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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서 Mar 15. 2023

그해 여름바다는

앞으로가 두려울 만큼

그 해 여름수영을 떠올린 건 카페에서 읽은 어떤 책으로부터였다. 나는 습관적으로 생의 좋은 기억보다는 안 좋은 기억을 훨씬 더 빠르고 자세히 읊곤 하는데, 제주의 수영을 말하는 그 책에서 문득 묻어왔던 오랜 기억이 생각났다. 

가장 행복한 기억이라고 담아두었음에도 떠올릴 생각마저 못하는 계절이 있다.


2년 전 더운 7월이었다. 대학시험과 졸업까지 마치고 놀 일만 남았던 그 해 방학, 가장 친했던 친구들과 어른 하나 없는 첫 비행기를 탔다. 극강의 계획형과 극강의 충동형, 그리고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셋이 떠나는 제주도였다. 우린 열불이 날 만큼 더운 제주에서 숱하게 신경전을 벌이고 언제나 그렇듯 비슷한 구도로 싸웠지만, 대체로 잘 맞았고 자주 행복하다 말했다. 사실 10년을 넘게 우린 항상 그런 위치였다.


그날은 제주에서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전날이었다. 새벽 비행기를 끊어놓았고, 마지막 날에도 원 없이 놀아야 속이 편했던 셋은 일찍부터 짐을 싸 숙소를 나왔다. 작은 식물원을 구경하고, 카페를 두 번이나 가고 이중섭 거리를 도는 코스의 마지막은 바다였다. 당시 셋 중 아무도 면허가 없었고, 덕분에 택시 안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느끼며 제주도의 택시기사님과 시시콜콜한 이야길 나누는 여행이었다. 그날도 택시를 타고 카페에서 바다로 향했다. 바다는 가파른 언덕을 걷고 걷다 보면 요새처럼 둘러싸인 천연수영장이 나오는 곳이었다. 그냥 보면 누가 일부러 만든 것 아닐까 싶은 정교한 봉우리들이 여럿 있는 특이한 바다였다. 


애당초 제주여행을 계획할 때부터 수영은 하지 않겠다고 말했던 우리의 옷차림은 전부 얇은 원피스였다. 바닷바람이 밀려올 때마다 수없이 펄럭이는 옷자락을 쥐고 셋은 쪼르륵 바다를 향해 긴 길을 걸었다. 혹시 우리를 셔터 속에 담는 이가 있었다면 영화 한 프레임으로 써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아름다웠던 숲과 빛, 그리고 그 옆에 놓인 푸른 바다. 


길을 지나 바다까지 내려가보니 이미 꽤 많은 사람들이 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높은 바위까지 올라가서 누가 먼저 다이빙을 하냐는 걸 두고 쉴 새 없이 떠들던 대학생 무리들과 발만 담근 채로 이야기를 나누던 커플까지. 적당히 소란스럽고 또 적당히 고요했던, 음악을 듣고 싶지 않았던 바다의 소음이 있었다. 우린 샌들을 신은 채로 바닷물에 조심스레 발을 담갔다가, 생각보다 따뜻했던 물의 감촉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몰려오고 빠져나가는 바다가 아니라 머물러있는 물이라 그랬는지도 모른다. 


가만히 앉아 내일이면 보지 못할 풍경을 눈에 담다가 문득 물에 들어가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가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오는 순간이 오는데, 그런 ‘그냥’인 이유의 순간이 그랬다. 가만히 앉아있던 내가 “들어가고 싶지 않아?” 하고 정적을 깨자마자 모두의 눈이 흔들렸고 서서히 바다에 몸을 담그는 날 따라 J가 함께 바다로 들어왔다. 그 바다는 인생에서 가장 따뜻했다. 금세 가슴 깊이까지 물이 찼고, 원피스는 자꾸 둥실둥실 올라왔다. 서로의 원피스를 머리끈으로 묶어주고 신이 난 우리는 바닷속 높은 바위에 앉아서 아직도 깨끔발로 발을 담그던 Y에게 빨리 들어오라고 재촉했다. 처음엔 옷 젖기 싫다며 계속 사진만 찍어주던 Y도 그런 우리가 부러웠는지 10분도 채 안 되는 사이에 우리 옆까지 왔고, 세 원피스가 물살에 섞이던 그 느지막한 오후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찬란이었을까 해방이었을까 아직도 묻곤 하는 여름오후. 


