐.”


아빠는 입원하고부터는 이상할 정도로 밤낮 할 것 없이 잠만 자곤 했다. 게다가 빠르게 나빠지는 몸으로 온갖 검사를 하러 다니느라 진단명이 나온 그날엔 진이 다 빠져있었다.


“큰딸, 자꾸 눈에 이상한 것이 보여. 저게 뭐지?"

“아무것도 없어, 아빠. 내가 여기 있으니까 이상한 거 나오면 혼내줄게.”


지친 아빠는 온종일 악몽에 시달리는 듯했다. 최근, 이상한 망상에 빠져 헛소리를 하는 증상도 잦아졌다. 의사 선생님은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보이는 당연한 증상 중 하나라고 말했었다.


“아빠. 혈액암 이래. 근데 치료하면 된데. 잘할 수 있지?”


나는 일부러 아빠에게 담담히 말했다.

마치, ‘오늘 저녁 메뉴는 김치찌개야. 맛있겠지?’라고 하듯 아무렇지 않게 아빠에게 소식을 일렀다. 

아빠가 자신의 몸 상태를 인지하고 마음의 준비를 했으면 했기 때문이었다. 항암 치료는 매우 고통스러울 것이므로, 아빠 자신도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하다 생각되었다. 아빠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와중에도 엄마와 회사 걱정을 하는 듯했지만.


“엄마가 저녁에 아빠 보러 온대. 그때 잠깐 나랑 바꿔 보면 돼."


당시 병원은 보호자 한 명을 제외하고, 외부인 병동 출입을 제한하고 있었다. 때문에 저녁 시간에 잠깐, 엄마나 동생이 나 대신 아빠와 짧은 면회 시간을 가지곤 했다.




"막내한테는 그냥 아빠 입원이 길어진다고만 얘기하자. 아직 어린앤데…"


우리 가족은 총 다섯이다. 아빠, 엄마, 나 그리고 내 아래로 동생이 둘 있다.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해 들은 엄마는 당연 충격에 빠졌다. 하지만 가족 모두가 그 어느 때보다 강해져야 할 때였다. 그래야 아빠가 힘을 낼 테니까. 엄마의 의견에 따라, 아직 고등학생인 막둥이 동생에게 아빠의 진단명은 알리지 않기로 했다. 나도 동의하는 바였다. 충격을 받는 것은 둘째 치고, 막내 동생을 이곳으로 데려오고 싶지 않았다. 아빠는 이렇게 나약하게 침대에 누워 있는 모습을 막내에게만큼은 절대 보이고 싶지 않을 거란 것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본격적인 항암 치료가 시작되기 전에, 엄마를 서둘러 일부러 집으로 돌려보냈다. 보호자가 한 명 이상 함께 있을 수도 없었지만, 엄마 또한 아빠가 고통받는 모습을 지켜보기 힘들 것이었다. 그리고 난, 아빠의 항암 치료가 시작되자마자 엄마를 빨리 돌려보낸 것이 매우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치료제가 주렁주렁 아빠의 몸에 달린 수많은 관들을 통해 들어갔다. 그리고, 아빠는 고통과 싸우기 위해 몸부림쳤다. 그냥 뒤척이는 정도가 아니라, 침대가 무너질 듯 발버둥 쳤다.

그렇게 나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빠의 부서진 모습과 직면했다.

아빠는 입원하고 처음으로 내게 간절히 애원했다. 너무 아프다고, 이게 뭐든 그만 좀 하게 해달라고. 제발 이 고통을 이제 그만 좀 끝내 달라고. 그때만큼은 정말 아빠의 고통을 끝내주기 위해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항암치료 두 시간째, 아빠는 어떻게 해야 죽을 수 있는지 곁에 있는 간호사 선생님을 붙잡고 묻기 시작했다.

나름 단단한 돌로 둔갑시켰던 내 마음은

아빠가 울부짖을 때마다

얇은 종잇장처럼 갈기갈기 찢겨 나갔다.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딸이 듣는 앞에서 자신을 죽여 달라 말하는 아빠의 심정은 그때 어땠을까? 얼마나 고통스러웠다면 그리 가엾게 애원할 수밖에 없었을까?


“아빠를 너무 사랑해서 아직은 끝내줄 수 없어. 제발 조금만 참아줘, 아빠.”


나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아빠를 향해 조금만 더 참아달라는 잔인한 말을 내뱉었다. 정작 내가 아빠의 고통을 덜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차가운 병원 바닥에 앉아 밤새 아빠의 손을 잡아주는 것 밖에는. 터져 나오는 눈물을 억지로 닦아내며 아빠를 간간이 안아주는 것 밖에는.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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