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못할 내 인생의 사건
5. 28 나의 이야기책 열 번째 이야기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차곡차곡 쌓여간다. 그냥 오가다 지나치며 인사하면서는 듣지 못할 이야기들이 흥부의 박에서 나오는 금은보화처럼 쏟아져 나온다. 운동회 때 모래주머니로 박을 터뜨리면 계속 이어져 나오던 끈처럼 줄줄이 줄줄이 이어져 나온다.
이번주에는 권0주 할머니가 어쩐 일이신지 전화도 받지 않고 나오지 않으셨다. 이제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성실하게 나오셨었는데... 전화를 받지 않으시니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노0년 할머니는 다른 때보다 머리가 더 어지럽다고 하셨는데 늘 똑같은 말씀이시다. 이명으로 고생하고 계시는데 젊은 시절에 산에서 나물을 캐다 산에서 굴러떨어져서 그렇다는 것이다. 정확히 여쭤보지는 않았지만 그때부터 귀에서 소리가 나고 어지러웠던 것은 아닌 것 같은데 할머니는 어디가 아프시면 모든 원인을 다 산에서 굴러떨어졌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그때의 일이 두고두고 기억나고, 실제로 많이 놀라고 아프셨기 때문에 그러실 거라 예상한다.
오늘의 이야기 주제는 '내 인생에서 잊지 못할 사건'이다. 오랜 세월을 사셨고, 우리 때보다는 훨씬 더 힘들고 어려운 시절을 지나왔기에 하실 이야기가 많을 것이다. 김성0 할머니는 지난주에 이어 이야기 보따리를 한아름 풀어놓으셨는데 특별히 쌍둥이 막내아들에 대한 특별한 이야기를 하셨다. 첫째아들을 낳고 연달아 딸 셋을 낳았던 할머니는 다섯 번째 임신을 하셨는데 낳을 때까지만 해도 쌍둥이인 줄 모르셨다고 한다. 당시에는 임신했다고 병원에 갈 수도 없는 시골이었고, 대부분의 여성들이 집에서 아기를 낳던 시절이었다. 우리 엄마도 자식 셋을 다 집에서 낳았으니 말이다.
할머니는 다섯 번째로 아들을 낳아 기뻤는데 아들을 낳았는데도 다시 배에서 뭔가가 꿈틀거리는 걸 느끼고 그제서야 쌍둥이를 임신했다는 걸 알았다고 한다. 다시 막내아들을 연이어 낳고는 힘들기는 했지만 한꺼번에 아들이 둘이나 더 생겨 좋으셨던 것 같다. 남아선호사상이 있던 때니 오죽했겠는가. 아들을 하나 낳았지만 연달아 딸 셋을 낳고는 시아버지 타박이 있었던 듯하다. 그런데 한꺼번에 아들 둘을 더 얻었으니 할머니는 좋으셨던 것 같다. 그런데 쌍둥이 아들들이 돌이 좀 지난 후였다. 밭에 가서 일하고 와보지 막내아들이 보이지 않았다. 누나들을 시켜 찾아보았지만 어디에도 막내아들이 보이지 않아 발을 동동 굴렀다. 당시 마을에는 우물이 세 개가 있었는데 그중에 제일 작은 우물이 집 근처에 있었다. 혹시나 해서 작은 우물에 달려갔다. 우물은 깊지 않아서 어른들이 들어가도 빠지지 않을 깊이의 우물이었는데 혹시 몰라 팔로 휘휘 저으니 손에 뭐가 탁 잡히는 게 아닌가. 꺼내고 보니 막내 아들이었다. 그때는 몰라도 너무 몰라 아들이 물을 먹었으니 뒤집어 물을 빼줬어야 했는데 놀란 아기를 안심시키기 위해 얼른 방에 들어가 젖을 물렸다. 그런데 그 아들이 젖을 먹고는 금세 잠이 들었다. 아무래도 막내아들이 그 우물에 빠진 지 얼마 안 되어 금방 구출된 것 같다. 그러니 바로 젖을 먹고 자고는 아무렇지 않게 건강하게 자랐으니 말이다. 할머니에게는 일생일대 화들짝 놀랄 만한 사건이었을 것이다.
박종순 아줌마도 첫째딸을 낳고는 시어른께 눈치가 보였던 모양이다. 둘째를 임신하고는 아들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박종순 아줌마는 만삭의 몸으로 매일 아궁이의 불을 때서 시부모님 밥상을 차려드렸다. 둘째를 낳던 날에 뭔가 아기가 나올 것 같아 아줌마는 불을 때서 시부모님 아침을 차려드리고, 우물에 가서 수건을 빨아왔다. 우물에서 만난 옆집 아줌마는 박종순 아줌마가 심상치 않아 보였는지 "은실이네 오늘 애기 낳겠구먼" 했다는 것이다.
아줌마는 "네. 오늘 낳을 것 같아요" 하고는 얼른 집에 돌아와 건넌방에 들어가 비닐을 깔았다. 시어머니를 부르지도 않고 그 고통을 참아가며 아기를 혼자 낳으신 것이다. 아기를 보니 아들이었다. 아줌마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쉬고 아기를 이불로 폭 싸주었다. 그때서야 들어온 시어머니는 이불을 들춰보더니 "아이고, 황송아지를 낳았네 그려" 하시며 좋아하셨다고 한다. 아줌마는 뿌듯했다. 행복이란 이런 것이구나 느끼셨다고 한다. 그 시어머니를 50년 가까이 모시고 살았다. 그래도 아줌마는 사는 것이 힘들지는 않았다고 하신다.
지금보다 훨씬 살기 힘든 시대였지만 할머니들은 모두 그렇게 어렵게 살았으므로 불편하고 힘든 상황을 당연하게 여겼고 남들과 비교하지 않으면서 인생에 순응하며 사셨다. 아궁이에 불을 때서 밥을 하고, 우물에 가서 손빨래를 하고, 농기계 없이 손으로 농사를 짓던 할머니들의 손이 고된 삶의 흔적으로 울퉁불퉁하다. 이제는 할머니들이, 아줌마들이 좋은 추억만 안고 여생을 평안하고 편안하게 사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