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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서 Jul 29. 2024

핫타임, 쿨타임

  불안이 심해지면 필사적으로 노트북부터 편다. 제깍제깍 약 챙겨 먹듯 어떤 말을 적을지 생각하면서 머리를 식힌다. 언젠가 과부하가 오면 뇌가 터져버리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나의 과부하를 멈추는 데엔 글을 쓰는 방편 정도밖에 없다. 쓰고, 쓰고, 또 쓰기. 글은 결국 필사적인 생존의 몸부림이 되었다. 


  누가 그런 적이 있다. 자기는 차라리 예민함을 갖고 글을 쓰는 사람이고 싶다고. 불안+쓰기 or 덤덤+기타 취미 중에 고를 수 있다고 하면 나는 무조건 후자다. 인생을 그리 피곤하게 살고 싶지 않다. 글을 써야 하는 운명인 것이지, 삶의 굴곡이 비교적 평평할 수 있다고 하면 꼭 그렇게 살고 싶다. 얼마든지 글머리를 내어주고 무던한 삶을 받아올 준비가 되어있을 정도로 나는 이런 내 천성이 지지리도 싫다. 쓰는 게 고상한 취미라고들 하지만 현실은 그냥 진흙탕싸움이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머리와 맨날 전투태세나 갖출 뿐이다. 


  오늘은 이런 내가 손이 덜덜 떨릴 정도로 버거워서 막 울었다. 1을 해내면 2가 시작되고, 2를 마치면 3이 출몰하는 줄줄이 소시지처럼 놓인 눈앞의 어려움에 죽도록 나서기 싫었다. 좀 편하게 살고 싶었다. 쉽게 생각하고, 덤덤하게 과정을 거치고, 그러고 싶은데 머리가 맘대로 되질 않는다. 눈물을 질질 짜낸 휴지를 사탕 모양으로 접었다. 어쩔 없이 갖고 태어나버린 것에 대해 자책하는 시간이 되었다. 나도 모르게 우리 집안의 아픈 손가락이 되어버린 건에 관해, 맨날 우울한 말이나 뱉어야 하는 생의 운명에 대해. 마침 근래에 그것을 이유로 나를 떠나버린 이가 있었다. 변명 따위였다고 해도 그의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대개 우울한 사람이 맞으니까. 나도 내가 버거운데 생판 남인 당신에겐 당연히 무거웠을 것을 생각을 하다 보면 과부하가 다시 찾아오고. 또다시. 또다시. 잠에 들어버리거나 마라탕 국물을 뜨면서 물리적으로 끊어내지 않는 이상 그런 생각은 끊임없이 몸 안을 순환한다. 아직 나에겐 정전상태의 몸을 만들어내는 회로가 무척이나 부족하고, 쓰는 것 말고는 쉽게 해결이 나지 않는다. 


  쓰다 보니 조금 멍해진다. 힘이 빠지면서 무감각이 살아나는 건 좋은 뜻이다. 

  이번 글의 쿨타임은 얼마나 될까. 예민한 나를 끊임없이 조절해 주며 앞으로 가야 하는 삶은 매분매초 어렵다. 돌이 아드득 씹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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