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는 뭐, 당연히 박사겠네!”
“하고 싶은 공부 다 했으니, 돈 많이 벌어 야겠네.”
“얘! 너는 무조건 잘 돼서 부모님께 효도해야겠다! 유학을 그리 오래 보내주셨으니!”
내가 20대를 보내며, 특히 한국에 들어와 본격적인 취업을 하기까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하나하나 마음에 담아둔 것은 아니지만, 아무리 가벼운 말도 쌓이면 그 무게가 생기기 마련이다.
꼬지 않고 생각해 보면,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나는 원하는 공부를 해외에서 아주 어린 나이부터 마음껏 한 케이스다. 당시, 국내에 사교육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며 조기 유학이 조금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기 때문인 것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사회 분위기와 관계없이 나는 모험심이 강하고 씩씩한 아이였고, 부모님은 그런 나를 해외로 보내주셨다.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시작한 해외 유학이 대학 공부까지 이어졌다. 당시, 어학연수부터 조기 유학 프로그램이 활성화되며 내가 밟은 코스가 그다지 희귀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처럼 아주 어릴 때부터 홀로 타지에 나가 10년이 넘도록 유학을 마치는 케이스는 흔하진 않았던 것 같다. 당당히 타지 대학교의 졸업장을 거머쥘 때만 해도, 나는 이것이 나 스스로에게 그토록 성공의 압박이 될 줄은 몰랐다.
내 주위에도 많은 분들이 오해를 하곤 했지만, 유학을 간다고 반드시 그 나라의 언어를 터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를 예로 들어 말하자면, 열두 살의 나는 영어를 한국어처럼 익히고 말하고 학교 수업을 따라갈 수 있을 때까지 ‘피나는 노력’을 했다. 과장된 표현인 것 같지만, 패기 넘치는 10대였던 나는 정말 독하게 영어를 배웠다. 가장 먼저, 부모님과 국내에 있는 친구들과의 전화 통화를 중단했다. 부모님과는 꼭 필요한 연락만 이메일로 짧게 주고받았다. 내 플레이리스트에 있던 소중한 국내 가요는 싹 지웠었다. 영문으로 써진 신문, 소설, 수필 등을 가리지 않고 하루에 두 시간씩 읽었으며 일기, 문자, 독후감 등등 쓸 수 있는 것은 말이 되든 말든 영어로 썼다. 아마, 지금 그렇게까지 불어를 배우라고 한다면,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을 것 같다. 그만큼 능숙하게 새로운 언어를 구사한다는 것은 힘겹고 최선의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으니까.
이 이야기를 굳이 쓴 이유는 국내에서 내가 영어를 잘해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로 통하기 때문이다. 영어뿐만이 아니라 취업에 성공했을 때도, 원하는 연봉에 맞춰 큰 회사로 이직에 성공했을 때도 나의 성취는 조금 당연시되는 경향이 있었다. 나는 내 방식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기준이 다른 사회에서 내가 쌓아온 노력이 건조하게 평가절하 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너 엄청나게 대단해!’라는 호들갑과 함께 매번 축하 파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조용히 애쓴 나만의 시간들이, 외롭게 정성을 들인 경험들을 가볍게 만드는 말들엔 때때로 멍이 든다.
나의 지난 애씀은 내가 제일 잘 안다. 아직 나는 타인의 평가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지 못했지만, 흔들리지 않으려고 한다. 그건 내가 이룬 노력에 대한 예의가 아니니까.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