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길을 걷다가 우연히 만난 가을꽃들에서, 가벼운 산행을 하다가 만나는 이름 모를 들꽃도 감사한 요즈음이다. 수묵화 같은 산세들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이곳. 아늑하고 포근하게 느껴진다. 예전 언젠가는 저 산 넘어 그곳으로 왜 못 가는지 한탄을 했던 적도 있었지만, 지나고 보니 그 모든 것들이 삶의 한 궤적이었다. 누군들 사연이 없는 생이 있을까. 모두 자신의 이야기는 한 권으로는 절대 풀어낼 수가 없는 대하소설이라고 말한다. 젊은 날의 나도, 남들과 다르지 않았고 욕심과 절망들로 아주 힘들어했다. ‘이 또한 지나가리니’라는 말을 참으로 좋아하는 이유는, 힘들었던 그 어떤 일도 시간이 지나면 추억이 되더라는 거였다. 물론 깊은 상처가 될 수도 있었지만, 세월은 그것조차 아물게 해 주었고 아문 상처는 어쩌면 추억으로 남았는지도 모른다.
어렸을 적엔, 아버지만큼 글을 못 쓴다는 일이, 혹은 시인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 남들의 번뜩이는 시상이 늘 부러웠고, 왜 난 안 되는 걸까 하는 자책을 수도 없이 했다. 그러나 지금은 욕심을 조금 내려놓고, 이 정도의 글을 쓸 수 있는 이 자리에 감사한다. 섬광 같은 단어가 아니더라도 실타래처럼 풀어내는 이야기에 만족하려고 한다. 두런두런 말하는 것처럼 쓰는 나의 일상들. 안 되는 일을 억지로 하는 것보다는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살자고 변명을 하면서. 그러자 글을 쓰는 일이 좀 더 편안해졌다. 억지가 아닌 나의 모습 그대로를 드러내는 일, 감사하며 글을 쓴다.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싶었던 것이 그다음의 숙제이다. 그러나 이렇게 미국이란 곳에서 살다 보니, 고향은 그리움의 젖줄일 뿐 나는 이곳에 산다. 너무 익숙해져 버린 이곳. 아직도 여행자 같은 마음으로 방문하는 고향 강릉. 인생의 두 번째 숙제도 미완성이다. 인지능력이 급격히 떨어지신 구순이 넘은 홀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신 지 3년. 최선을 다해, 시간이 있을 때마다 강릉을 방문하고 엄마를 면회한다. 환갑이 한참 넘은 나의 재롱을 바라보시는 엄마의 초점 잃은 시선에 목이 메이지만, 아직은 ‘고아’가 아니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감사한다. 그곳에 계시고, 안전하게 계시고, 고향 하늘 아래서 날 기다려 주시는 분. 옆에서 모시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 죄송하고 또 죄송하지만 이렇게 편하게 늙어가는 딸을 보시면서 따뜻한 마음으로 흡족해하시며, 수고했다, 고 말씀해 주시지 않을까.
그다음, 아들의 결혼. 서른 중반을 넘기며 매일 눈만 뜨면 닦달을 했다. “넌 왜 여친이 없니? 꼭 한국 아이를 데려오라는 것도 아닌데 왜 못 데려 오니? 이번에 한국 나가면 몇 사람 만나보자. 엄마 친구 딸인데 꽤 괜찮지 않니? 여기 사진.” 하면서. 아들은 들은 척도 안 했고 한 5년쯤, 기회만 되면 시도했던 나의 노력은 그렇게 물거품이 되었다. ‘네 인생이니 네가 알아서 해라’, 며 포기할 때쯤, 예비 며느리가 짠~~ 나타났다. 내심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최선을 다해 아이를 편안하게 해 주려고 노력했고, 시어머니 티는 절대로 내지 않았다. 늘 그 아이의 편이 되어, 아들을 나무랐다. 그래서였을까, 이제 둘은 작은 예식의 날짜를 잡았다. 두 가족만 모여 좋은 곳에서 식사를 하며 덕담을 나누기로 했다. 나의 욕심이 가득했던 둘의 성대한 결혼식은 물거품이 되었지만, 둘만 잘 지내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을까. 며칠 전, 아이가 인터넷에서 드레스를 찾으며 나에게 보여 주었다. 나의 진부한 표현으로는 ‘살라라’한 하늘하늘한 미니 드레스였다. 딸이 있었다면 입혀 보고 싶었을 예쁜 드레스. “와~~~ 예쁘다. 날씬한 너한테 너무 잘 어울리겠다.” 그리고 아들도 인터넷상에 뜬 양복을 보여주었다. 성장을 한 둘의 모습을 상상한다. 내 얼굴에도 가슴속에도 미소가 절로 한가득 퍼진다. 이렇게 작은 예식을 하기로 했는데도 챙길 것들이 꽤 있는데, 큰 결혼식을 했더라면 얼마나 더 복잡했을까 싶어, 아이들의 결정이 참 잘한 것 같다. 더구나 코로나 시대에 많은 사람이 모이는 일도 부담스럽고. 아이들의 건전한 생각에 박수를 보낸다. 예비 사돈과 통화를 하며, 두 가정은 행복으로 들떴다.
이쯤에서 인생의 숙제를 조금씩 마무리할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요즈음은 매일이, 매 시간이 감사하다. 늘 만났던 풍경이었겠지만 무심히 지나갔던 작은 것들에도 시선이 머문다. 시선에 잡힌 것들과 만나는 모든 일상이 고맙고 또 고맙다.
열심히 살았던 것밖에 할 줄 몰랐던 나의 지난 시간. 그분 보시기에 그리 나쁘지는 않았던 것은 아닌가 보다. 오늘 이 시간의 이 평화와 여유를 허락하심이. 지는 노을을 오랫동안 바라본다. 그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다시 한번 느끼며 지난 시간에 ‘수고했다’라며 스스로 등을 토닥인다.
가을이다. 익어가는 모든 것들이 추수의 기쁨을 안겨준다. 40여 년의 일을 놓고 퇴직을 하며 마음 한구석에 남겨져 있던 불안도 이젠 말끔히 사라졌다. 숨 가쁘게 아등바등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이쯤에라도 깨닫게 되었음이 얼마나 다행인가. 오늘이, 남은 인생의 가장 젊은 이 시간에 알게 되는 작은 행복. 따스한 손으로 오늘의 이 평온과 행복을 마지막 그 시간까지 잊지 않게 해 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감사와 함께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