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서툴렀던 사람

조용한 시작

by 서늦은

출근 후, 수현은 평소처럼 커피를 내리고 책상에 앉았다. 창밖의 흐린 하늘을 한 번흘겨본 뒤, 무심코 휴대폰을 들었다. 어젯밤, 자신도 이해 못 할 마음으로 남겼던 그 문장이 떠올랐다.

“혹시… 대화 나눌 사람 있을까요.”

스스로도 민망했던 한 줄. 그날따라 이상하게 외로웠고, 말이 필요했다. 어느새 그 글은 누군가에게 도착해 있었다.

“안녕하세요. 서울 사는 직장인이에요.”

수현은 그 짧은 문장을 여러 번 읽었다.

단순한 인사. 그런데 왠지 편안했다. 과장되지도, 억지스럽지도 않은 말투.

딱,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안녕하세요. 수현이에요. 연락 고마워요.”

조심스럽지만 진심을 담아 답장을 보냈다.

잠시 후, 짧고 단정한 메시지가 돌아왔다.

“저는 다은이에요. 반가워요.”

그 한 줄에 담긴 말투는 과하지도, 차갑지도 않았다. 다은이라는 사람은 말의 온도를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대화는 어색함 없이 이어졌다. 묻지도 않게 길게 늘이지 않고, 너무 짧지도 않게 적당히 스며드는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

“쉬는 날엔 뭐 해요?”

“카페 가서 책 읽거나, 걷는 거 좋아해요.

특별한 건 없는데… 조용한 게 좋아서요.”

“나랑 비슷하네요. 저도 혼자 있는 거 좋아해요.

근데 또, 가끔은 친구들 만나서 술 한잔 하는 것도 좋아해요.”

정적인 취향과 내성적인 기질수현은 그 말이 낯설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대화는 조금 더 부드러워졌다. 다은의 말투에는 느슨한 리듬이 있었고, 수현도 어느새 긴장을 풀고 있었다. 오후쯤, 수현이 먼저 물었다.

“혹시… 우리가 계속 존댓말 하는 거 좀 어색하지 않아요?”

“어… 사실 나도 좀 그랬어요. 괜히 거리감 느껴지고.

그럼, 말을 놓을까요?”

“좋아요. 이제 좀 더 자연스러워질 수 있겠네요.”

짧은 문장 뒤에 웃는 이모티콘 하나가 따라왔다.

그 순간, 수현은 스크린 너머의 사람이 조금 더 가까워진 느낌을 받았다.

저녁이 가까워질 무렵, 둘의 대화는 좋아하는 음악, 기억에 남는 영화, 요즘 꽂힌 음식으로 이어졌다.

“혹시 요리 자주 해?”

“응, 좋아해. 거의 취미처럼 하는 편이야. 스트레스 풀리거든.”

다은이 직접 만든 파스타 사진을 보냈다.

그릇 가장자리에 흘러내린 소스까지도 정성스러워 보였다.

“우와… 진짜 잘한다. 진짜 맛있겠다.”

사진을 몇 번이나 확대해 본 수현은

잠시 뜸 들이다가 말했다.

“그거… 혹시 남은 거 있으면 나눠먹는 건 가능할까?”

농담처럼 말했지만, 말 끝에 이상한 긴장이 묻어 있었다. 잠시 후, 다은이 웃는 이모티콘과 함께 답장을 보냈다.

“맛 보여줄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지. 예약은 받아둘게.”

조심스럽지만 익살스러운 농담.

그 안에는 긴장을 덜어주는 온기가 있었다.

수현은 스스로도 의아했다.

이렇게 누군가와 잘 통할 수 있다는 게,

그저 말이 오간 것뿐인데 하루가 다르게 느껴지는 게.

“나도. 처음인데, 괜찮다. 이런 대화, 오래 해본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

‘괜찮다’는 말이 이토록 따뜻하게 들렸던 적이 있었던가. 수현은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한 번 더 들여다봤다. 잠시 후, 다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혹시… 주중에 시간 되면 볼래?”

그 순간, 수현은 마음이 살짝 내려앉는 걸 느꼈다. 마냥 텍스트로만 존재했던 사람이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 망설임은 있었지만, 거부감은 없었다. 오히려 조금, 기대됐다.

“응. 좋아. “

하루의 끝, 수현은 침대에 누워서도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생각보다 오래, 그리고 많이 웃었던 하루.

누군가와 무언가를 나누는 일이, 이렇게 가볍고 따뜻할 수도 있다는 걸 오랜만에, 다시 배운 날이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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