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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사느라 수고했다

-나에게 쓰는 편지

by 봄비

5.21 나의 이야기책 아홉 번째 이야기



이 날은 나 자신에게 편지쓰기를 함께했다. 수업 중반을 넘어가니 조금은 식상한 반응도 있었고, 자신의 70년 혹은 80년 이상의 삶을 돌아보는 것이 좀 막연하게 여겨졌나 보다. 처음엔 막막하게 여기셨다. 할머니들이 살아온 인생 중에서 어느 때의 나에게 편지를 쓰고 싶은지 여쭈어보았는데 처음엔 아무 말씀이 없다가 나중엔 술술 말씀하셨다.


오늘은 김0년 할머니가 국민학교 동창이던 아버님과 결혼하게 된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래도 대원리보다는 좀 나은 동네엔 장갑리에 살던 어머님은 선자리가 들어왔는데 알고 보니 국민학교 동창이었다고 한다. 장갑에는 국민학교가 있으니까 대원리보다는 좀 낫다고 여기셨나 보다. 고모께서 생활력 있는 남자인 것 같더라고 잘 살아보라 하셨다고 한다. 대원리에 시집 와서 고생한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 시할아버지는 따뜻하셨는데 산외면 면장까지 하셨다는 시아버님은 일을 엄청 시키셨나 보다. 나중에는 아버님이 공부를 더 해서 서울에 가서 공무원으로 일하셨는데 서울 올라가서 셋방 구하기 엄청 어려웠다고 하신다. 자녀가 6명이어서 집주인들이 방을 내주려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 방에 8명이 복닥복닥 자다가 나중에는 그래도 방 3개짜리를 얻어 공부 열심히 하던 큰아들에게 방을 따로 내주고, 세 딸들에게 방 한 칸 내주고, 안방에서 쌍둥이 아들들과 함께 지냈던 이야기, 리어카로 이삿짐 나르던 이야기 등 많은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으셨다. 할머니는 자녀들 교육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신 듯하다. 지금도 자녀들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권0주 할머니는 2018년에 산막이옛길에서 느린우체통에 보낸 엽서를 읽어주셨는데 자신을 격려하고 칭찬하는 말씀이 참 좋았다. 1945년생이신 할머니는 6.25전쟁 당시 여섯 살이었는데 엄마는 더 멀리 피난가시고, 할머니와 함께 산속에 숨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할머니가 아랫동네에 다녀오신다고 나가셨는데 할권할머니는 어린 나이에 무서우셨나 보다. 할머니 찾으러 네 살 동생과 함께 울면서 산길을 내려가셨다고 한다. 그때 아무 사고가 없었으니 다행이다. 길을 가는데 미군 탱크에 타고 있던 군인이 던져준 초컬릿 맛을 앚을 수 없다고 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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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0순 아줌마는 출근하는 아버지 위해 신발을 닦아주던 이야기를 해주셨다. 아줌마도 시아버지 사랑을 많이 받았고, 효도하던 자녀들이 있어서 행복하다고 하셨다. 다른 어느 때보다 건강해 보이는 아줌마가 이 건강을 잘 지켜나가길 바란다.


노0년 어머님은 80평생 자신이 한 일이 없다고 늘 말씀하시는데 그래도 시집와서 동네 아이들이 춘자네 작은엄마가 젤 예쁘다는 얘기를 했다고 살포시 꺼내놓으신다. 시집와서 윗동서에게 바느질을 배워 윗동서가 동네 사람들한텐 자랑한 이야기도 하셨다. 그때는 어려서 뭘 배우면 금방 잘 배웠다고...


시간이 갈수록 그림솜씨도 늘어가는 우리 할머니들이 자랑스럽다!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오는 그날까지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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