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역 출발 강릉행 KTX 막차. 승강장 입구에 도착했을 땐 1분 전이었다. 어느 플랫폼으로 내려가야 하는지 몰라 역무원에게 물었다.
”14번으로 가셔야 하는데... 앗 1분 전이어요. 못 타시겠네요.”
“이게 막차잖아요. 타야 해요.”
역무원은 곧장 무전기를 들더니 말했다.
“노인들 두 분이 커다란 캐리어 4개를 끌고 오시는데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우리는 역무원이 알려주는 방향으로 뛰었다. 몸은 날 듯 점프해서 기차에 올랐고 바로 기차가 출발했다.
고맙다는 인사할 겨를도 없었고, 성함을 확인할 경황도 없었다. 캐리어를 화물칸에 올리고 앉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졸면서 강릉에 도착. 시간은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아파트에 쌓인 먼지를 대충 닦고 바닥을 청소하고 짐을 풀기 시작했다. 미국 시간으로는 한낮이니, 길 떠난 지 하루가 넘었어도 정신은 더 말똥 말똥, 머리만 약간 멍했다.
미국 집에서 떠난 지 딱 24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미국 중서부 내륙인 콜로라도에서 한국을 오기 위해서는 서쪽 어느 대도시에서 비행기를 갈아타야만 한다. 이번엔 시애틀을 경유했다.
덴버에서 시애틀까지 국내선은 2시간 반, 국제선을 타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 5시간 반, 시애틀에서 인천까지의 비행시간은 12시간, 인천 도착 후 서울역까지 다시 전철로 한 시간, 서울역에서 강릉까지 2시간 10분. 최소한 24시간 정도가 걸려야 오는 거리이다.
가깝지 않은 길이지만 이렇게 왔다 갔다 한지 3년째.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시고 난 후부터다. 지난 2년은 올 때마다 코로나 검사를 하고, 격리를 했다. 누굴 만날 때면 웃으면서 ‘격리의 달인이고 코로나 테스트에 이골이 났다’고 말한다. 이번엔 격리도 안 하고 도착 후 24시간 안에 검사만 한번 하면 되니, 이 정도면 괜찮다. 물론 Q-code라고 하는 질병 관리청 앱을 까는 등 준비를 하긴 했다.
진한 커피 한잔을 내려 마시고 계속 짐을 풀었다. 잠시 눈을 부쳐야 할 것 같아서 누웠지만 몸은 피곤한데 머리는 점점 맑아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5시. 꼬박 30 시간이 지나간다. 창 밖으로 주홍 색 하늘을 이고 수평선에서 동이 트기 시작했다.
남편과 나는 해변으로 나섰다. 두고 간 바다와 솔밭은 반갑게 우리들을 맞아 주었다. 호수처럼 잔잔하고 해무海霧 자욱한 바다에서 해가 올라왔다. 미동도 없는 솔밭은 간간히 부엉이 우는 소리와 함께 은은한 솔향만 건네주고 있다.
숲에는 새벽 산책하는 사람들만 가끔 보인다. 송정에서 시작한 걸음은 경포까지 이어졌다. 두고 갔던 나의 자리는, 나의 마음은 그곳에 오롯이 남아 날 반긴다.
“또 왔어.” 마음속으로 인사를 건넨다. 여기에 머무는 동안 일과처럼 올 곳이지만 새삼 반갑다. 이 아름다운 풍경을 눈 속에 마음속에 넣고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첫날은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았다.
도착 후 24시간 내에 해야 하는 검사를 보건소에서 하고, 은행에서 돈을 찾고, 전화기 유심칩을 충전하고, 점심 후 엄마를 만나러 갔다. 6개월 만에 얼마나 변했을까. 알아보기는 하실까. 마음을 졸이면서…
엄마는 나와 남편을 알아보지 못하셨다. 많이 야위셨지만 눈동자 초점은 맑았다. 시선을 맞추고 애써 무언가를 따라 하시려는 모습이었다. 손은 따듯했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나의 일과인 면회를 매일 오면, 엄마는 딸과 사위를 알아보실 거고, 또 혹시 못 알아보신다고 해도, 이곳에 계신 것만으로 충분하다.
“엄마, 내가 누구야? 이 옆에는 누구고?”
한 100번쯤 물어본 것 같다. 남편은 그만하라고 말린다. 마르고 야윈 손을 다시 잡았다. 작지만 따뜻한 손. 매일 잡아드리러 와야겠다.
이름 모를 들꽃들이 환하게 웃고 있는 요양원 언덕을 내려오는 길, 엄마를 만나서 그런지 발걸음이 날아갈 듯 가볍다. 이럴 땐 휘파람을 좀 불 수 있었으면… 웃는다. 그를 쳐다보며 함께 웃는다. 괜찮네, 참 괜찮아…를 되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