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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이 제일이유

-여동골, 체목, 높은점이

by 봄비

나의 이야기책 여덟 번째 이야기


우리 마을의 공식 이름은 대원리이지만 일제 시대 전에는 여동골, 체목, 높은점(고점) 세 마을로 나뉘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귀촌이나 세컨드 하우스로 왔다갔다 하시는 분들까지 치면 40여 가구가 되는데 아주 옛날에는 100가구가 넘게 살기도 했다고 한다. 얼마 전에 소천하신 전 노인회장님 말에 의하면 1980년대 서울로 마을 소풍을 갈 때 버스를 두 대나 빌리고, 앞자리 계단에 앉을 정도로 마을 인구가 많았다고 한다.

여동골이라는 예쁜 이름이 있는데 일제시대 마을마다 다 일본식행정단위인 '-리'로 끝나게 이름이 바뀌었다. 대원리라는 이름보다 여동골이라는 이름이 훨씬 정감 있다. 물론 그 뜻은 생각보다 좋지는 않았다. 가난한 동네이다 보니 가난한 이들끼리 모여 산다는 의미였다고 하니 말이다.

할머니들과 마을 이름에 대해 말하다가 "그래도 지금은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살고 있으니 그게 중요한 거지" 하시는 송 아줌니 말에 그렇다 싶었다. 마을 이름의 뜻이 썩 좋은 의미가 아닐지라도 내가 어떤 생각으로 이 마을에 사는가가 중요한 것 같다.

할머니들에게 우리 마을 자랑 좀 하시라 했더니 "물 좋고, 공기 좋고, 인심 좋은" 동네라는 뻔한 말씀을 하셨는데 생각해보면 뻔하지 않은 말이었다. 물 좋지 않고 공기 좋지 않고 인심 좋지 않은 동네도 있을 거 아닌가. 그런데 우리 마을은 진짜로 물 좋고 공기 좋고 인심 좋다. 2년 전에 우리 마을이 충청북도 '행복마을' 사업에 선정된 후부터 밥도 자주 먹고, 소풍도 가끔 같이 가고, 마을 입구에 꽃을 심고 가꾸면서 한층 더 가까워지고 친밀해졌다. 예전부터 사시던 어르신들과 귀농귀촌한 젊은 가정들의 교차점이 없었는데 지금은 서로를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다. 어르신들이 이제 한 식구라고 생각하시는 듯하다.

김0년 할머니는 우리 마을에 젊은 사람들이 많아서 생기 있어 좋다고 하셨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하다. 나는 할머니들이 '젊은 것'들이 뭐하고 사나 매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만의 짧은 생각이었나 보다. 우리는 무농약 한다고 풀도 제때 못 뽑고 풀을 키워 맨날 잔소리를 들었는데 그래도 우리가 있어서 생기 있어 좋다고 하시니 나도 좋다.

올해 여든일곱이신 노0년 할머니는 자신은 한 게 아무것도 없다고 하셨다. 마을 어른들이 자기를 키워주고, 입혀주고, 먹여주어서 이렇게 살 수 있었다고 하신다. 자신은 이불 덮고 자고, 애 낳은 것밖에 없다고...하지만 겸손이 지나치시다. 할머니는 그만큼 다른 사람들 도와주는 일에 열심이다. 내가 할머니네 집 앞에 있는 밭에서 옥수수를 심으려고 하면 와서 같이 심어주시고, 고구마를 캐려고 하면 같이 캐주신다. 내 일뿐만 아니다. 누가 길가의 풀을 뽑고 있으면 같이 거들어주고, 마을회관 청소 담당이시라 솔선수범 해서 청소를 하신다. 할머니는 이명으로 귀에서 소리가 나고 머리가 아프다고 하시는데도 말이다. 요즘은 이명이 심하신지 수업 시간에 가끔 아프다고 짜증을 내시기도 한다. 물론 귀여운 짜증이지만 안타깝기도 하다. 자리 채워주려고 오신다면서도 열심히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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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종순 아줌니는 항상 편지글처럼 끝난다 ㅎ


이번엔 특별하게 그림의 일부분을 색종이로 표현하기도 했다. 생각보다 가위로 오리고, 풀로 붙이는 일을 꼼꼼하게 하셨다. 물감으로만 표현하다가 색종이로 표현하니 조금은 색달랐다. 매주 할머니들과 2시간 넘는 시간을 함께하면서 느끼는 거지만 할머니들의 이야기들이 너무 재미있고, 조금씩 알아가는 기쁨이 크다.

우리 마을에 사는 것이 자랑스럽고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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