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이 불안을 축으로 돌고 있다는 생각을 할 때, 가장 마음이 복잡해진다. 행복한 이야기는 어떻게 쓸 수 없을까.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건 불안한 마음을 잘 감추기 위해서였다. 친구와의 관계가 흔들거릴 때, 가족과 부딪칠 때, 크고 작은 긴장되는 일을 앞두고 있을 때, 쓰지 않으면 불안했다. 하나하나 다 써야만 그나마 나아졌다. 글은 아무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 사실 누구나 마음에 듣기 원하는 대답을 가지고 질문하지 않나. 그걸 굳이 사람을 앞에 두고 묻고 싶지 않아서 차라리 혼자 답을 내길 좋아했다. 쓰다 보면 결국 내가 뭘 원하고 있는지 알게 되기 마련이었다. 설사 끝까지 답이 나지 않는 물음이었다 해도 좋았다. 일단 그 앞까지 가보았단 감각이 마음을 많이 누그러뜨렸다.
한동안 글이 써지지 않는 것은 그래서였다. 휴학을 시작하고 6개월 인턴생활도 끝나고. 이제 남은 것은 열심히 쉬는 일밖에 없었다. 학교 다니랴, 회사 다니랴 눈코 뜰 새 없이 긴장해 쪼그라든 마음을 쫙쫙 펴낼 시간만 남았다. 열심히 걷고, 열심히 읽고, 열심히 누워있었다. 처음으로 병원에서 가장 낮은 불안점수를 받았다. 삶이 이 정도의 온도로만 흘러가면 좋을 것 같았다. 너무 행복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저 미지근하게 쭉 흘러가고 싶었다.
다시 복학 준비 시즌이다. 전보다 좋은 조건이 많이 생겼다. 동생이 같은 대학에 가게 됐고, 엄마아빠와 출국을 함께하게 됐고, 복학 준비를 돕는 지인들이 많이 생겼다. 마음 같아서는 걱정 없이 살아내고 싶었다. 없으면 불안했을 많은 조건이 충족되었으니까. 트라우마가 그렇게 쉽게 해결되는 것이었으면 좋았겠다. 당연히 그렇지 않았고, 다시 불안에 빠졌다. 추위에 덜덜 떨며 갇혀있던 방이 떠올랐다. 휑한 거리와 새벽마다 들리던 고함소리가 살아났다. 그러니까, 그 좋은 조건이라는 건, 당연히 내 근간까지 흔들 수는 없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물을 무서워하는 사람에게 양쪽에서 잡아주고 있으니 괜찮다고 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누가 잡아주겠다고 말한다고 물이 좋아지는 게 아닌 것처럼, 사람과 환경이 받쳐졌다고 있던 두려움이 없어지는 건 아니었다. 그냥 거긴 처음 봤던 거기일 뿐이다.
너무 많이 도망치고 싶었다. 다시. 그게 어렵다면 그때 기억을 끊어버려서라도 벗어나고 싶었다. 그런데 그 무엇도 안된다고 하니, 결국 물로 나갈 수밖에 없다. 얼마 전엔 <인사이드 아웃 2>를 보다가 거의 오열을 했는데, 이성을 잃은 불안이와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라일리가 거울로 나를 겹쳐보는 것 같이 느껴져서였다. 온몸을 벌벌 떠는 불안이의 마음으로, 준비운동을 하고 있다. 높은 롤러코스터를 타고 올라가고 있다. 두려움을 향해. 발이 물에 닿았을 때, 롤러코스터가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을 때,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심장 가까이까지 바다로 내려간다. 최대한으로 하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