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중반을 넘고 있는 이 나이에 야 고아가 되었다는 것은 어쩌면 감사할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허전할 수가 없다. 엄마와 함께 살았던 집도 아닌데, 텅 빈자리가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그래도 나를 기다려 주는 곳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주부가 집을 비운 7개월. 부엌의 서랍 하나도 가지런한 것이 없었다. 남편이 혼자 살았던 티를 팍팍 내고 있는 집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정도로 엉망진창이었다. 강릉을 출발해 서른 시간이 지나고 있었지만 정신은 말똥 말똥. 몸이 너무 피곤해도 잠이 안 온다는 말을 실감하며 짐도 풀기 전에 부엌 청소부터 시작했다. 궁시렁 거리는 나의 잔소리를 아랑곳하지 않고 좀 쉬면서 해,라는 소리를 들으며 서랍부터 정리를 시작했다. Before와 After를 찍어, 두고두고 써먹으려고 했지만, 뭐 그럴 필요가 있냐는 말 한마디에 마음을 접었다. ‘그래, 군소리 안 하고 7개월씩이나 혼자 지냈으니…’ 하면서…
흐트러진 수저와 그릇들, 기름때가 앉은 냄비들을 보면서 씩씩거리며 청소를 해 나갔다. 부엌 서랍을 정리 정돈하고 나니, 부엌 전체의 기름때가 손을 쓸 수 없게 찐득거렸다. 강한 솔과 비누로 가스레인지 위부터 닦았다. 솔이 3개쯤 더 이상 쓸 수 없을 정도로 닦고 나자, 겨우 봐줄 만했다. 시차 때문에 잠도 안 왔고, 일이 눈에 보이는데, 두고 쉴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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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질대로 일을 한다고, 천천히 하라는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청소와 동시에 빨래를 돌렸다. 겨울에 집을 떠났으니, 겨울 이부자리가 그냥 덥혀 있는 침대는 등을 댈 수도 없이 더웠다. 제발 바닥이라도 좀 닦으라는 나의 성화에 남편은 마루 걸레질을 시작했다. 더운물에 물비누를 풀어서 닦으라고 시켰다.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닦는다. 진작 좀 그렇게 해 두지, 그랬으면 잠은 좀 잘 수 있을 것 아니야? 하고 한마디 더 했다. 나는 이어서 부엌 장들의 겉면을 닦고, 가스레인지 위의 환풍기까지 닦았다. 정신없이 청소하고 나자 아침이 밝아왔다. 몸은 천근만근. 냉장고를 여니, 먹을 것은 하나도 없고 오래된 김치 냄새만 가득했다. ‘아, 다음은 냉장고 구나’ 싶었다. 대형 쓰레기봉투를 열고, 음식물들을 하나씩 버렸다. 먹고 싶은 반찬을 사 왔던 것은 좋지만, 만든 날짜를 확인할 수가 없으니 모두 쓰레기 봉지 행이다. 그리고는 냉장고 유리 선반의 얼룩들까지 뜨거운 비눗물로 닦고 나자, 부엌은 그런대로 봐 줄만 했다. 그러는 동안 빨래는 5-6통쯤 끝났고 드라이기도 쉴 새 없이 돌아갔다. 너무 장시간 계속해서 사용해서, 고장이라도 나면 어쩔까 싶었지만 한국제품은 그 성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커다란 이불들은 베란다에 내다 걸었고, 집 안 일은 계속 이어졌다.
