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시작을 알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지.
혹독한 추위에 유독 외출이 하기 싫었던 밤,
기어이 날 끌고 나가준 친구가 있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그게 새로운 시작일 줄 알았더라면,
지난 인연이 조금 덜 아팠을지.
우울한 발걸음을 다시 집으로 돌리기 딱 1초 전,
우연한 실수로 익숙한 얼굴과 재회하게 되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짐작이라도 할 수 있었더라면,
시간이 더 빨리 흘러가 주었을지.
혼자 있는 시간이 두려울까 방황하던 중,
예상치 못했던 만남이 자꾸만 반복되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그때 미소 지을 수 없었더라면,
당신을 과연 또 만날 수 있었을지.
어느새 나의 향기를 알아버린 당신이,
헤어지기 전 내게 키스해 주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내 마음을 내가 더 잘 알았더라면,
앞으로가 덜 두려웠을지.
복잡한 미로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던 차,
초여름의 열기가 끝나기 전에 당신이 청해주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그대는 나의 모든 기준의 유일한 예외라는 것을,
알기는 하는지.
사랑을 결코 정의할 수 없었던 내게,
화려한 구절 없이 날 사랑한다고 해주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계산 후 말한 사랑이었다면,
나의 심장에 닿을 수 없었을 터.
빠르게 변화하는 올해가 가기 전,
당신이 찾아와주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나에게는 늘 버거웠던 사랑의 무게가,
오로지 당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