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의 시작은 가벼운 몸살 증상이었다.
** 본 글은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과 관점을 바탕으로 작성된 것으로, 의학적 소견이나 전문적인 의료 정보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건강과 관련된 구체적인 증상이나 의학적 조언이 필요할 경우, 반드시 의료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자꾸 몸살 기운이 있네.”
모든 것의 시작은 가벼운 몸살 증상이었다.
아빠는 글을 쓰는 시점을 기준으로 작년 연말부터 자꾸만 몸살 기운이 있다며 툴툴거리곤 했다.
“큰딸, 왜 자꾸 여기저기 쑤시지?”
“아빠 올해 환갑이잖아. 나이 무시 못 하는 거야.”
독립을 한 나는 주말마다 부모님을 보러 가곤 했는데, 부쩍 아빠가 몸이 안 좋다는 이야길 자주 하기 시작했단 것을 눈치챘다. 그럴 때마다 나와 엄마는 아빠를 나무랐다.
“그니까 아빠, 이제 무리한 등산이나 백 패킹도 좀 자제해야 돼."
“당신이 아직도 무슨 20대 청춘인 줄 알아요? 주말마다 야외 활동을 나가니 몸살이 나지!”
잔소리 차원에서 한 말이나,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빠가 주말에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온전한 휴식을 취하는 주말은 1년에 손에 꼽을 정도였다. 가족끼리여행을 가는 것이 아니어도, 아빠의 주말은 늘 친구들이나 후배들과의 약속으로 차 있었다. 몸이 쉴 시간을 잘 주지 않는 아빠가 나이가 들자, 자연스럽게 몸에서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 난 생각 했었다. 아빠는 나와 엄마의 말에 어느 정도 수긍을 하면서도 고개를 갸우뚱하곤 했다.
그때 아빠 자신은 알았을까? 뭔가 예감이 좋지 않다는것을.
해가 바뀌고, 아빠에게 몸살이 찾아오는 주기는 점점 더 짧아졌다. 나를 포함한 가족들은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었다. 상세 건강검진 결과에도 별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왔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었다. 우리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의 추가 검사까지도 아빠가 모두 받게 했다. 아빠는 머리도 찍어보고, 피검사도 종류별로 받았다. 일반 내과는 물론 정형외과와 신경외과도 모두 거쳤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점점 더 자주, 더 많이 아프기 시작했다. 이렇다 할 만한 증상은 없었다. 굳이 하나를 꼽자면 남들보다 염증 수치가 좀 더 높다는 것 정도?
그 외엔 그냥 감기 기운, 몸살 기운.
그 정도였다.
그게 그리 무서운 병을 예고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엄마의 전화를 받은 건, 내가 아주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응, 엄마 지금 아빠랑 응급실 왔어. 황달 증상이 갑자기 심해지셔서.”
“응급실을 갈 정도란 말이야?”
나는 하루 일정이 모두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일에 집중이 될 리 없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감히 ‘암’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리지는 못했다. 우리 집엔 암 내력도 없을뿐더러 세상천지 몸살이 하루아침에 암이 되는 법은 없지 않은가?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아빠가 괜찮은 줄 알았다. 그냥, 지나가는 거겠지. 어쩌다 재수 없는 바이러스에 걸려 독감 비슷한 게 좀 오래가는 것이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믿고 싶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우리 아빠가 시시한 감기 몸살 따위에 질 리 없으니까.
아빠는 응급실에 간 그날 대학 병원에 입원을 했고, 프리랜서인 나는 자처해서 아빠 곁을 지키기로 했다. 일은 노트북만 있다면 병원에서도 할 수 있고, 무엇보다 아빠를 병원에 혼자 두거나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기고 싶지 않아서였다.
병원에서의 시간은 무섭도록 빠르게 흘러갔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아빠의 상태는 점점 더 나빠졌다.
“비 보험 검사도 상관없으니 할 수 있는 건 다 해 주세요. 제발 원인만 좀 밝혀주세요!”
정말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정밀 검사란 검사는 다 했다. 다양한 조직 검사부터 난생처음 들어보는 특이한 이름의 검사까지도 아빠는 해야 했다. 피를 하루에 평균 6~7번을 뽑아갔다. 더 많이 뽑는 날도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지는 아빠를 지켜보는 것보다 더 두려웠던 건 바로 원인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아빠 앞으로 10명이 넘는 교수님들이 붙었지만, 시원한 병명을 알아내기까지는 정확히 입원 일로부터 8일이 걸렸다.
“혈액 암입니다. 이미 간으로 전이된 상태라 4기고요.”
혈액내과 교수님의 말에 나는 그만 그 자리에서 얼어 버렸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따님이라고 하셨지요? 아버님 임상 결과가 좋지 않습니다. 최선을 다해 보겠지만, 앞으로 1~2주가 고비일 겁니다. 오늘 밤부터 바로 항암 치료 들어가겠습니다.”
놀랍게도 아빠가 진단명을 받았던 그날 들었던 담당 교수님의 예상은 적중했다.
아빠는 진단을 받은 지 2주가 채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나셨으니까.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