아침이 되어 남편은 가게에 간다며 나갔고 난 한숨도 눈을 붙이지 못한 채 48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머리는 윙윙거리고 눈은 아프고 손은 마디마디가 부으며 통증이 있었다. 아직 일은 반도 안 했는데 몸이 안 따라 주는 것 같아. 있는 대로 짜증이 났다. 커피를 마시고 쌍화탕을 마시고 요구르트로 허기를 채우며 집안 구석구석을 쓸고 닦았다. 오후쯤 되었을까 남편은 집으로 돌아오며, 통닭 한 마리를 사 왔다. 좀 먹으면서 하라는 말과 함께. 한국처럼 새콤달콤한 무가 있으면 닭다리 한쪽이라도 뜯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미국엔 그런 무가 없으니, 퍽퍽한 닭고기가 넘어가지 않았다. 물만 계속 마시고…
통닭이 남자, 남편은 껍질을 벗기고 살만 발려서 내게 건네주며 닭죽이 먹고 싶단다. ‘아이고, 이 상황에 닭죽?’이라고 생각했지만, 군 소리 않고 쌀을 불리고, 잘게 뜯어진 살을 삶아 닭 육수를 냈다. 물론 그동안에도 난 쉼 없이 위층 아래층을 오르내리며 청소를 이어갔다.
남편은 닭죽을 기다리다 잠이 들었다. 난 새벽녘에나 되어 닭죽을 완성했다. 그리고 정말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은 피곤함이 한꺼번에 몰려오며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손마디에서 전신이 쑤시며 동시에 열도 올랐다. 겁이 덜컥 났다. 혹시 ‘코로나?’. 급하게 홈키트를 찾아 검사해 봤더니 다행히 음성이었고, 그냥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다. 얼마나 오래 잤던 건지, 깨어보니 밖은 다시 어두웠고, 너무 오래 누워 있어서 허리가 아팠다. 얼굴은 푸석하다 못해 허옇게 뜬 것 같고 손은 주먹이 쥐어지지 않게 부었다. 침을 삼키자 목도 따끔거렸고, 귀도 아팠다. 완전히 감기 몸살이구나, 싶었다. 감기약을 먹고 또 자리에 누웠지만 몸의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고 열은 더 올랐다. 응급실을 가야 하나 싶었지만 일어날 기운도 없었다. 집에 비상약으로 두고 있던 항생제를 겨우 찾아서 먹었다. 그리고 또 누워서 자고, 일어나서는 코로나 검사를 다시 해보고. 꼬박 닷새를 그렇게 앓았다.
보통 때에는 감기 몸살을 앓으면 하루 이틀 약을 먹고 쉬면 나아졌다. 그런데 이번엔 아니었다. 하루 이틀 쉰다고 나아지지 않았다. 친구들이 ‘기운이 하나도 없어’ 했던 말의 뜻을 새삼 알게 되었다. 이런 상황이 진짜로 나에게도 오는구나 싶었다. 몸의 진이 다 빠져나간 듯한 느낌. 침대 아래로 끝없이 가라앉는 듯한 몸. 눈도 뜰 수 없는 무기력. 물 한 모금도 못 넘기게 힘든 목. 항생제와 감기 몸살 약을 먹기 위해 뭐 라도 먹어야 하겠지만,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할지 전혀 생각이 안나는 정신줄을 놓은 상태.
즉석 밥을 끓여 달라고 해서 그걸 한 두어 스푼 먹고, 물을 마시고, 약을 먹고 또 자고… 날짜가 가는 것도 모르고. 그렇게 누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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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제 겨우 몸 상태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나도 늙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시간이었다. 누구도 건강에 장담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새삼 알게 해 주었던 지독한 감기 몸살. 이제 집안은 정리가 꽤 되었고, 마당 일은 ‘두 눈 꾹 감고’ 여름이 끝나는 이후로 미루어 두기로 했다. 좀 쉬엄쉬엄 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혹독하게 배운 요즈음. 다시 기운을 차리며 비타민과 고기를 챙겨 먹기도 하고 운동을 다시 시작하며 마음을 다스린다.
“이젠 좀 천천히, 성질대로 말고 몸 생각도 좀 하면서… 사는 일이 다 그렇지만, 엄마의 빈자리라는 큰일을 겪고 났으니 스스로 좀 편안해질 수 있는… 주부가 해야 할 일이 기다리고 있는 곳… 그리고 오늘이 있음을 감사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