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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Yeo Jan 03. 2025

어쩐지 올해는 운수가 오지게 좋더라니

내게 2024년은 시작부터 좀 달랐다.

자꾸만 좋은 일이 생겼고, 꼭 특별한 행운을 거머쥔 것과 같은 우연이 연초부터 자꾸 생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잔인한 운명이 깔아준 복선이지 않았을까 싶다.




“아빠, 해가 벌써 뜬 건가? 주위가 환한데... 왜 안 보이지?”


우리 가족은 매년, 거의 빼지 않고 일출을 보기 위한 여행을 떠나곤 했다. 글을 쓰는 시점으로 작년, 그러니까 2024년 1월 1일 새벽도 우리 가족은 집으로부터 멀고 먼 여수의 한 바닷가 근처에 있었다. 아빠가 꼭 바다 위에 뜬 새해 첫해를 보고 싶어 하셨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여수 여행을 떠나면서도 걱정이 많았었다. 전날부터 뉴스를 통해 올해는 날씨가 좋지 못해 떠오르는 해를 보지 못할 확률이 꽤 높다는 보도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나와 아빠는 꿋꿋하게 서로 소유한 가장 좋은 카메라를 챙기며 다짐했었다. 포기하지 말자고. 그래도 끝까지 해를 기다려보자고.

그때였다.

이미 환한 주변, 절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만 같은 해가 동그랗게 떠올랐다. 간절히 기다려서였을까? 내가 지금까지 본 일출 중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었던 것 같다. 가족들은 모두 환호하며 기뻐했다. 그중, 가장 기뻐했던 사람은 당연 나와 아빠였다.


“올해는 진짜 일출 보기 힘들다고 했는데! 우리가 운이 좋은가 봐, 아빠!”
“그러게. 해가 하도 잘 보여서 사진에도 잘 나오겠어.”



2024년 새해 첫날 일출을 기다리며 내가 찍은 아빠


나와 아빠는 신이 나서 카메라 셔터를 마구 눌러댔다. 그게 내가 아빠와 보는 마지막 새해 일출인 것을 알았더라면, 해가 아니라 기뻐하는 아빠를 좀 더 나의 카메라에 담았을 텐데.




행운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백록담을 나와 아빠는 그 해, 단 한 방에 볼 수 있었으니까.


아빠와 함께 마주한 백록담
한라산 정상, 내가 찍은 아빠


“진짜 대박이다, 아빠! 내 친구 중에 한라산을 3번 온 친구가 있는데, 겐 3번 다 못 봤다는데!”

“아빠도 신기하네. 하늘에서 준 환갑 선물인가 보다.”


2024년 3월, 아빠의 환갑을 축하하기 위해 나는 아빠와 한라산 정상에 올랐었다. 서로 처음이었기에, 백록담을 볼 수 있으리란 기대보다는 정상을 찍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시작한 등산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날씨도, 서로의 컨디션도 최상이었다. 나와 아빠는 서로를 격려하며, 마침내 한라산 정상에 올랐었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백록담 전경에 잠시 넋을 잃었었다. 참으로 감사한 하루였다. 아빠와 탈 없이 한라산 왕복에 성공한 것부터, 자연이 주는 선물을 함께 만끽할 수 있었던 것까지 모두 감사했다. 그게 아빠와 나의 마지막 등산이 되었지만.




그 외에도 우리 가족에겐 작년 연초, 크고 작은 좋은 일이 많이 생겼었다. 좋은 일이 연달아 생기면, 자꾸만 더한 행복을 기대하기 마련이지 않은가? 자꾸만 겹치는 행운에 나는 순진하게도 내게 불행한 일은 닥치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올해는 운명이 우리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는가?

보기 어렵다는 새해 일출도 보았고, 백록담도 보지 않았는가?
나는 새해 첫날 떠오르는 해에도 가족의 행복을 빌었고 한라산의 백록담에도 가족의 기쁨을 빌었다.

그래서 나는 우리 다섯 식구가 앞으로도 지금처럼 계속 행복할 줄 알았다.

그런데 얼마 후, 거짓말처럼 아빠가 돌아가셨다.

그것도 혈액암이라는 아주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온갖 행운을 내게 거며 주기 바쁠 땐 언제고, 세상은 나로부터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인 나의 아빠를 앗아갔다.


어쩐지 올해는 운수가 오지게 좋더라니.
어쩐지 올해는 시작부터 너무 술술 풀리더라니.
이러자고 일출도, 백록담도 내게 보여주었나?
그깟 일출이 뭐 대수라고.
고작 백록담이 뭐 그리 잘났다고.
내가 사랑하는 것은 한라산이 아니었다.

내가 기뻤던 이유는 백록담 따위가 아니었다.

난 일출이 아니라 평생 해를 보지 못해도 상관이 없는데.

아빠만 돌아와 준다면 평생을 어둠 속에 살아도 괜찮을 텐데.
아빠만 살아나 준다면, 나의 운은 기꺼이 떼어 내어 줄 텐데.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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