함께 수영하고 물장구치던 셋의 결말은 몇 시간이고 오지 않는 버스와 기사님께 양해를 구하며 수건 한 장씩 깔고 택시로 숙소에 돌아오던 아찔함이지만, 양 옆으로 야자수가 펼쳐진 사람 없는 도로에서 걱정 없이 춤추던 그날의 우리가 있다. 앞으로는 다 모르겠고, 우선 라라랜드 배경 같은 이 영화를 즐기자던 우리도 그 순간에 두고 왔다. 



이 추억이 지금에서야 불쑥 떠오른 이유는 그 후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진 Y와의 관계 때문이었던 것 같다. 너무 비슷해서 너무 달랐던 우리는 서로를 처음 만났던 초등학교 시절부터 줄곧 서로에게 삐지고 미움이란 감정을 느꼈다. 가까이 살고 있어서 회복되었고, 항상 중간다리 역할을 해주던 J가 있어서 풀어졌고, 드문 취향을 가진 공감대가 어김없이 이어주었지만 애증의 관계라는 건 얼마든지 돌이킬 수 없는 길까지 지름길을 만들기도 했다. 이제 서로가 가게 될 길은 너무 달라졌고, 그럼에도 너와 나를 좋다고 여겼던 많은 것이 바뀌었다. 끈질겼던 십 년을 보낸 지금은 그 친구와 연락을 끊은 지 꽤 오래다. 일생에서 처음으로 ‘손절’이라는 단어를 결단하게 한 사람이 다름 아닌 가장 친했던 10년 지기 친구라는 사실이 아직도 가끔 기분을 아리게 한다. 이를테면 지금처럼 함께여서 좋았던 추억을 꺼내어보아야 할 때, 수도 없이 같이였던 휴대폰 가장 앞 사진들을 들춰볼 때. 결국은 나의 추억을 말하면서도 그 안엔 항상 Y가 있고 그걸 보려면 늘 말하지 않아도 깊던 우리의 갈등과 무시할 수 없는 좋았던 감정이 항상 양끝에 서있다. 내색하지 않고 잘 참아오던 내가 어떤 계기를 이유로 이젠 도저히 못하겠다고 J에게 울며 전화했던 그날 우리 셋의 관계는 공식적으로 깨어졌다. 그리고 더 이상 함께 원피스 차림으로 수영하던 세 사람으로 다시 바다를 찾을 일은 없어졌다.


아직도 가끔 Y와의 관계를 떠올린다. 이미 깨어진 관계를 자꾸만 살피는 일은 낯설고 고통스럽다. 다시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했을 거라 단언하면서도 수 해를 함께 몸 닿으며 지내오던 사람을 완전한 과거로 끌어낸다는 건 여전히 어렵다. 그래서 아직도 그날의 제주 바다를 떠올리면 ‘그 때라면 여전히 함께인 우리일 수 있었을까’라는 때 지난 후회를 한다. 묻어두는 게 아닌 차라리 스스럼없이 속상함을 꺼낼 수 있는 우리였다면, 하는 때 지난 미련을. 지금 떠올리는 여름의 제주바다는 자꾸 슬픈 상념까지 불러온다. 


글을 쓰면서 수도 없이 울고 싶어졌다. 글을 쓰다 보면 자꾸 힘들었던 순간은 잊고 행복했던 우리만 걸러진다. 추억이라는 게 그렇게 어렵다.

하지만 다시 삶을 돌릴 수 있어도 우린 꼭 거기에 함께 갔을 거다. 같이 제주의 바닷물을 맞고, 같이 기뻐했을 거다. 돌이킬 수 없다 해도 같은 선택으로 같은 결말을 보았을 테다. 그러니 그때가 부쩍 떠오르는 날, 똑같은 원피스를 입고 똑같은 길을 걸어야지. 결말을 알아도 똑같은 일을 저질러버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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