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중국병'이 도진 시기다.
후. 숨을 잘 쉬어야 한다. 몰아쉬어서도, 너무 아껴두어도 안된다.
생각해 보면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주기적으로 학업을 평가받아야 하는 방식이 나와는 잘 맞지 않았던 것 같다. 외국에 머무는 것과 사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고, 그건 수많은 불안을 떠안고 가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불안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상태였냐고 한다면, 아니었다. 걸어갈 때마다 불안과 두려움이 발에 걸렸다. 살을 에는 추위를 탓하기도 해 보고, 이것만 지나가면 된다는 자기 최면을 걸어보기도 했지만 두려운 건 두려운 거였다. 중간중간 알아들을 수 없는 그들만의 언어 사이에서 눈알을 굴리고, 밤이면 바스락 해지는 마음을 남에게 들키기 싫어서 엄마에게 전화 다이얼을 누르다가, 자기 전엔 자주 울곤 했다. 아무리 흐르는 눈물이 건강한 것이라지만, 스트레스로 인한 눈물도 수명 연장에 도움이 될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4년을 꿋꿋하게 부적응자로 살면서 '이 또한 지나가리라'의 '지나가리라'를 기다렸다.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하는 질문에 살아있는 내가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초조했던 시기였다. 학교만 가면, 이 불안도 잠잠해질 거라고. 그땐 뭐든 자유롭게 할 수 있지 않겠냐고. 그나마 생각을 적게 만드는 건 그런 식의 자기 위로였다. 일단 지나고 보면 이보단 나을 것이다! 하는 마음.
안타깝게도 그런 마음은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짜게 식어버렸다. 또 다른 4년이 시작되었을 뿐이었고 바뀐 거라곤 내가 어른이 되었다는 것인데, 어른이 대신해주었던 일까지 내가 도맡게 되면서 상황은 한 층 더 심각해졌다. 그 모든 걸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무던한 또래들이 부러웠다. 그들과의 왕래를 점차 접기 시작했다. 대화마다 '실패한 나'가 떠올랐고, 당장의 호흡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잠시 쉬기로 했다. 한편에 자리 잡혀버린 나의 결핍을 지워내려고 휴학한 1년 동안 별짓을 다했다. 인턴생활도 하고, 혼자 국내여행도 다니고, 글수업도 듣고, 책도 온종일 읽었다. 다른 의미로 버틴 시간이었다. 그때가 괜찮아질 때까지 버티고 기다려주는 시간. 나를 죽이던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시간이 트라우마를 치유할 거란 착각은 아주 큰 착각이었다. 미화되지 않고 굳어버리는 시간도 있다. 다시 돌아가도 그 상황 그때가 되어버리는, 눈가가 마르고 손에 땀이 차는 시간이.
얼마 전엔 버스를 타고 종로를 가로질러갈 일이 있었다. 지나가며 보이는 형형색색의 간판이 중국어라는 상상을 잠시 해봤다. 숨이 저절로 멈췄다. 정신이 아득하고 혼미해졌다. 그때 더 아득한 건 그런 거였다. 1년이면 될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실패로 끝날 것만 같은 이 관찰일기가 너무 무서웠다. 씨를 넣었으면 싹이 돋아야 하는데 잠잠하기만 할 때. 더 기다려야 하나, 애초에 심은 방식이 잘못되었나, 를 되짚어야 할 때.
지금도 글을 쓰면서 호흡이 불규칙해진다. 손이 떨리고, 얼굴이 굳어진다. 죽기 살기로 싸웠던 전장에 다시 나가야 하는 두려움은 생존이 달린 문제니까. 이번에도 죽으면 어떡하지. 일단 작전상 후퇴로 1년을 쉬긴 했는데, 이번에도 도망가야 하면? 그때는? 다시 그때의 내가 보이지 않는다. 죽거나 거기서 살거나. 무력해진다. 얼마만큼이면 이 또한 지나 가질까.
숨을 다시 고른다. 너무 깊게 빠지지는 않기로 한다. 후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