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본적으로 많이 ‘쓰는’ 사람이다. 하는 일이 기본적으로 글을 쓰는 일이어서도 그렇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쓰는 일을 애정하는 편이다. 어렸을 때부터 뭐든 기록하고, 글로 담아내는 습관이 만들어져서 그런 것 같다.
아직 만 열셋이 채 되지 않았을 때 다른 나라로 유학길에 올랐던 나는 영어를 유창하게 하지 못했는지라, 한동안 마음고생을 해야 했다. 먼 타지에 와서 친구들과 가족이 보고 싶을 때마다, 수업의 반도 알아듣지 못해서 쩔쩔맸을 때마다, 내가 잘못한 일이 아닌데도 표현이 서툴러 난처한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일기를 썼다. 당시 일기는 내게 ‘성전’ 같은 역할을 했다. 자존심 상했던 일이나 아주 부끄럽고 알량하게까지 느껴졌던 내 다양한 감정들을 모두 솔직히 적어냈다. 그게 위로가 되었다. 일기에 뭐든 적어내고 나면, 내가 느꼈던 속상함은 모두 내 맘 속에서 일기장 위 글자로 덜어내 진 느낌이었다. 그렇게 일기에 나의 하루 일과, 감정, 그리고 간략한 계획을 적어내고 나면, 복잡한 그 무언가 들은 모두 내 머릿속을 떠나 주곤 했다. 그리고 이 의식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청춘에 쓴 일기가 앞으로 네가 읽을 만권의 책 보다 나을 것이야.”
대학 시절, 날 아주 가까이하셨던 영국인 교수님께서 늘 무언가를 적고 있는 날 보고 하셨던 말이다. 교수님의 말로는 한 살이라도 어릴 때, 특히 아직 많은 세상의 데이터가 입력되기 전이라 볼 수 있는 2~30대 사이에만 느낄 수 있는 휘몰아치는 감정을 기록하는 일은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우리는 사회에 나가 경험이 쌓일수록 점점 감정에 무뎌질 수밖에 없는 동물인데, 때 묻지 않은 시기에만 느낄 수 있는 그 날것의 감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귀해진다는 것이었다. 당시 이미 70대 후반이셨던 교수님은, 시간이 지나면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것으로 느낄 수 있는 감정은 한정적이라 말하셨다. 간접적으로 느끼는 감정은 진짜 가슴으로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던 축복 같은 시기에 간직했던 감정과는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교수님은 그러니까 계속해서 마음껏 기록하라 하셨다. 덕분에, 나의 기록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인공지능 기술이 점점 활발해지면서, 구구절절 적은 긴 내용의 글 보단 간략히 알맹이만 전달하는 형태의 글이 더 ‘낫다’라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다. 하지만 때론, 그 미사여구가 필요할 때가 있다고 생각된다. 사랑하는 아빠를 떠나보냈을 때도, 친구에게 진심 어린 사과 편지를 할 때도, 그냥 매일이 나 자신과의 싸움일 때도 나는 짧던 길던 내 마음이 닿는데 까지 글을 써냈다.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감정이 많다는 것은 어쩌면 축복받은 일인지 모르겠다. 누구에겐 별 것 아닌 이 ‘감정 기록’에 대한 글을, 누구보다 나의 미래를 응원하셨던 멋쟁이 교수님께 바친다. 늘 막막했고 모르는 것만 많았던 당시에 얻었던 따뜻한 조언 덕에, 나는 오늘도 글로 위로받고 남을 위로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꿈을 꾼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