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실에서 평간호사로 일하던 시절, 참 많이도 온콜On-Call을 했다. 온콜은 호출 대기로 응급 상황으로 의료진이 부족할 때 집에서 대기하는 인력을 호출해 바로 현장에 투입하는 제도다. 온콜을 기다리는 동안에는 시간당 수당의 절반을, 현장에 투입되면 시간당 1.5배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젊기도 했지만, 생활비가 간절한 내게 온콜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다. 비번일 때 특별한 일이 없으면 온콜을 자청하곤 했다.
온콜은 병원에서 전화가 오면 그날 근무 일정이 결정된다. 대개는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인 새벽 5시경에 병원에서 전화가 온다. 그 시간이 돼야 당일 수술 일정이 정확하게 나오고, 중환자실에 인력이 더 필요한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은, 좋은 아침! 오늘 일정표를 보니 수술 후 중환자실로 올 환자가 두어 분이야. 심장 수술 환자도 있고, 뇌 수술 환자도 있네. 낮 근무시간에 온콜 어때?”
“좋아, 갈게!”
나의 대답은 대부분 ‘오케이’였다. 환자가 수술을 끝내고 중환자실에 오는 시간에 맞춰 출근하면 되기에, 체력 비축을 위해 다시 잠을 청하지만 새벽에 깨버린 잠은 좀처럼 다시 오지 않는다. 가끔은 전화벨 소리에 선잠을 깬 남편과 아이도 같이 일어난다. 식구들이 일어나면 하는 수 없이 나도 커피를 내리고 도시락을 싸면서 아침을 시작한다.
아이와 남편이 나가면 마당으로 커피를 들고 나가 혼자만의 시간을 잠시 즐긴다. 그러곤 출근 전까지 집안일을 끝내려고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먼지를 털고 청소기를 돌린다. 그럴 때쯤 다시 병원에 전화가 온다.
“안녕, 지은. 빨리 나와줄 수 있을까? 환자는 지금 회복실에 있어. 심장 수술 환자이고, 3호실이야. 조금 이따 봅시다.”
출근 준비를 하며 남편에게 전화를 건다.
“여보, 나 지금 출근해. 저녁거리는 냉장고에 있고, 밥은 취사 예약해뒀어.”
시동을 걸어 차고를 나가며 마음을 다잡는다. 심장 수술 환자를 이틀에 한 번씩은 맡지만, 어떤 경우에도 긴장을 늦춘 적이 없다. 운전하면서 출근하면 해야 할 일들을 스스로 상기해 본다. 머릿속에서 약물들과 필요한 의료 기기들도 점검한다. 일이 익숙해졌을 만도 하지만 긴장을 늦추지 않는 것은 혹시라도 생길지 모를 실수를 미리 막기 위함이다. 의료인의 실수는 한순간 목숨과 맞바꾸게 될 수가 있으므로.
특히 심장 수술 같은 경우에는 여러 약물을 동시에 주입하는데, 이때 약물들의 상호작용을 확인한 뒤 연결해야 한다. 수액에 순서를 바꾸어 잘못 연결하면 수액 튜브에 침전물이 생겨 약이 안 들어가거나, 혹은 체내로 빠르게 주입되면 혈전을 일으키기도 한다.
또한 투약의 용량도 아주 미세한 단위로 나뉘는 데다가, 체중에 비례해서 약물을 투입해야 하므로 매시간 환자의 체중을 정확히 체크해야 한다. 수술 직후 수액 공급량이 늘어나면 일시적으로 체중이 증가하기도 하는데, 이는 단순히 체내의 수분량이 늘어난 허수이니 주의해야 한다. 따라서 수술 전 체중을 꼭 기록해둔다든지 하는 기초적이고 단순한 것을 더 꼼꼼하게 챙겨야 한다.
심장 상태를 알 수 있는 심전도 모니터를 연결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전극을 연결할 때 좌우의 위치가 바뀌면 파형이 달라질 수도 있어 에러가 생긴다. 컴퓨터가 이 에러를 그대로 읽으면 의료인이 환자의 상태를 오판 할 수도 있다.
굵직한 부분부터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무엇도 절대 간과하면 안 되는 곳이 중환자실이고, 특히 심장 수술 같은 대수술 직후의 간호는 더욱 주의를 요한다. 그래서 작은 실수라도 하지 않으려고 출근길에 머릿속으로 할 일을 상기하는 것이다.
병원 입구에서 타임 카드를 찍고 중환자실 중문을 열고 들어가는 그 순간부터는 팽팽한 긴장의 끈을 한시라도 놓칠 수가 없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주어진 시간 안에서 최선을 다해 환자를 보살핀다. 모니터를 읽는 것부터, 약물 하나까지. 그 용량과 숫자가 표시하는 상태를 정확히 인지해 간호하는 것이 중환자실 간호사의 일이다. 가끔 환자들의 마취가 덜 깬 상태가 좀 길게 지속될 때도 있는데, 마취가 덜 깼다 하더라도 환자에게 왜 그 약물을 투약하는지, 왜 이 기구를 사용하는지, 왜 이런 치료를 해야 하는지 등 처치와 관련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는 것 또한 중환자실 간호사의 의무이다.
환자 보호자가 옆에 있다면 보호자에게도 같은 설명을 해야 한다. 가끔 환자의 상태가 아주 위중하면 나를 도와주는 간호사가 지정되기도 하는데, 그럴 땐 그 간호사에게도 정확하게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이 약이 얼마만큼 언제 필요하고, 이 치료가 왜 필요하며, 나를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 말이다.
환자의 주 간호사인 나는 침상 곁을 떠나서는 안 된다. 내가 물을 마시거나 화장실을 가야 하는 생리적인 현상이 있을 때는 다른 간호사 혹은 수간호사를 반드시 환자 옆에 있게 한 후, 잠시 자리를 뜰 수 있다. 이렇게 긴장된 서너 시간의 간호를 하면 대부분 의식이 돌아오며 수술 후 상태도 안정적으로 돌아온다. 그때쯤 간호 기록을 다시 살피고 빠진 부분들은 없는지 확인한다.
커피를 한잔 더 마시며 생각한다. 작은 일이지만 온콜로 내가 중환자실에서 쓰였던 것처럼, 나의 그분도 나의 온콜이 되어 어디에선가 나를 기다리고 계실까? 누군가 내게 종교가 무엇이냐고 물어오면 1초도 생각하지 않고 가톨릭이라고 답한다. 영세를 받은 지 반평생이 지났고, 주일 미사를 거른 적도 없고, 기도회도 잘 나가고, 성당의 대소사에 관여하는 사목위원이기도 하다.
매사에 열심이니 종교에도 열심인 걸까. 빈 벤치에 앉아 먼산을 바라보는 것 같은 믿음의 갈증. 어떻게 하면 이 조갈을 풀 수 있을까, 화두가 되어 스물스물 머릿속을 기어다닌다. 나의 그분은 오늘도 내 갈증을 알고 내가 어렵고 힘들 때 손잡아주며, ‘여기 내가 있다’ 하고 이야기해 줄까? 이른 새벽 전화벨을 울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